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
|---|
(사진/베네치아는 물에 완전히 잠기고 말 것인가. 바닷물에 휩싸인 베네치아를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베네치아 하면 누구나 베네치아영화제와 곤돌라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베네치아를 찾은 사람이라면 그 대답은 달라진다. 정답은 장 화다. 이들 관광객들은 또 베네치아 중심부 산 마르코광장에 놓인 약 70c m 높이의 긴 탁자 모양의 판이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도 파악했을 것 이다. 여름철에 베네치아를 방문한 많은 관광객들은 이곳에 앉아서 빵으 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고, 차가 다니지 않는 베네치아에서 피곤해진 다 리를 쉬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올 들어 베네치아를 찾은 사람들은, 이틀이 멀다하고 해발 60~70c m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피해 장화를 신은 사람들이 이 판 위로 걸어다 니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이것이 최근 들어 베네치아 하면 장화가 떠오 르는 이유이고, 또 판자가 놓인 진짜 이유인 것이다.
바닷물 차올라 ‘장화’는 통행 필수품
‘아쿠아 알타(높은 물)’라 불리는 이런 해수면 상승 현상은 베네치아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이다. 해마다 10월에서 다음해 4월까 지 자주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이 판자마저도 차오르는 물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통행이 차단되기도 했다. 바닷물 높이가 무려 해발 1백34cm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쿠아 알타’ 현상의 원인은 세 가지의 자연현상과 베네치아의 특이한 위치에서 비롯된다. 우선 지형상으로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에 바로 접해 있지는 않다. 리도, 말라모코, 키오자의 세 섬에 둘러싸인 석호의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또 기압의 변화가 커 강한 바람이 자주 분다. 아드리 아해는 달의 인력에 따른 파도의 변화가 극심하다. 고기압은 남쪽에서 불 어오는 시로코열풍을 베네치아로 몰고오며, 저기압은 헝가리의 대초원지 대에서 불어오는 눈보라를 몰고 온다. 이 바람들 또한 아드리아해에 높은 파도를 만들어 낸다. ‘아쿠아 알타’는 이런 여러 요인들이 결합해 일어 나는 것이다.
또 있다. 이 도시의 배수구가 전부 같이 연결돼 바다와 이어져 있는 것도 ‘아쿠아 알타’ 현상을 심각하게 만드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하 수도 구조는 바다에 접해 있는 부분뿐 아니라 도시의 내부도 물에 차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물이 차는 곳은 산마르코광장이며 사실 1m 이상의 아쿠아 알타가 일어나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도시의 기능 대부분이 마비돼 버린다.
지금까지의 역대 아쿠아 알타 기록을 살펴보면 1867년 2m 이상의 아쿠아 알타가 일어났으며 1966년 11월에는 1백94cm를 기록했고, 그 뒤를 1979년 12월의 1백66cm, 1986년 2월의 1백58cm 등의 아쿠아 알타가 잇고 있다. 아쿠아 알타 현상은 약 20년에 한 번씩 약 1m 가량의 높이로, 약 2백년에 한 번씩 2m 정도의 ‘높은 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현재 베네치아인들의 고민은 ‘아쿠아 알타’가 단지 불편함을 가 져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높은 물’ 현상은 해가 갈수록 발생 횟수가 더욱 잦아지고,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2 1세기 중반에는 베네치아가 ‘진짜’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만 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베네치아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통계를 몇가지만 더 살펴보자. 1920년께만 해도 1년에 1번 정도였던 1m 이상의 수위가 점점 많아지면서 현재는 1년 에 7번 이상 나타나고 있다. 1925년 연간 8번 일어났던 80~100cm의 아쿠 아 알타가 지난 94년에는 무려 연간 45회로 늘었다. 또 1930년과 비교할 때 지난 94년에는 바닷물이 60%나 흐려졌고, 해산물 성장도 50%나 줄었다 . 이런 현상도 물론 잦은 아쿠아 알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물이 빠져나 간 지역에서 바다에 배출된 질소량이 연간 7천t에 이르는데, 석호의 자정 능력은 연간 3천t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물이 빠져나갈 때마다 지반은 더욱 약해지고 더 많은 토양이 물에 씻 겨 내려가고 있다. 이에 따라 1900년의 9천ha이던 석호주변 지역 면적이 지난 94년에는 4천ha로 줄어들었으며 2050년은 아예 몽땅 침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밖에 2030년에는 약 2백년마다 되풀이 되는 2m 이상의 아쿠아 알타가 베네치아를 덮칠 것이란 전망은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 다.
