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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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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다가와상’이라는,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평가에 는 함정이 들어 있다. 이 상은 문학적으로 절정에 오른 최고 수준의 작가 에게 주어진다기보다는 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아쿠다가와상은 ‘최고권위의 신인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이 상은 또한 1년에 두번씩 수여되며, 공동 수상자를 내는 경우도 많아 서 다소 ‘`헤픈’ 것이 흠이다. 유미리를 수상자로 낸 제116회(97년 상 반기)에 이르기까지 이 상을 받은 작가는 물경 수백명에 이른다. 그들 모 두가 일본 문학의 핵심으로 진입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쿠다가와상 수상에 대해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능력있는 작가들이란 대체로 아쿠다 가와상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서 대가의 자리로 올라섰다. 유미리의 아쿠 다가와상 수상은 경사스런 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아쿠다가와상으로 보 아서도 유미리의 수상은 경사에 속한다. 그의 소설은 일본에서 순문학으 로서는 예외적일 정도로 폭발적인 독자들의 호응 속에 20만부가 훨씬 넘 게 팔렸고, 이런 호응은 계속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 ‘아쿠다가와상의 부활’이라는 말이 나오는 형국이라 한다.
유미리에 앞서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재일동포 작가로는 이회성(1951)과 이양지(1988)가 있다. 이회성씨는 요 몇년 새 `유역'과 `백년 동안의 나 그네' 등의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들 소설에서도 보듯 그의 최대 관심사는 민족이라는 문제다. 중앙아시아 한인들을 찾아 1937년 강제이주 와 그에 이은 시기의 민족적 시련을 추적한 `유역'이나, 해방 직후 사할 린에서부터 규슈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귀국길에 오른 조선인들의 행로를 더듬은 `백년 동안의 나그네'에서도 민족이라는 조건은 가장 핵심적인 자 리를 차지한다.
반면, 90년대 초에 요절한 이양지의 테마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 렀다. 그에게는 심지어 유미리 소설에서의 ‘가족’조차도 생략되어 있다 . 그의 소설들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작가 자 신의 모습을 일기처럼 적고 있다.
유미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양지의 개인과 이회성의 민족 사이에 서 있다. 이제 출발선상에 선 그가 일본적 사소설의 전통을 뛰어넘어 대가의 경지 에 이를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