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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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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저장고-죽은 스위스 사람들')
이주헌/ 미술평론가
‘살아남음의 순간은 권력의 순간이다. 죽음을 보고 느끼는 공포감은 이 내 죽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으로 변한다. 죽은 자가 누워 있다면 살아남은 자는 서 있다. 그것은 마치 조금 전에 싸움이 일어나서 누군가가 죽은 자를 쓰러뜨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다. 살아남음에 있어서 개개의 인간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적이다.’
`군중과 권력'의 저자 엘리아스 카네티는 생존이 곧 권력이라고 설파한다 . 권력자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자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명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권력자이다.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데 자신 만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하여 권력자는 다른 사람을 쓰 러뜨리고 싶어한다. 죽임을 통해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살아남음 은 곧 승리로 정의된다. 살아남은 자는 승리자인 것이다. 히틀러가 유대 인 학살을 통해 그의 승리를 극단적으로 장식하려 한 것은 그의 살아있음 을 좀더 즉물적으로 확인하고픈 욕망 탓이었다.
하지만 살아남음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 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 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2차대전 당시 먼저 간 친구 발터 벤야민과 영화감독 코흐 등을 그리며 쓴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때로 살아남 음이 정서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카 네티가 “본질적인 승리(살아남음)에 견주어볼 때 모든 슬픔은 하찮은 것 ”이라고 지적하고 있긴 하지만, 바로 그 슬픔에 근거해 비로소 인간은 자유와 정의, 휴머니즘을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기억 되새긴 산 자의 고통
4월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볼탕스키-겨울여행’ 전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관한 전시다. 비록 브레히트만큼 슬 픔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볼탕스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며 동료 인간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동정심을 회복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한다 . 영원한 권력자, 곧 승리자는 없으며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길이라고 그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53)는 유대계 프랑스인이다. 그의 작품에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곧 홀로코스트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직접적으로 유대인 대학살을 주제화하고 있지는 않 지만,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작품마다 배어 있다.
`저장고-죽은 스위스 사람들'이라는 작품은 작은 금속상자들을 ㄷ자꼴로 사람키만큼 쌓아놓은 작품이다. 오래된 이 상자들의 안쪽 면에는 죽은 사 람의 흑백사진이 하나씩 붙어 있다. 남녀노소의 평범한 얼굴들을 대하다 보면 죽음의 보편성이 너무나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들은 사라졌다. 그들 은 부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자취와 흔적, 그들에 대한 기억은 파편처럼 세계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납골당 같은 그 저장고가 흩어진 파편들에 대 해 언급한다. 인간의 존재라는 것은 결국 부재와 흔적, 기억, 시간의 흐 름 등이 모여 그 대상으로 기념하는 하나의 기념물에 불과한지 모른다. 때로는 여행 자체보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더 소중하듯 인간의 진정 한 가치는 존재 너머에 존재하는지 모른다.
부재와 관련한 볼탕스키의 상념은 옷들을 벽에 촘촘히 매단 `의복으로 된 벽'에서도 무겁게 이어진다. 그 옷의 주인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옷들은 그들이 붙잡았던 인간의 육체를 지금은 다 놓친 채 묵묵히 벽 에 걸려 있다. 그 옷들은 인간이 아니지만, 그것들이 인간의 신체에 닿았 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자연의 다른 사물과는 다른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그 옷들을 통해 인간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된다. 인간의 땀이나 체액이 닿은 부 지깽이 등이 도깨비가 된다는 우리의 민간설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인간 은 부재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로 인해 인간은 삶과 존재 의 가치 및 윤리에 대해 반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흑백사진으로 구성… 정신대도 선보여
한편 볼탕스키의 설치작품들이 대부분 색바랜 흑백사진을 중심으로 구성 돼 있다는 점에서 사진이 갖는 이 시대의 독특한 마력을 다시 한번 생각 해보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죽은 이들 앞에 설 때보다 정직하고 냉정하 게 스스로를 돌아본 다음 그 앞에 설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죽은 사람 들의 사진은 이를테면 물화된 영혼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런 사물이다 . 그것은 사진이 없던 시절, 예배당의 십자가나 절의 불상, 신목의 띠 같 은 것이 우리와 나누었던 관계와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세계의 많은 독자 가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 끌린 것은 일기의 내용 못지 않게 안네의 얼굴 사진이 그들에게 호소하는 바를 거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얼 굴사진들이 `미키 클럽의 62명의 회원들', `뮌헨의 어린이들' 등에서도 유사한 구실을 하며 관객의 시선을 나꿔챈다. 죽음과 관련한 이미지들이 그림자로 나타나는 `그림자 극' 등의 그 흔들리는 그림자들도 얼굴 사진 들이 보여주는 울림과 한 주파수로 공명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작품 `정신대'는 마땅한 사진을 구하지 못해 취소될 뻔했으나 작가가 사진없이 제작을 감행해 완성됐다. 텅 빈 검은 사진액자들과 소복처럼 늘어선 흰 천들이 그것인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아직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서 그의 그런 처리 방식은 좀더 많은 반성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듯하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