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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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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동운동으로 시대의 아픔을 껴안은 권영길 위원장은 노동자 군단을 진두지휘하며 총파업 정국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소.”
그것이 시작이었다. 마흔일곱의 나이로 서울신문사 노조위원장 직무대행 을 맡으면서 민주노총 권영길(56) 위원장은 부인 강지연(54)씨에게 그렇 게 고백했다. ‘늦깎이’ 노동운동가의 결심은 참말로 소박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사 파리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한 터라 그 냥 있으면 편집국장이나 논설위원을 하면서 언론인으로서 편안한 길을 보 장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가시밭길을 고집했을까.
안락한 삶 거부하며 ‘늦깎이’ 운동가로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운동을 특별한 시각으로 봐서 그래요. 노조라는 게 기본적으로는 임금인상 등 노동자의 복지수준을 높이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하지만, 그와 함께 사회개혁과 사회민주화, 노동자의 정치활동도 추구해 야 하는 것이거든요. 사실 우리 언론은 오래 전부터 언론민주화의 요구를 가지고 있었고, 언론민주화의 지름길은 노조결성이라는 게 대부분 언론인 들의 생각이었어요. 노조 없이는 한국언론이 권력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기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얘기죠. 기 자협회도 노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추진하다보니 역부족이라 협회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었어요. 그만큼 일찍부터 노조에 대한 관심이 높았 다고 봐야 해요.”
노동운동은 ‘뿔난’ 사람이 ‘특별한’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이 다. 삶의 터전인 직장을 더욱 나은 모습으로 만드는 데 무슨 거창한 이념 이나 구호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80년대 노동운동 앞에 ‘변혁적’ ‘전투적’ 등 거창한 단어들이 붙어 있었지만, 이제 누구도 그런 말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시대상은 그를 한국의 노동운동을 이끄 는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는 ‘골수’ 운동권 출신은 아니다. 열렬한 학생운동의 경험도 없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창백한 지식인은 아니었다. 야학 에 나가 배움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이다. “ 남의 딱한 일을 보면 무척 마음 아파한다”는 부인 강씨의 말대로 그는 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그는 결혼한 뒤 암 울한 박정희 개발독재정권 아래에서 기자생활을 하는 자신에 대해 심각하 게 고민하곤 했다고 한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만취한 채 로 들어와 엉엉 우는 일도 있었다”고 부인 강씨는 회상한다.
서울신문사 노조를 거쳐 6년 동안 전국언론노련 위원장을 하면서 그는 점 점 노동운동의 핵심으로 변해간다.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의장 과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공동대표를 거치면서 지역과 업종을 아우르는 전국적인 노동운동의 경험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그의 품성은 민주노총을 건설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생산직과 사무직의 차이, 다양한 이념적 차이 등을 넘어 하 나의 물줄기를 이루는 데는 그의 협상력과 융화력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이 다. 이는 이번 파업과정에서도 힘을 발휘해 유연한 전술의 구사로 정부와 자본을 당황하게 만들며 여론의 주도권을 노동계로 돌렸다.
50만 노동자대군을 진두 지휘하던 천막 속의 야전사령관은 아직 농성을 풀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협상이 자칫 노동계의 요구를 무시하는 형태 로 진행될 때는 언제라도 다시 파업을 조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에 임금을 덜 지급하는가 하면, 연대책임을 물어 다른 조합 원들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방식을 쓰는 기업들도 있다고 해요.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결국 인간성을 파괴하는 그런 노조탄압은 당장 중지 되어야 합니다. ”
유연한 전술 구사해 여론 주도권 확보
대학시절에 만나 열애 끝에 결혼한 부인 강씨와의 사이에 2남1녀가 있다. 지난해 연말 파업이 처음 시작되던 때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는 첫째딸이 시집을 가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명동성당에서 파업을 조직했던 그는 , 그러나 행동으로 자식을 가르친 훌륭한 아버지였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고집 때문인지 서강대에 다니는 막내아들 성근(25)씨는 “대 화하는 시간이 별로 없지만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옳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한번도 원망해 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부인 강씨는 구속돼 있 던 남편을 면회갈 때면 언제나 자신의 친구들과 동행할 정도로 남편이 하 는 일을 이해하고 지지해줬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싹튼다.” 그의 좌우명은 일단계 승리를 거둔 파업 의 과정을 절묘하게 설명한다. 희망을 위한 그의 투쟁은 당분간 끝이 나 지 않을 것 같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