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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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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보자 3명 모두 국내에 있다." 김현철씨 2천억 수수설을 처음 제기했던 국민회의 임채정 의원.)
검찰이 3월21일 김현철씨가 한보철강 설비도입과 관련해 2천억원의 리베 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하면서 그 진위 여부를 둘 러싸고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 대통령은 아무리 붙잡아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극단적인 사태도 예상할 수 있다.
설사 수사 과정에서 현철씨는 아니더라도 정부 관계자들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김 대통령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이런 책임론 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권력누수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켜 김 대통령 의 통제력을 거덜내게 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검찰은 확실히 냄새 맡았다”
검찰은 21일 현철씨의 최측근이자 자금관리인으로 알려진 (주)심우대표 박태중씨의 집과 (주)심우 사무실을 포함한 4개 업체의 사무실 등 모두 5 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한 뒤 이런 부담을 의식했다. “현철씨가 2천 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일정정도 확인하거나 범죄사실에 대한 단서를 잡은 것은 아니다”며 “세간에 의혹이 집중되는 사항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차원일 뿐”이라고 거듭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의견이 분분하다. 신한국당은 만일에 닥칠 파국을 우려 하면서도 그야말로 시중에 나돈 설에 불과하므로 일단 수사상황을 지켜보 자는 쪽으로 태도를 정리했다. “검찰의 영장 청구 이유를 2천억 수수혐 의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2일 이회창 대표 주재로 열 린 당직자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깊이 논의했지만 “수사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말을 맺었다.
하지만 야권은 검찰이 뭔가 냄새를 맡은 게 아니냐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의혹과 설만으 로는 수사할 수 없다’고 밝혀온 검찰이 영장에 그렇게 구체적인 내용까 지 적시하는 무모한 일을 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는 이런 일반론보다 이 의혹을 처음으로 주장한 임채정 의원의 증거력을 믿는 눈 치다.
실제로 검찰은 21일 압수수색 영장에서 “박씨가 94년 7월부터 12월 사이 한보철강의 대리인으로 나서 독일 SMS사와 열연설비수입을 계약하는 과정 에서 실제 가격보다 50%나 높게 이중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2천억원 의 리베이트를 받아 현철씨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적고 있다. 더욱이 “외환은행 강남지점 및 제일은행 섬유센터지점을 통해 독일로부 터 열연설비를 수입했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실제 야당의 이런 판단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은 검찰의 수사 행적이다. 3월21일 압수수색에서 서류뿐 아니라 박씨와 가족명의로 된 10개 시중은 행 계좌와 (주)심우의 국민은행 대치동지점 계좌 등 3개 계좌에 대한 영 장도 발부받아 자금추적을 시작했다. 검찰이 한보수사 중간발표 이전에 이미 현철씨 금품수수 비리의혹과 관련해 SMS사 국내사무소인 크로바 무 역의 전기명 사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리베이트 의혹에 대한 수사를 상당부분 진행시켰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또 지난 2월24일 대정부 질문에서 현철씨의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국민회 의 임채정 의원도 최근 자신이 제보를 받게된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밝혀 2천억 의혹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월 리베이트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외국 철강업계에 대해 잘 아는 국내의 한 철강업계 전문가로부터 박태중씨가 ‘아버지(김영삼 대통령을 지칭)의 정치를 도우려는 데 돈만드는 방법은 원전 도입과 철강 도입 두 가지다. 우리는 철강쪽을 선택했다. 도와달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또 이 제보자는 “박씨가 ‘오스트리아 베스트 알핀사의 코렉스 설비, 일본 고베철강의 열연설비, 독일 SMS사의 냉연설비 도입계약을 주 도하면서 관여했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임 의원은 더욱이 “박태중 씨는 여러 회사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한 사람으로부터만 들은 이야기가 아니다. 제보자가 3명쯤 되고 모두 국내에 있다”고 말해 증인을 확보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임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당사자 들과 약속도 있고 해서 밝힐 수는 없다”는 게 임 의원의 현재 입장이다.
