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우리맛 기행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한겨레21

제주도 ‘옥돔 물회’

제주도는 우리 땅이면서 이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환상적인 섬이다. 기후, 풍토, 자연경관이 그렇고, 사계절 풍성하게 나는 먹거리 또한 육지의 것 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제주 여행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새벽의 제주항 어판장이나 시내 동 남시장 내 어물전을 잠시 들러보면, 제주도의 해산물이 어떠한지를 새롭 게 인식하게 된다. 특히 3~4월의 제주 어시장은 서해안 명물인 조기를 비 롯해 동해안의 오징어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고, 어느 것이나 뭍에 올 려놓았을 뿐 그 신선함이 바닷속에 있을 때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겨울철에는 눈빛이 투명하고 눈부시게 반짝이던 갈치가 가는 곳마다 수북 수북 쌓여 갈치회와 갈칫국의 계절임을 실감케 하더니, 어느새 갈치는 한 켠으로 밀려나는 인상이다. 빨간 등빛에 이마가 혹처럼 튀어나온 옥돔이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보리이삭이 올라올 때가 제 철이라는 성게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제주도는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가 계절과 절기에 따라 이어져 간다.

이들 중 제주 옥돔은 해산물의 낙원인 이곳에서조차 으뜸으로 여기는 귀 물이자, 봄의 꽃소식과 함께 찾아오는 계절의 진객이다. 제주에서는 육지 와 달리 바다에서 나는 것 중 옥돔만을 유일하게 ‘생선’이라 부른다. 나머지는 갈치, 고등어 등의 이름으로 부르거나 통틀어 ‘잡어’라고 한 다. 그래서 제주도 가서 생선구이를 달라고 하면 옥돔구이를 달라는 것으 로 안다. 옥돔을 그만큼 알아준다는 뜻도 된다. 그런 옥돔이 일년 중 가 장 맛있는 시기는 음력으로 12월에서 3월, 그러니까 마침 지금 그 절정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제철에는 회나 물회로, 또는 미역을 넣고 국을 끓여 먹는 게 보통이다. 꾸덕꾸덕 말렸다가 두고두고 구워 먹기도 한다. 사계절 먹는 옥돔구이도 지금 것을 30%쯤 말렸다가 노릿노릿하게 구워먹는 게 제맛이다.

가장 제맛이 난다는 옥돔 물회는 옛날에 비해 그 조리방법이 조금씩 달라 지고 있다. 예전에는 물회를 말 때 옥돔의 비늘을 긁어낸 다음, 잘 다듬 어 곱게 다졌다. 다져놓은 옥돔에 파와 마늘 등을 넣고, 비빌 때 간을 된 장으로 하고 참기름을 얹는다. 초고추장이나 간장을 쓰지 않는 것이 특징 이다. 그리고 나서 식초를 가미한 맑은 냉국을 부으면, 고유한 옥돔 물회 가 된다.

그러나 요즘 음식점에 나오는 물회를 보면, 일반 횟감처럼 껍질을 벗기고 회썰 듯 얇게 썰어 양념에 무쳐낸다. 그래서 보기에는 더 그럴듯하고, 씹 히는 질감도 더 있기는 하다. 다만 간만은 된장으로 맞춰, 입안이 개운하 면서 담백한 맛만은 변함이 없다.

옥돔 물회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 역시 공항에서 가까운 신제주에 모 여 있어, 찾기에 불편이 없어 좋다. 가장 내력있는 집들로 제주 KBS 뒤쪽 의 ‘장춘식당’과 아일랜드호텔 옆의 ‘물팡식당’을 꼽는다. 그중 옥돔 물회 한 가지로는 첫손 꼽힌다는 물팡식당(064-43-0300)은, 새벽과 오후 두 차례 물때를 맞춰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어판장으로 나가 싱싱한 옥돔 을 사온다.

옥돔 물회정식이란 이름을 붙여 한 그릇에 1만원 하는데, 상차림이 깔끔 하다. 옥돔물회에는 꼭 갖추어야 한다는 풋고추와 된장, 그리고 멸치젓이 맛깔스럽다. 옥돔 물회와 함께 옥돔미역국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산모에 게나 준다는 옥돔미역국도 함께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단백질 풍성한 제주 연안의 심해어족

제주 옥돔은 제주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심해 어족이다. 따라서 살이 단 단하면서도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요리방법도 회 와 구이, 국거리 등 다양하다. 성질이 서해안 조기와 같아서 뭍에 오르기 무섭게 죽는 바람에 산 옥돔을 보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양식은 물론 안 된다.

조기를 굴비로 말릴 때 영광의 법성포어항으로 몰리듯, 옥돔은 남해안에 서 잡혀도 제주로 가야 제값을 받는다. 제주도에서 가장 알아주고 유일하 게 생선대접을 받을 뿐 아니라 큰 제를 지낼 때는 어떤 명목으로든 꼭 오 른다.

또 갈치가 늙은 호박과 잘 어울리듯, 옥돔은 미역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미역을 넣고 끓인 옥돔국을 제주도에서는 뭍의 보신탕처럼 알아주는 별미 로 친다.

물팡식당은 공항에서 도청 앞 로터리를 지나 마지막 사거리 근처에 가서 그랜드호텔이나 아일랜드호텔을 찾으면 쉽다.

4월 연휴에 제주도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지금쯤 서둘러 비행기표나 숙박 , 렌트카 등을 예약해 놓아야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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