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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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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국의 대학 평가는 고등교육 정책의 시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학생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영국의 대학가는 요즘 정중동의 긴장에 싸여 있다.
얼마 전 평가가 공개된 뒤 각 대학이 취하고 있는 조처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남동부의 명문 에섹스대학은 나쁜 평가성적을 받은 화 학과를 올 봄 폐과시키기로 결정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또 옥스포드, 캠브리지, 런던정경대학(LSE) 등 10여개 ‘명문대학’들은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견줄 만한 슈퍼리그 구성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 다. 정부의 보조와 함께 규제를 끊고 ‘진정한 사립 명문그룹’으로 거듭 나기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평가결과에 따라 학과 통폐합 등 추진
도대체 무슨 평가이기에 영국 대학사회를 이렇게 뒤흔들어 놓은 것일까. 문제가 된 평가는 교육부 직속 ‘대학교육지원협의회(HEFCE)’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의 대학평가는 지난 80년대에 시작돼 모두 네차례에 걸 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 평가만큼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었 다. 투입된 예산만도 2백만파운드가 넘는다. 규모와 방법론에서도 이전의 평가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고등교육 정책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결과에 따라 1997/98년간 총 7억파운드(약 1조원)의 연구비를 배분받는 이번 평가에는 전국 1백91개 종합 및 단과대학의 3천여개 학과와 교수 5 만5천명이 참여했다.
평가항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개 교수의 연구실적. 참여 교수들은 최 근 4년간 발표한 연구 중 최대 4점의 실적을 제출했으며 이것을 전국 대 학교수들로 이루어진 전문위원회에서 연구의 질을 중심으로 엄격히 검증 했다. 또한 박사과정 학생의 수준, 외부 연구비 조성의 규모와 내역 등도 평가항목에 포함시켰다.
이 과정을 거쳐 전국 모든 학과의 점수가 매겨지고 이에 의거해 한 대학 의 종합성적이 집계됐다. 학과의 점수는 7등급으로 분류된다. 1급은 영국 내 기준으로 우수한 연구가 거의 없는 경우고 2급은 학과 연구의 절반이 영국내 기준으로 우수한 것이다. 3b급은 과의 다수가, 3a급은 과의 대다 수가 국내 기준에서 우수한 실적을 낸 것이며 4급은 과의 거의 전부가 영 국내 기준으로 우수한 실적을 낸 것으로 판정받은 경우다. 학과의 일부가 국제적 기준으로 우수한 실적을 냈으면 5급을 받았으며, 연구의 다수가 해당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학과라고 간주되면 5스타급 을 받았다. 우수학과일수록 더 많은 연구비를 받는 원칙 때문 에 1급과 2급을 받은 학과는 지원에서 제외되며 3b급과 5스타급 학과 사 이의 연구비 지원 액수의 차이는 무려 4배 이상에 이른다.
물론 평가방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가점수의 객관성 과 성격이 조금씩 다른 학과를 한 테두리로 묶을 때 생기는 비교 기준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 런던정경대학 학장으로 부임한 앤터니 기든스 교수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평가에는 주관성이 개입된다 ”고 전제하면서도 협의회의 평가방식이 전체적으로 공정했다고 인정했다 .
오래된 대학 상위권… 신설대학 역부족
(사진/경제학,사회정책학에서 독보적인 런던정경대학)
그렇지만 평가참여 교수비율을 감안한 경우와 감안하지 않은 경우 대학별 순위에 상당한 차이가 나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애 초 협의회쪽은 교수들의 참여율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배정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전원참여를 의무화하지는 않았었다. 따라서 대학에 따라서는 연 구가 부진한 교수를 제외시키고 심사에 참여해 전체 순위에서 유리한 입 장을 차지한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교수참여 비율이 90%라면 평가점수에 0.9를 곱한 것이 진짜 수치라는 주장이 많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인디 펜던트'는 “어떤 대학은 돈보다 체면을 선택했다”고 꼬집었다. 또 누가 진짜 1위인가를 놓고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대학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기 도 했다. 전국을 통틀어 교수진 거의 전원이 평가에 참여한 학교는 런던 정경대학(LSE)과 워릭, 케임브리지 등 세 대학에 불과했고 옥스퍼드의 참 여비율은 91%에 그쳤다.
평가에서 두드러진 점은 오래된 대학이 상위권 각축을 벌인 반면 90년대 이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순위로 밀렸다. 그 러나 학생 교육 중심의 실무적인 학풍을 가진 신설대학과, 연구중심의 전 통 명문대학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또 일부 비판자들은 대학평가에서 교수 연구실적은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해마다 `더 타임스'가 발표하는 `우수 대학 가이드'의 평가기준에는 연구실적 외에도 입학 성적, 교수/학생비율, 장 서구입비, 기숙사 제공률, 강의평가, 외국 유학생 비율, 졸업성적, 졸업 생 취업률, 학생의 부가가치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논란에도 지원협의회의 펜더 회장은 “이번 평가의 진정한 승리자 는 영국의 모든 대학”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왜냐하면 평가 결과 전체 적인 연구수준이 지난 92년 평가 때보다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제적 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학교가 지난 평가에서는 95개에 불과했으나 이번 엔 3백51개로 늘어났으며, 5점 또는 5스타점을 받은 학과가 하나 이상 있 는 대학이 1백개 정도로 는 것이다.
한편 모든 분야를 통틀어 영국에서 가장 연구실적이 좋은 학과는 생화학 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펜더 교수는 특히 “명문대학이 국제적 우수학과의 숫자를 더욱 늘리고 그 질을 높이는 데 많이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우수학과가 반드시 이들 대학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언론 역시 신설대학 사이에 서 우수교를 따로 비교해 특별한 관심을 표하는 등 연구평가가 자칫 획일 적인 순위경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사실 신설대학은 전통적인 상아탑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서 많은 성공을 거 뒀다. 예를 들어 셰필드 할람대학은 각종 산업관련 학과로, 리버풀 존 무 어대학은 스포츠 사이언스로 국제적인 명성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지방 신설대학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실증한 것이다.
대학평가 이후 연구수준 높아졌다
교육계 인사들은 그러나 이번 평가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시정을 한 결같이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연구실적이 많은 교수가 학교를 옮기더라도 그 실적을 새 학교로 가지고 갈 수 없게 보완하자는 등의 지적이 그것이 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대학의 학력평가’가 자주 있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거의 모든 대학이 사실상 공립대학의 성격을 띠는 영국에서 연구풍토를 자극하는 데 객관적 평가 이상 가는 처방이 없 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교수의 연구실적을 대학평가의 제일 기 준으로 삼은 영국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찬성의 소리가 높은 것은 어쩌 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