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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경제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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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주류 경제학자들은 노동은 고통이요 여가는 쾌락이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그들은 임금이란 인센티브가, 인간으로 하여금 쾌락인 여가 대신에 고통 인 노동을 선택하게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좀더 높은 임금 이 좀더 높은 노동공급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임금이 어느 수준 이상으 로 높아져서 적게 일하고도 충분히 벌어서 즐길 수 있게 되면, 임금 수준 의 상승이 노동시간의 감소를 유발한다. 많이 받을수록 적게 일한다. 이 것이 노동과 여가간의 선호 결정이라는 가정 아래서 도출해낸 노동공급곡 선의 요술이다. 그들은 노동이 고통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추구라는 인간 의 기본성향을 비껴가고 있다.
저축은 악덕, 소비는 미덕?
케인스는 저축이란 소득의 흐름으로부터 구매력을 빼돌리는 누출이므로 저축의 증대가 결과적으로는 국민소득의 감소를 초래한다는 획기적인 사 고법을 고안해냈다. 이것이 1930년대의 불황기에 경제인들을 매료시켰던 저 유명한 ‘저축의 역설’이다. 한 세대를 풍미한 케인스의 혁명은 바로 이 역설적인 가정에서 출발했다. 케인스의 논리를 조금만 확장하면 저축 은 악덕이요, 소비는 미덕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지적 용구(用具)는 더 열심히 일해 더 열심히 벌고 더 열심히 벌어서 더 열심히 저축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윤리규범을 흔들어 놓았다. 선도적인 지식인의 관념이 우리의 가치체계를 얼마나 미 혹에 빠뜨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보기들이다. 국민의 근면 성이 떨어지고, 과소비가 늘어나며, 국민저축률이 떨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필자는 반세기를 지배한 경제원리에 커다란 의문부호를 달아본다 .
근면과 노동이 시장규모를 확대하고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것을 체계적으 로 주장한 최초의 경제학자는 아담 스미스였다. 그보다 약 1백30년 뒤 막 스 베버는 근면과 검약을 바탕으로 하는 청교도적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 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모두 ‘한 국가의 자 본형성은, 장기적으로 보아, 국민저축률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 동의한 다.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J. M. 뷰캐넌은 아담 스미스에 동의하고, 막스 베버의 주장을 경제이론으로 순화했으나 ‘저축의 역설’에 대해서 는 ‘위대한 케인스적 망상’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윤리와 경제진보> 라는 그의 명저의 주제를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과 저축의 증대가 시장규모의 확대, 경제적 부의 증대, 전문화 및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다주는 기본적 요인이다.”
저축부족이 경상수지 적자로
한국 경제난의 기본적 해법은 뷰캐넌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노사의 갈등과 근면성의 퇴락 및 저축성향의 감소는 고비용 구조와 심리적 표리 관계에 있다. 풀어쓰면 근로자와 자산가들이 생산성에는 적게 기여하면서 도 많이 받아서 많이 쓰고 싶어하는 성향과 고비용 구조는 맞물린다. 국 내저축 부족의 경제적 귀결이 경상수지적자이며 이것이 성장의 과실을 부 분적으로 흑자교역국에 헌상하는 외채유발형 성장을 구조화한다. 적게 일 하고 적게 저축할 때 경제의 잠재력은 결코 늘어나지 않는다. 우리 경제 인들은 우선 국내저축률이 낮은 상태에서 고성장을 고집하는 것은 경제의 순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통찰해야 한다.
국내저축률이 낮은 상태에서 고성장은, 언제나 고성장→경상수지적자 확 대→외채누적의 궤적을 그린다. 따라서 국내저축률에 맞게끔 성장률을 조 정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국내저축률 증대→경제규모의 내포적 확대→국 내저축률 증대라는 선순환(善循環)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가계, 기업, 정부 가 행동양태를 바꾸어야 한다(필자의 견해로는 단기적인 해법은 경제주체 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장의 감속을 참아내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의 노와 사는 서로 한발씩 물러나서 상생하고 호혜를 주고받는 기업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경제의 순리란 원래 평범한 것이다. 경제에는 비약이 없 다. 근면과 저축만이 경제성장을 보증한다. 원칙과 정석을 고집하면서 점 진적 사고방식을 최초로 경제학에 도입한 A. 마샬은 1890년 발간된 <경제 원론> 초판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자연은 비약하는 법이 없다 .”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