야권도 서로 판단이 엇갈려
(사진/검찰은 뭔가 확실한 것을 잡고 있는가. 지난 3월21일 (주)심우 사무실의 압수수색 모습.)
이에 앞서 지난 2월24일 대정부 질의에서 임 의원은 포철이 연산 60만t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2천9백24억원에 들여왔음에도 한보는 동일한 설비 2기를 8천5백98억원에 들여와 3천억원 정도 돈이 더 들었다는 사실을 상 기시켰다. 그리고 “독일 SMS사로부터 설비구매 과정에서 2천억원 이상의 리베이트가 김현철씨에게 제공됐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고, 한보 철강의 설비도입은 차관으로 계약 결제되기 때문에 현철씨쪽이 개입, 이 중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차액을 직접 해외에 도피시켰다는 의혹이 지배적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권도 2천억원 리베이트설과 임 의원의 주장에 대해 판단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입장이 나뉜 것이다. 한보특위 국민회의쪽 간사인 이상수 의원의 한 측근은 “어떤 형 태로든 설비도입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조성돼 현철씨에게 전달된 것은 틀 림없지만 액수가 2천억원이라는 주장은 조금 과장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야권 일각에는 그 가능성을 아예 부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문만 있고 정확한 물증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건들처럼 유야무야 끝나는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국민회의의 또다른 한 관계자도 “ 22일 오전 김대중 총재와 한보특위 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비리폭로보다 는 대안제시’를 강조한 것도 이런 고민을 드러낸 게 아니겠냐”고 말했 다.
하지만 야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있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 사실로 밝혀질 경우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중대사안이라는 부담 때문에 무차별 공격보다는 신중한 태도를 취할 뿐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확정지 을 수 있는 증거가 없이 단지 관계자들의 제보만 가지고 강공으로 나가다 검찰 조사 결과가 혐의가 없다는 쪽으로 마무리될 경우 결국 입증책임과 함께 야당이 국가적 중대사를 정략적으로만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의 표적 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의 관계자들은 이런 판단에 근거해 일단 청문회를 통해 2천억원의 의 혹을 밝히는 데 주력하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한보특위 실무를 담당하는 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일단 한보의 코렉스 설비도입 계약서, 포철 계약서 등을 비교해 단가 차이를 밝히는 등 문서검증을 통해 사실을 밝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차액만 밝혀지면 한보가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까지 국제시세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했을 리 없다는 경제논리를 내 세워 공략할 수 있고 결국 계약 체결 당사자와 그 차액의 흐름을 밝히는 것은 생각보다 손쉬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2일 국민회의 이상수 의원과 자민련 이인구 간사가 “내달 4일 대검에 대한 기록검증 및 보고청취에서 모든 수사기록을 검증, 국조특위 참고자 료로 삼을 것”이라고 다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보특위 자민련쪽 간 사인 이인구 의원은 더욱이 “독일SMS 관계자나 오스트리아 베스트 알핀 사 등의 국내 대리인을 추가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국민회의와 협의 할 것”이라고 밝혀 의욕을 과시했다.
제보자들 청문회에 나올까
하지만 신한국당은 이런 야권의 전략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계획만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민회의 내부에서는 이런 상황까지 고려해 임 의원이 확보했다는 3명의 증인을 남겨두기로 조율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일단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과 신한국당의 청문회 전략 등을 지켜보면서 가로막히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2천억 의혹 돌파의 ‘뇌관’으로 준비해 두었다는 것이다. 야권의 문서검증 노력도 실패하고 검찰조사에서도 무혐의 처리될 경우 마 지막 수단으로 임채정 의원이 확보하고 있는 3명의 제보자를 증인으로 출 석시키는 문제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나 성공할지 알 수 없다. 임 의원이 “이들 제보자들이 공개적으로 나서서 말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므로 청문회 등에서 의혹을 밝히는 것은 어 려울 것”이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노태우 전두환 비자금 사건 수준의 파문으로 확대될 가능성 도 배제할 수 없는 2천억원 리베이트설. 온 국민은 그 진실이 속시원히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