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수험생 괴롭히는 대학자존심

(사진/일부 대학이 낮은 등록률을 감추기 위해 추가합격자를 전화로 개별통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사진은 서강대의 합격자발표 모습.)

대학의 어줍잖은 ‘자존심’때문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2중으로 마음 고 생을 하고 있다.

복수지원 허용으로 1차합격자들이 등록을 포기하고 다른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자 연세대 동덕여대 등 일부 대학들이 낮은 등록 실태가 공개되 는 것을 꺼려 추가 합격자를 일괄발표하지 않고 개별통보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 대학에 응시했다가 정규모집에서 탈락한 수험 생과 학부모들이 ‘혹시나’하는 마음에 며칠 동안 전화기만 지키고 있어 야 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게다가 입시부정의 의혹마저 불러일으키는 부 작용도 우려돼 복수지원제도에 따른 입시행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 리도 높아지고 있다.


낮은 등록율 공개 우려 미등록율도 비밀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개별통지할 테니 연락을 기다리십시오.” 추 가합격 가능성이라도 알아보려고 지난 1월30일 연세대 입학관리처와 인문 학부 등에 잇따라 전화를 걸었던 수험생 이아무개(19)군이 들은 말은 이 것뿐이었다.

인문학부 예비합격자 명단에도 없었던 이군은 등록마감결과 미등록율이 2 5%가량 된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 그러나 학교쪽은 “추가합격여부 는 물론 지원학과의 미등록율도 가르쳐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고 한다. 추가합격자 명단을 일괄발표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결국 이군과 이군의 부모는 며칠간 집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도 못한 채 방 전화기만 초조하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학교쪽이 내세운 이유는 “추가 합격자를 일괄발표하면 앞순위자를 뒷순 위자가 돈으로 매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원 1천2백19명 가운 데 8백84명이 등록해 72.5%의 등록율을 보인 동덕여대도 일괄발표없이 전 화통보만 하고 있다. 동덕여대가 내세우는 이유는 “지방학생들이 추가합 격공고를 보기 위해 먼길을 오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

이들 대학이 내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개별통지하면 예비합격자가 실제 로 등록할지 다른 대학으로 진학할지 미리 알 수 있어 신속한 추가합격자 결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추가합격자를 일괄발표했다가 일부 응시 생들이 또다시 등록을 포기해 생기는 합격자 결정 지연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쪽의 주장을 “낮은 등록률을 공개하 지 않기 위한 잔꾀거나 궁색한 변명”이라고 비난한다. 우선“매수 가능 성을 따지면 정규합격자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정규모집에서 미등록율이 높아지면 당연히 예비합격자들에게 순서가 돌아오니 맘만 먹 으면 예비합격자가 정규합격자를 매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 다. 이들은 “합격자발표과정 전체에 매수가능성이 있는 셈이니 차라리 정규합격자발표도 전화로 하는 게 어떠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지방학생의 불편 때문이라는 설명도 “일괄발표와 개별통보를 병행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는 지적에 이르면 설득력이 없어진다.

학부모들은 오히려 “일괄발표없이 추가합격자에게 개별통보만 할 경우 학교 마음대로 추가 합격자를 ‘골라 뽑는’ 입시부정의 소지마저 있다” 며 추가합격자 개별통보에 따른 입시행정의 투명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 고 있다.


개별통보 원칙 등록율 높자 일괄발표로 변경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쪽의 궁색한 변명 뒤에는 등록율이 낮은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경쟁심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고 있다.

등록마감일까지 등록율 집계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연세대 입학관리처는 등록율이 예상보다 낮은 75%선에 머물자 “각 학과별 등록율은 집계하 지 않기로 했다”며 수험생들에게조차 지원학과의 미등록율 공개를 거부 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진 상태다. 이들은 “당 초 추가합격자 개별통보 방침을 세웠던 이화여대는 등록율이 90%대를 넘 어서자 1월30일 오후에 서둘러 추가합격자를 일괄발표했다”며 “복수지 원이 일반화되면 미등록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추세인데도 대학이 교 육의 질로 승부하려고는 않고 구태의연하게 등록율 경쟁이나 벌이고 있다 ”고 학교쪽을 비판했다.

반면 올해 입시에서 건국대 한양대 등 일부 대학들은 응시자들의 순위와 점수를 모두 공개해 입시행정의 투명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입시관계자들은 “98년 입시에서는 이렇게 입시의 전과정을 투명하게 공 개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편을 줄이고 입시과정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 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송현순 기자/한겨레 사회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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