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한겨레21

손바닥으로 검찰을 가렸다?

검사라면 지난 주말이 무척 우울했을 것이다.

검찰이 목숨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명예와 자긍심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사 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수사 검사들이 평생에 한번 오르고 싶어하는 대 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하루 아침에, 그것도 진행중인 수사에 대한 책임 을 묻는 성격으로 경질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중수부장 교체 인 사가 발표된 지난 3월21일을 가리켜 ‘검치일(檢恥日)’이라는 신조어까 지 등장할 정도다.


“수사상황 청와대에 리얼타임 보고”

동시에 청와대쪽도 무척이나 가슴 아픈 날이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중수부장 교체가 대통령 이외의 다른 사람에 의해 주도되고 단행된 것처 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특히 교체와 함께 발부된 박태중씨 압수수색영장 에 현철씨의 2천억원 리베이트 수수설이 적시된 것은 청와대를 경악케 하 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다. 수사기법 여부를 떠나 김 대통령을 겨냥한 직격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소 이런 사안에 관한 한 내사단계부 터 청와대에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지침을 받던 검찰 입장에서 본다면 이 번 일은 청와대에 대한 반란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한편 법무부는 한보 특혜의혹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최병국 중수부장을 전 격 교체하면서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최선을 다했으나 수사외적인 요인 에 의해 일부 오해가 제기됐다”며 “좀더 공명정대하고 투철한 검찰의 수사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해 수사책임자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 고 항간의 이러저러한 논란을 불식시키려 했다.

대부분 검사들의 반발이 뻔히 예견되는데도 법무부로 하여금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강제한 ‘수사외적인’ 요인은 물론 국민의 불신이었다.

홍인길 신한국당 의원의 ‘깃털론’에 자극된 국민의 비판적인 시각은 검 찰의 중간 수사발표 내용을 축소·왜곡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특별검사제 를 도입해 재수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즈음, 김현철씨 와 한보의 유착 의혹이 다시 한번 불거져 나오면서 검찰에 대한 불신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었다.

검찰 내부에서는 최 전임 중수부장의 언론 대응능력도 도마 위에 오른다. 수사책임자들이 대부분 기획·공안통으로 특수쪽에 경험이 없다보니, 수 사 내용을 효과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는 전략이 없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사태의 본질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 려 당장 주목되는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장 검사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검찰의 중립화 요구다. 수사 상황이 청와대에 리얼타임으로 보고되 고 그 지침을 받는 듯한 흔적이 자주 발견된 것이 이번 수사를 불신의 늪 으로 몰아넣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한테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검찰 이외의 곳에서 흘러나오면서 이번 수사는 믿음을 잃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최 전임 중수부장은 자리를 떠나면서 “한보수사가 실패하게 된 결정적인 원 인은 수사 도중 번번이 기밀이 새나갔기 때문”이라며 “돌이켜 생각해보 니 정치권의 암투에 의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 다. 그렇다면 법무부와 검찰은 중수부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으로 정치색 을 벗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중수부장이 책임자인가

검찰의 조직 구조와 관행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한보 수사의 실 질적인 책임자가 중수부장이 아님을 알고 있다. 대검의 부장 직책은 군대 조직으로 따지면 참모에 해당할 뿐이다. 검찰로서는 중수부장 교체가 자 기 살을 깎는 아픔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일거에 신뢰를 회복하리라고 기 대한다면 과욕일 것이다.

최 전임 중수부장은 지난 주말 기자들과 가진 마지막 저녁식사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수사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지 ‘수사외(外) ’라는 게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정말 몰랐지(웃음).”

그런데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청와대로 단일화됐던 ‘수사외’가 이제 곳곳에서 나타고 있기 때문이다.

박용현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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