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진보의 용광로 ‘민주노총’

명동성당 농성은 한달간의 긴 투쟁이었다. 영하 2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지도부나 이들을 취재하는 기자들, 지도부 를 지키는 1백여명의 사수대에게는 추위를 쫓아버릴 불이 필요했다. 그러 나 누구도 땔감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 오랜기간 동안 쓸 땔감은 쌓여 있 었다. 건설현장에서 쓰다 버리는 나무를 조직적으로 모아 오는 이들이 있 었기 때문이다. 바로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련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집 회 때마다 “땔감은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했다. 40,50대 중년의 나이에 한달간의 농성을 벌이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아파도 구속될 위험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한번도 크게 앓는 일이 없었다. 그뒤에는 병원노련 노동자들의 보살핌이 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을 데 리고 사수대를 방문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 었다.

세상을 바꿀 실질적인 힘을 가진 이들의 집단적이고도 조직적인 움직임, ‘파업’은 노동자의 힘을 가장 생동감있게 느끼게 하는 계기였다. 그리 고 그 한가운데에 민주노총이 있었다.


여론 호감도 67% 나타난 ‘파워집단’

민주노총의 파업은 민주노총이 만만한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쉼없이 알 리는 과정이었다. 전문성, 전투성, 대중성 3박자를 골고루 갖춘 점은 특 히 돋보였다. 명동성당에서 매일 열린 기자회견이 끝나면 외신기자들은 한 사람을 에워싸고 집요한 질문공세를 폈다. 그는 유창한 영어솜씨로 <로이터> 등 세계적인 언론에 민주노총의 주장을 논리적 으로 전달했다. 유머까지 섞어가며 이들을 설득한 이는 윤영모 국제부장 이었다. 그는 사무실에서도 10분이 멀다 하고 걸려오는 국제전화로 조직 의 입장과 한국상황을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론을 주시하며 TV토론 까지 공세적으로 수용한 민주노총 지도부를 두고 보수언론조차 도 “치고 빠지는 유연전술”이라며 추어올렸다. 민주노총의 파업과정을 지켜본 한 학생운동 핵심 활동가는 “대중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고 고백했다.

민주노총의 활약은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총체적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운동의 경험이 10년이 지나면서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 셈 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에 대한 인지도와 지지도는 지난해에 비해 엄청 나게 높아졌다. 파업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1월14일 여론조사전문기관 인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민주노총에 대한 호감도가 66.6%( 매우 호감 16.5%, 다소 호감 49.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95년 11 월에 생겨 한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조직의 역사에 비춰볼 때 비 약적인 성장이다. 양적으로는 한국노총에 뒤이은 ‘소수파 제2노총’이며 형식법상으로는 여전히 ‘법외 비합법 노조조직’인 민주노총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복수노조가 허용되자마자 민주노총이 ‘제1의 내셔널센터’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공식 출범한 것은 지난 95년 11월이다. 87년 6월항쟁으로 열 려진 공간에서 이뤄진 전국규모의 자연발생적인 파업인 7, 8, 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본격화된 민주노조건설운동이 전국조직건설의 요구로까지 발 전한 것이었다. 출범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기건설론과 산별 우선론으로 나뉘어진 노동운동계는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고, 전노협을 중 심으로 하는 제조업노동자와 업종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사무직노동자들의 각기 다른 노동조건, 임금수준과 체계, 사회적 위치 등에서 나타나는 다 른 입장들도 건설의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단위노조위원장 이상의 광범 위한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건설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투쟁 속에서 단련된 조직·실무진들

민주노총은 출범 당시부터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천명하고 사회개 혁투쟁도 선언했다. 사회개혁투쟁 선언과 함께 지난해 수많은 내부 이견 속에서 이뤄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대한 참여는 결과적으로 현명한 방 침이었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특히 파업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은 지 도부의 지도력과 하부단위의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민주노총은 현재 모두 9백29개 산하 노조에 50만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다 . 이는 크게 산업별연맹, 지역 연합 노조, 재벌그룹 계열사 연합 노조(현 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단위 노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의 조직 체제는 산업, 지역, 자본이라는 여러 가지 기준으 로 분류된 형태로 노조운동이 발달한 나라들에서 보이는 산업별 체제를 지향하는 과도기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조합원수로 볼 때 영향력이 큰 연맹은 금속(5만3천7백), 자동차(5만), 사무(6만5천), 병원(3만5천), 전 문(2만5천8백), 현총련(8만8천) 등이다. 5만에 가까운 조합원을 가진 한 국통신은 최근에 가입한 대규모 사업장이지만 아직 영향력이 약하다. 이 번 파업과정에서 가장 큰 투쟁력을 보인 곳은 자동차연맹(위원장 배범식) 이었다. 병원노련, 현총련, 방송노조 등도 상대적으로 강력한 투쟁을 전 개했다. 이에 비해 금속노련과 지하철은 이전에 비해 약한 조직력을 보이 기도 했다. 조합원수와는 관계없이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조직으로는 방 송사와 신문사를 포괄하는 언론노련과 전교조, 전지협(전국지하철노조협 의회)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번 이상의 파업 경험을 가지고 있어 투쟁력에 있어 한국노총 산하 조직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이번 파업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철도, 전력, 금융, 택시, 버스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조직 중 많은 부분이 아직 한국노총 산하에 있다.

