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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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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에 이어 재벌순위 26위인 삼미그룹의 부도와 법정관리 신청에 따 라, 경제 및 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한보철강의 부도때는 이 기업의 사주 정태수씨와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등 정치권이 서로 얽힌 대형 비리가 폭로되면서 사건화돼, 그 경제적 의 미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그 뒤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같은 철강업종의 대기업인 삼미그룹 소속 삼미특수강이 부도 를 내면서, 경제구조조정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때마침 한보사태에 대한 문책개각으로 취임한 강경식 신임 부총리도 입각 직후부터 경제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고, 청와대의 김인호 경제수석비서관도 개별기업의 부실도산에 대한 정부의 불개입 방침을 천 명해 눈길을 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이번 삼미특수강 부도의 배후에 새 경제팀의 경제구조조정 정책의지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 는 추측도 하고 있다.
삼미 사실상 2월부터 부도위기 맞아
겉으로 보면 물론 이번 부도는 삼미특수강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대 출금 회수전망 불투명을 이유로 추가 지원대출을 거부함으로써 일어났다. 삼미그룹은 3월19일 동남은행 삼성동지점에 돌아온 삼미특수강의 어음 8 억여원 어치를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제일은행이 삼미그룹의 회생가능성이 더이상 없다고 판단해 결제자금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삼 미그룹과 채권은행단은 전날인 18일 (주)삼미와 삼미특수강 등 2개 계열 사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19~20일에는 삼미금속 삼미기술산업 삼 미화인세라믹 삼미전산 등 나머지 4개 계열사에 대해서도 법정관리 신청 을 냈다.
그러나 삼미그룹의 자금난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지난 2월에는 공기업인 포항제철이 나서서 삼미특수강의 봉강사업부와 강판사업부를 7 천억여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해줌으로써 이 회사의 자구노력을 도왔다. 또 최소한 지난 한달 가량은 제일은행 등 거래은행들이 이미 지불능력을 상 실한 삼미특수강의 부도를 막아주는 링겔식 ‘구호자금’ 지원을 계속해 온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때문에 3월20일로 예정된 경제장관 합동 기 자회견을 불과 이틀 앞둔 18일 은행의 자금줄이 끊어지자, 정부의 정책의 지가 전달됐다는 시각이 금융가에 확산됐다.
사실 삼미그룹의 성장과 부도과정을 되돌아 보면,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비롯한 경제체제와 재벌 등 기업들이 지닌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50년대 무역업체인 (주)삼미로 출발한 삼 미그룹은 박정희 대통령의 3공화국 시절 특수강 생산공장인 창원제강소를 짓고는 방위산업체로 지정됐고,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갖 은 특혜적 지원 속에 급성장했다.
60년대에 당시로선 초고층빌딩인 31층짜리 3·1빌딩을 서울 도심에 지어 사세를 과시하고 무역과 특수강 외에 해운, 목재, 조선, 금속, 전산, 유 통, 심지어는 프로야구에 이르기까지 문어발식 확장을 했던 것도 다른 재 벌들과 다르지 않다. 또 창업주인 김두식 전 회장이 80년대에 작고하자 장남인 김현철씨가 30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직을 물려받고, 지난해에는 그의 동생인 현배씨가 회장 자리를 넘겨받는 등 창업한 뒤 수십년이 지나 도록 경영권의 가족 내 세습이 이어져 온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실시된 대 규모 시설투자가 이 그룹의 자금난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점 이다. 삼미그룹은 당시 3억달러 이상을 들여 미국의 알텍사, 캐나다의 아 틀라스사 등 북미지역의 특수강 공장을 인수하고, 3천억여원을 투입해 창 원공장 증설공사에 나섰다. 그러나 국내외 특수강 경기의 부진이 계속되 면서 이때 증설된 공장과 설비의 가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로 인해 투자자금 회수가 지연되면서 자금난이 겹쳤다. 이런 사정은 마치 한 보철강이 같은 시기인 80년대 말부터 당진제철소 건설에 나섰다가 자금난 에 빠진 것과 비슷하다.
