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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에게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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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솝우화를 함부로 인용하지 않는 것은 노예 신분인 그가 자신의 지배자들의 권리와 위치를 보장해 주는 쉽고 적절한 비유로, 휠씬 비논리 적이고 무식한 사람들을 그럴듯하게 현혹하기 때문이지요.
학생들에게 `춘향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하는 어떤 `춘향 전'이 있습니다. 과거에 낙방하고 내려온 이몽룡이 자신처럼 결혼을 약속 한 처자뿐 아니라 결혼한 아내까지 변 사또에게 빼앗긴 수많은 남정네들 을 규합하여 관청을 습격해 변사또를 징계하여 다스리고 옥에 갇힌 춘향 이와 다른 아녀자들을 구해낸다는 것이지요. 당시의 벼슬아치들이 사리사 욕에 눈 멀고 양반네들은 이미 결혼한 상민의 아내도 빼앗아갔다는 것이 ‘우렁이 색시’와 같은 옛이야기에도 나오지요. 그렇게 일반화된 현상을 어느 청렴한 또다른 벼슬아치가 바로 잡는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우스 운 사실이라는 걸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거죠.
그런데 흥부의 재해석은 또 뭡니까. 모든 간난을 참고 견디면 어느 날 갑 자기 돈벼락이 떨어진다는…. 그러니까 빼앗기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마냥 견디기만 하면 언젠가는 하늘이 복을 내린다는 허황하고 비열한 술 책이 숨어 있는 그 `흥부전'을 재조명한다구요. 그것도 노동법 재개정이 노동자들의 눈과 입을 막아버린 지금요.
박씨가 반도체가 되는 건 노동자의 몫이 아니며, 지금껏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갖지 못하고 살다가 이제 우리의 눈이 뜨여 조금이라도 권리와 이 익을 찾으려는데, 모두를 포용하고 놀부마저 안아주라고요. 저를 비롯한 노동자가 흥부라면 놀부는 누군데요. 무슨 의도로 그런 글을 썼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네요.
반도체로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는 것도 내가 그것을 소유할 때 가능한 것 이고 모두를 끌어안는 것도 내가 인정받는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한 것 아 니겠어요. 전세계에서 미국의 제일 만만한 밥이어서 툭하면 개방의 표적 이 되고 한방 맞기도 전에 항복하는 주제에 미국을 끌어안아 줄까요. 일 제 이후 자신들의 과오를 눈꼽만큼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은인으로서의 역할을 내세우는 일본을 보듬어 줄까요.
이처럼 황당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바람을 가져봅니다.
임꺽정이나 장길산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희망의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보 여 주실 수는 없나요. 정말!
김종선/ 전남 여천시 화정동 무선주공아파트 203-406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