관광객 늘어도 주민 생활의 질 저하
(사진/길다란 장화는 베네치아인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필수품이다.)
잦은 아쿠아 알타는 곧바로 베네치아 주민들의 생활의 질 저하로 나타나 고 있다. 시내 중심지의 식료품점 숫자는 지난 76년 4백개에서 지난 94년 1백70개로 크게 줄었으며, 같은 기간 이발소는 78개에서 39개로, 빵가게 는 1백10개에서 74개로 줄었다. 인구도 지난 51년 17만5천명에서 지난 94 년에는 7만3천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늘어난 것은 오직 관광객 뿐이다. 지난 51년 연 1백60만명이던 관광객들은 지난 93년 5배가 넘는 8백50만명 으로 늘어났다.
물론 베네치아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00년 을 3년 앞둔 올해 들어 아쿠아 알타에 대비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이 활 발한 진행되고 있다. 이를 추진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새로운 베네치아 연합회’와 ‘베네치아 수상연구소’다. 지난 80년대 중반 창설된 이 두 단체 중 ‘새로운 베네치아연합회’는 지리학적 위치로 인한 베네치아 자 체의 문제, 주변 섬들의 문제, 바다의 환경문제 등을 다룬다. 주로 아쿠 아 알타에 대한 연구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수상연구소는 베 네치아와 이탈리아 내륙과의 관계에서 실질적인 도시 및 환경문제를 연구 한다. 수상연구소는 베네치아의 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좀더 많은 부분의 도움 및 상호협력을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대규모 전시회를 열고 있다. ‘1966~1996의 여정’으로 이름 붙여진 이 전시회는 아쿠아 알타와 관련 된 각종 통계자료 등 베네치아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사실 아쿠아 알타에 대해서는 지금 몇가지 해결방법을 추진중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베 네치아 시민들이 생활에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입 니다.”
전시회를 기획한 수상연구소장이자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인 리니오 브 루로메소 의 말이다.
“우리들은 1백96cm의 아쿠아 알타가 일어났던 지난 66년 이후 지금까지 의 연구성과와 프로젝트의 진행상황, 베네치아의 아름다움 및 아쿠아 알 타에 관한 영화 상영, 전시회 등을 한자리에 마련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 습니다.”
수상도시연구소의 구실이 세계의 관심을 베네치아에 끌어들여 홍보하고 상호협력차원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베네치아연합회는 ‘MO. S. E.’라고 하는 실질적이고 야심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92년에 초안이 작성되고 95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높은 파도가 예 상될 때 물을 차단하도록 작동하는 기계적 장치 설치 계획이다. 2003년 을 완공예정 연도로 잡고 있다. 바닷물이 들어가는 가장 큰 길목인 리도, 말라모코, 키오자 세 섬에 이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는데 약 18개의 수문 으로 구성되며 각 수문은 20~30m의 높이에 3~5m의 다양한 두께를 가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 일부만이 작동돼 배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일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 이다. ‘MO. S. E.’로 인위적으로 바닷물의 양을 조정할 경우 아드리아 해의 다른 편에 있는 유고슬라비아 등지에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 이다. 이에 대해 새로운 베네치아연합회의 책임자인 조반니 체코니는 “ 그 물의 양은 전체 아드리아해에 비하면 극소량이며 일년에 몇번 되풀이 되는 아쿠아 알타 때만 작동할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답한다.
구조물 설치 논란… 도시생활 만신창이
이 두 단체 외에도 많은 단체들이 베네치아를 단지 하나의 도시로서가 아 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1300년대의 도시윤곽을 큰 틀에서 그대로 지켜오고 있는 도시, 수많은 사 람들이 곡 한 번은 방문하고 싶어하는 수상도시. 그러나 정작 그곳 시민 들에게 이런 매력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다리 끝까지 오는 장화는 필수품이며, 건물의 1층은 거주용으로 쓸 수가 없고, 1층에 위치한 상점 들은 10월에서 4월까지 언제 물이 차오를지 몰라 걱정해야 하는 도시일 뿐이다. 베네치아가 베네치아인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면 현재 급증하고 있는 관광객들도 이 도시의 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많은 단체 및 베네치아 시정부가 이 도시를 사람들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베네치아=김선아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