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학생운동이 진짜 할 일은…

마광수/ 연세대 강사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정치과잉 현상이 너무나 두드러진다. 대권 논의와 각종 선거가 사회 각 부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면서, 다원주의적 문화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과잉 현상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수구적 봉건윤리에서 비롯된다. 말하자면 지식인들 대다수가 과거 조선조의 유생(儒生)들이 가졌던 생각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지배엘리 트로 출세하여 권력의 핵심부에 접근해야만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학자들 이 너무나 많고, 그러다보니 대학은 철저히 제도권 안에 머물러 새로운 실험이나 ‘창조적 반항’의 교두보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을 다 시금 대학 본연의 위치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은 오직 학 생들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학생들은 그래도 ‘젊음’을 가 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한다

우리나라 지식인사(史)는 변절과 변신의 역사였다. 젊었을 때는 누구나 반골정신을 가지고 자유와 개혁을 부르짖다가도, 중년의 나이가 되어 기 득권층에 포함되게 되면 수구적 보신주의로 일관하거나 아예 권력에 영합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의 젊은 패기가 정치·사 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되었고, 지금도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대학생들의 개혁운동이 점점 더 엘리트주의적 색채 를 띠고 출세주의와 연결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학생운동은 문화운 동이나 교내개혁운동이기보다는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 게 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학생운동은 모든 것을 정치적인 면에서만 바라보려 하지 말고 좀더 다양한 접근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수구적 봉건윤리와의 싸움이 새로운 학생운동으로 전개될 때, 진정한 탈권위주의 에 바탕한 진보적 문화운동이 대학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어느 대학이든, 모든 대학의 건학이념은 진리와 자유다. 나는 자유가 우 리를 진리로 인도한다고 믿는데, 이상하게도 최근의 대학 풍토는 자유의 중요성을 차츰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엘리트 후보생이라는 사실에 만족하여 ‘자유의 실천자’로서보다는 ‘자유의 조절자’로서 엘리트적 지배의식에 함몰돼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리버럴리즘을 건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곳은 내가 보기에 역시 대학밖에 없다. 대학 마저 다른 집단처럼 권위주의에 물들어 간다면, 한국의 교육은 ‘명심보 감’식 순치주의(馴致主義)와 수구적 관료주의의 늪에서 영원히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학생운동은 대학 안의 모순을 파헤치기보다 대학 밖의 모순을 파헤치는 데 골몰했다. 군사독재 문화가 어쨌든 겉으로는 사라진 지금에 도 군사독재 문화의 잔재가 우리 사회가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고 그중 가 장 심한 곳이 바로 대학이다. 그러므로 학생운동이 우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학 안에 남아있는 권위주의 요소를 없애는 일이라고 생각한 다. 남의 눈에 들어있는 ‘들보’보다 내 눈에 들어있는 ‘티’를 빼낼 수 있어야만 대학은 거듭날 수 있다. 예수가 당시 기득권 학자들의 위선 과 이중성, 그리고 권위주의에 대항했듯이, 대학인들은 이제 냉정한 자성 의 시간을 가지면서 학내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하여 진정한 ‘자유의 전당 ’을 만들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 야 한다. 이제껏 우리 대학의 역사는 어두운 부분은 가리고 자랑스런 부 분만을 드러내는 데 치중해 왔다. 그러다 보니 턱없는 자부심이 대학의 내실에 해를 입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역사를 재정리하 다보면 우리는 학내에 잔존해 있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파벌이 기주의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그 해결책 역시 찾아낼 수 있다 .

‘도제식 사제관계’안 될 말

그런 다음에 학생운동이 해야 할 일은 역시 대학을 명실상부한 ‘민주적 대학’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선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 를 봉건적 충효사상에 바탕한 ‘권위적 사제관계’로부터 ‘지식의 전달 자와 수용자 사이의 관계’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권위주의적 유교이념에 편승하여 지나치게 편안히 지내는 면이 없지 않다 . 다시 말해서 ‘고객’인 학생보다는 윗사람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말 이다. 교수만이 학교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도 엄연히 학교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합리적 이유를 갖는 요구들을 당당히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도제식 사제관계에 억눌려 학생들이 단지 ‘아랫사람’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대학은 점점 더 제도권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학생운동은 ‘문화운동’이 돼야 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다들 봉건적 양반윤리에 젖어 전체주의적 통제문화의 주역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학 생들에 의해 ‘문화의 민주화’가 좀더 구체적으로 외쳐질 때, 그때 비로 소 ‘개방적 의식’과 ‘민주적 사고’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