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한겨레21

무엇이 죽음을 권했나

지난 96년 과학기술원에서는 연쇄자살 파문이 있었다. 한햇동안 3명의 학 생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95년의 3명까지 합치면 2년 새 6명의 학생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한 셈이다. 그것이 학교 안 팎에 미친 충격은 컸다. 그들의 죽음에 이런저런 분석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 밖의 평가는 대체로 차가운 편이었다. “인성교육을 등한시한 영재 교육의 허상”이니 “의지력 박약한 수재들의 추락”이라는 단죄가 주를 이뤘다. 머리만 좋고, 심기는 허약한 아이들의 충동적 일탈이라는 것이다 . 성적에 대한 중압감, 경쟁에서 낙오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따위가 그 런 일탈의 심리적 배경을 이룬 것으로 본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장현수(4 5)씨는 “고교 때까지 실패를 모른 채 줄곧 성장해온 이들이 대학에 와서 경쟁에서 밀리자 심한 좌절감에 빠진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학교 안에선 그런 평가를 ‘무책임한 편견’으로 치부한다. 학생 들은 “도제식 사제관계에서 숨돌릴 틈없이 쏟아지는 프로젝트로 대표되 는 학교 운영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적인 일탈 때문만은 아니라는 반론이다. 김하늬(20·산업경영4)씨는 “과학기술원에서 학생들은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지 못한다. 학생들의 의사를 거스르는 비민주적인 과정이 계속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박탈감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학생들은 과학기술원이 놓여 있는 상황적 요인을 더하기도 한다. 과학기 술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고, 일반 대학의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최근 학교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이것이 학생들을 불안케 한다는 것이 다. 힘든 공부를 마치고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허무함, 자 칫 지방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연구 지원금 같은 요인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자살의 동기를 이룬다는 지적이다.

물론 6명의 자살자 가운데는 이런 잣대로도 잴 수 없는 내밀한 사연을 간 직한 이도 있다. 실제 이들은 나이도, 학번도, 가정환경도, 군대 문제도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무리로 묶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그들의 죽음에서 일관된 맥을 짚어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이 과학기술원과 무관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들의 죽음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곤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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