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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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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소설가
내가 유독 소리나 빛, 냄새 따위들에 민감한 것일까, 아니면 성격이 별스 런 것인가. 현대생활에서 듣고 싶지 않은 소리 안 듣고, 보고 싶지 않은 빛 안 보고, 맡고 싶지 않은 냄새 안 맡으며 사는 길은 영영 틀린 것인가 .
길은 무섭게 뚫린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 남해고속도로가 있다. 2 차선이던 것이 얼마 전 4차선으로 확장됐다. 고속도로에서 마을이 아무리 가까워도,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면 방음벽을 설치해 주지 않는다. 나는 요즘 세상에서 들리는 가장 저주스러운 소리로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소 리를 꼽는다. 그것도 4차선으로 뚫린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갈 적에 나는 소리는 소름이 오싹 끼친다. 소리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자동차가 달려가는 속도만큼이나 전속력으로 내 귓가에 파고들어온 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누가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았고, 누가 자 동차를 만들어 놓았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고함을 지르고 싶게 화 나는 일은 또 있다. 우리집 마루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지가 절로 켜져서 아침이 오면 지가 절로 꺼 지는 가로등이 그것이다. 요즘은 시골 어디를 가도 이 붉은등이 골목골목 에 켜져 있다. 어떤 마음 따뜻한 시인이 있어 먼 데서 그 불빛을 보고 눈 물겹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게 그 불빛은 마치 감옥 사동을 비추는 탐 조등 같다. 실제 색깔이 그러할 뿐더러 도대체 골목골목에 그토록 알뜰히 도, 그토록 친절하게도 누가 가로등을 설치해 놓자고 했는지, 누가 설치 를 해놓았는지, 그 불빛이 불을 다 끈 우리집으로 성난 빛을 쏘이고 있는 것을 바라볼 적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다.
모처럼 한가한 여행을 해보자고 버스를 타면, 나는 정말로 아무 음악소리 도 듣고 싶지 않은데 운전사가 자기딴에는 승객서비스 차원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싫어서,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선뜻 일어나 라디오를 꺼 달라고 말하지 못할 때의 심정이 꼭 그랬었다.
우리집 마당에 우북한 풀을 딴에는 깨끗이 해준다고, 자기 논에 `풀 ‘꼬 시라지는’ 약을 치고 올라오다가, 조금 남은 약이 아깝기도 해서 우리집 마당에 좍좍 뿌려주고 간 이웃 아저씨의 행동은 그래도 약과인가. 내가 “왜 푸른 초원을 누런 황무지로 만들어 놓아 부렀냐”고 애매한 표정을 짓자, 아저씨는 훤하니 얼마나 좋냐고 씩 웃어서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 했다.
위에 쓴 모든 화나는 일은 아무리 화가 나도 그래도 견딜 만하다. 정말로 , 정말로 견디기 힘들게 화나는 일은, 글쎄, 일일이 글로 쓰고 싶지도 않 다. 그것은 너무도 완강하여 내 펜촉이 다가가기조차도 힘들 정도로 가히 폭력적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소식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기사들, 그리고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기사가 생산될 수밖에 없 는 지금 현재의 우리 삶의 구조들….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