민주노총을 이끄는 지도부는 대부분 현장의 대중운동 경험이 10년 이상씩 있는 이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조합활동, 단위노조위원장, 업종별 연맹위 원장의 경험을 가진 장년층들이다. 평균 나이가 40대 이상이며 이념적인 지향성보다는 대중운동논리에 따라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학생운동 출신자들은 많지 않다. 권영길 위원장은 대중운동 경험과 관련해 “이번 파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지도부가 대중의 힘을 믿는 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영길 위원장은 언론노련을 6년 동안 이끌었고, 배석범 부위원장은 삼환 기업 노조위원장 시절 건설사로서는 전무후무한 82일간의 파업을 승리로 이끈 맹장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대 부위원장 역시 청계피복노조에서 18 년 동안 활동해오면서 ‘청계피복노조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리는 인물 이며, 허영구 부위원장은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 출신으로 87년부터 10년 동안 노조와 연맹활동을 했다. 연맹위원장들도 대부분 5년 이상의 노조활 동경력을 지니고 있다. 대중운동경력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투쟁전술과 대 중관을 결정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대 방안 모색… ‘강·온 대립’은 몰이해

민주노총의 이념적 지향은 80년대 노동운동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 전투적 조합주의’나 ‘변혁적 조합주의’ 대신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 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이 자주 쓰인다. 우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자주 성과 절차적 민주주의는 가장 핵심적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노총은 최고의결기관으로 대의원대회(조합원 1천명 당 1명)를 두고 있다. 그외에는 대중조직이라는 성격 때문에 노조와 개인 에 따라 ‘일반민주주의’에서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에 이르기까 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출범 때부터 제시한 사회개혁 투쟁 노선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정치적 영향력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중요한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사회개혁적 조합주의’라고 이름 짓는 이들도 있다. 자주적이고 전투적인 국제노동조직들과의 적극적인 국 제연대는 앞으로 제기될 이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될 전망이다. 서울 삼선동에 위치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실장, 국장급을 포함하는 실무책임자들도 민주노총을 이끄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들도 대부분 현장경력을 중심으로 뽑힌 인물들이다. 최근에는 공채도 실시한다 . 전체 25명 정도 되는 이들은 한결같이 실무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이 서 로를 부르는 공식 명칭은 ‘동지’이다. 운동경력과 나이에 따라 다르지 만 보너스를 포함해 한달에 50만~8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 김유 선 정책국장, 이상현 조직국장, 김태현 기획국장 등은 민주노총 준비위원 회 집행위원 출신들로 핵심적인 실무를 맡고 있다.

민주노총은 산하 연맹의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 중 한달에 조합원 1인당 2백원씩을 받아 중앙조직 운영에 쓰고 있다. 50만명이 2백원씩이니 한달 에 1억원이지만 이 돈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민주노총이 합 법화되고 사업이 급속히 늘어나면 의무납부액수도 늘려야 한다는 게 실무 자의 귀띔이다.

민주노총은 파업국면을 거치면서 내부의 조직적 단결과 지도중심의 확고 한 구축을 이뤄냈다. 그러나 아직 내부의 이견은 있다. 일부 언론들은 이 를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구도로 몰고 가지만 이들은 이런 분석은 “도 식적이고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소치”라고 비판한다. 주류적인 흐름과 비주류의 흐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정치적인 견해를 완전히 달리해 항상 다른 의견을 내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 간부는 “현 단계 노동운동의 과제,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 자본에 대한 태도, 한국노총을 보는 시각 등을 잣대로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은 사 실”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한 간부는 “내부에 갈등이 있어 보이는 것처 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직의 개방성과 민주성, 건강함을 보여주는 증거라 고 본다”고 말했다.


총파업 성과 정치세력화로 이을 가능성

결말을 맺지는 못했지만, 파업은 민주노총에 정치적, 조직적 과제를 남기 고 있다. 조직적 과제는 현재의 과도기적 체제를 산별체제로 어떻게 전환 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정치적 과제는 여야에 기대지 않을 수 있는 노동 자의 정치세력화 문제이다. 두 문제 모두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 자동차와 금속노조의 통합 문제, 현총련의 산별체제로의 전환 문제 등 은 민주노총 조직문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이와 함께 전체노동자의 80 %를 넘는 미조직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활동도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 치적 과제와 관련해서는 올해 대선과 내년 지자제 선거를 앞두고 파업의 성과를 정치적인 성장으로 매듭지으려는 시도들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간부는 “1단계 파업에서 24일동안 연인원 3백만명이 파업을 벌였고, 1백10만명이 가두시위를 했다. 세계운동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규모 다. 40만명 정도가 1번이상 파업에 참여했다고 보는데 그 정도 경험은 정 치의식의 급격한 각성을 가져올 수 있는 수준이다”고 밝혀 파업경험이 정치세력화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은 물론 민주진보세력의 구심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 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보인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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