비업무용 부동산구입, 차입의존 경영형태 심화
80년대 말~90년대 초는 바로 직전의 3저호황에 따른 여파로 부동산값이 급등하는 등 거품경제가 한창 부풀어 오르던 때였다. 당시 재벌 등 기업 들은 호황의 과실인 영업이윤을 기술개발 등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배양에 돌리지 않고, 이를 부동산투기 등 비생산적인 지대추구 자원으로 활용했 다. 이때 축적된 비업무용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자산은 그뒤 은행담보용 으로 사용됨으로써 차입의존 경영행태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형성된 재벌들의 방만한 경영구조, 거품이 잔뜩 끼어 부풀려진 자산 구조, 은행돈 독식 등에 의한 과다한 차입위주 경영행태 등은 95년 이후 불황이 닥치면서 그들 자신은 물론 경제 전반을 짓누르는 짐으로 변했다. 이렇듯 거품과 빚으로 축조된 80년대식 경제구조가 그냥 유지된 탓에, 불 황이 본격화하자 특히 차입의존도가 높아 엄청난 금융비용을 져야 하는 기업부터 차례로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삼미특수강의 경우만 봐도 자 본금은 1천6백억여원에 불과한데 부채는 그 8배가 넘는 1조3천억여원이나 된다. 이로 인해 삼미특수강은 1백원 어치의 제품을 팔면 그 가운데 40원 은 이자지불 등 금융비용으로 돌려야 했다.
이같은 기업 부실화의 과정은 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쓰러진 대기업 또는 재벌그룹의 면면을 보면 한두개 기업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93년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경영난으로 법정관리 에 들어갔거나 정리된 대기업 또는 그룹은 덕산 (주)삼익 유원건설 건영 우성건설 한보그룹 등에 이어 이번 삼미그룹에 이르기까지 모두 7개에 이 른다. 여기서 덕산부터 우성건설까지 5개사는 건설회사, 최근 쓰러진 한 보와 삼미는 철강회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결국 대기업의 부실도산이 건 설업종에서 시작돼 철강업으로 번진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기업 부실화는 기업에 돈을 댄 은행 등 금융기관들의 부실 심화로 이어지고, 심화된 금융기관의 부실은 다시 기업에 자금핍박 요인 으로 작용하는 부실의 악순환마저 나타났다.
이번 삼미그룹의 부도처리 과정에서도 그런 조짐은 분명했다. 특히 삼미 특수강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94년 효산, 95년 유원, 96년 우성에 이어 올초 한보철강에 이르기까지 매년 1건 이상씩의 대형 거래처 도산으 로 부실화가 극심해져, 이번에 삼미그룹에 대한 금융지원 중단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계와 경제전문가들은 기업과 은행 부실의 상승작용이 과연 어느 선까지 더 진행될 것인지 불안한 심정으로 가늠해 보고 있다. 삼미 그룹과 같은 부실요인은 다른 대기업들에도 마찬가지이고, 금융기관과 기 업간에 빚으로 물고물린 관계도 비단 한보와 삼미그룹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자동차 대기업은 연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낸 끝에 어쩔 수 없이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자본잠식 부분을 메우려 하고 있고, 은행들은 정부주도에 의한 금융산업 개편의 본격추진을 앞두고 기 존의 부실여신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민정부 들어 덕산 유원 등 7개 그룹 부도
그러나 최근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실도산은, 역설적으로 시장기능이 그런 대로 어느 정도는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호황 때 불황에 대비한 경쟁력을 기르지 못한 기업은 불황이 닥치면 정리되는 게 자본주 의 시장원리이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없는 한계기업이 쓰러지고 그 대신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좀더 유리한 경영환경의 이점을 누리며 수익을 높 여가는 것은, 비록 실업증가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고통스러운 과 정이기는 하나 그 자체가 시장에 의한 경제구조조정 과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구 일부국가의 경우 기업경영권이 매매되는 기업인 수합병(M&A) 시장이 발달돼 있어 한계기업의 정리가 덜 고통스러운 방식 으로 이루어지기는 하다. 비록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못해 구조조정과 정에서 겪을 고통이 더 클 수 있다는 걱정은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경제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부실요인이 특히 큰 기업 내지 그룹 단위의 정리 외에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형태로의 산업간 ·산업 내 구조조정과, 각종 비능률 요인을 낳고 있는 재벌구조의 개혁으 로까지 이어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경제구조조 정 정책은 기껏해야 기존 기업들의 사업규모 축소 및 비용절감에 도움을 주기 위한 고용조정 촉진정책과, 기존 산업질서의 기본틀을 온존시킨 상 태에서 일부 중소 벤처기업 지원정책에 머물고 있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고 일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편 국민회의의 박광태 의원 등 야권에서는 이번 삼미 부도에도 한보사 태와 같은 비리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에 관한 논란이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의원은 삼미그룹의 김현배 회장과 김영 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의 인간관계, 삼미특수강 부회장 서상록씨와 최형우 신한국당 고문 등 정치권 유력인사와의 관계, 그리고 그가 봉강· 강판 사업부문을 포항제철에 매각하기 위해 포철을 드나들면서 포철 고위 임원들에게 했다는 강압적인 언동 등을 근거로 정치권 유착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주명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