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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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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린 시절, 비를 흠뻑 맞으며 논가에서 붕어를 잡다가 검은 고무신 한짝을 물살에 휩쓸려 버려, 어머니한테 혼이 난 추억은 없는지. 공부는 안 하고 종일 밖에서 개구쟁이처럼 뛰어만 놀다가, 매 맞고 눈물 펑펑 흘 리던 그 시절, 그래도 눈물 닦고 공부 열심히 해 훌륭한 사람되라며 밤고 구마 삶아주신 어머니의 그 따뜻한 손길.
성큼 다가온 설날, 마음은 벌써 어머니의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왠지 무거운 가슴. 정리해고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코흘리개부터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이 알뜰살뜰 저축해 모아준 수 조원대의 돈을, 부도덕한 재벌회사에 너무도 쉽게 내주는 그런 세상. 상 상을 초월하는 권력형 비리. 과연 이런 세상에서 열심히 산다는 게 무슨 희망을 주는 걸까. 또다른 절망은 아닌지. 그럴수록 마음의 고향, 고향의 부모 형제, 친지들이 그립기 마련이다. 다시금 온가족이 모이는 설, 우리 는 무슨 화두를 꺼낼 것인가. 예년과 달리 썰렁하게 다가오는 설날, 온가 족이 한자리 둘러앉아 현실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한겨레21>이 설날 화두 10가지를 제시한다. 편집자
(1)‘아버지’의 자리는 어디인가
50대 중년의 가장인 한정수. 그는 어느날 친구 병원에 들렀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5개월 시한부 인생’의 사형선고였다. 지방대 출신으로 뒤늦게 행정고시에 합격해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까지 신문에 소개됐 던 그였다. 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한 데다가 연줄조차 없어, 요직 은 거쳐보지 못한 채 한직으로만 전전해야 하는 변변찮은 공무원으로 살 아야만 했다. 부유한 가정출신으로 고급문화 취향의 부인 영신과는 늘 멀 지도 가깝지도 않은 평행선 사이였고, 대학에 재학중인 딸 지원은 아버지 가 ‘일에 파묻혀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며 늘 원망의 눈길이 가득했다.
한정수는 자신의 사형선고를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죽음을 준비해 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폭 음을 하게 되고, 가족으로부터는 그만큼 더 멀어지고 소외받는다.
딸이 지망하는 서울대 영문과 입학정원이 35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딸의 합격을 위해 35번 숫자 이상의 버스는 타지 않고 , 좌석에 앉을 때 도 35번 이상의 자리를 피하면서 ‘혼자만의 미신’을 지켜왔던 한정수. 하지만 그는 딸로부터 “아버지, 당신은…”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부녀 관계 단절이라는 최후통첩을 받는다.
부인 영신은 어느날 우여곡절 끝에 남편의 친구한테서 남편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영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책뿐이었 다. 한정수는 결국 ‘장기기증’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또 이 세상에 자 신의 흔적을 남기기 싫으니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한다.
한정수의 장기적출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 딸 지원은 아버지가 병 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옷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입게 될 상복을 보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수술이 끝난 한정수의 한손에 는 유서가, 다른 한손에는 결국 부인에게 전하지 못한 진주 목걸이가 쥐 어져 있었다.
이상은 요즘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소설 <아버지>의 줄거리다 . 경찰관 출신의 무명작가 김정현(41)씨가 지난 8월 중순 내놓은 이 장편 소설은 최근 1백만부를 돌파하는 등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소 설은 집 안팎에서 내몰리고 있는 50대 가장의 애처롭고도 비극적인 삶을 통해, 위축될 대로 위축돼 있는 현대 중년남성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그려 냄으로써 전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출간한 문이당에는 “아버지에 대해, 또는 남편에 대해 다시 생 각하게 됐다”는 ‘자책성’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고, “나의 처지를 그 대로 대변하는 소설”이라는 남성들의 전화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이 소설은 조기퇴직이다, 명예퇴직이다, 정리해고다 하여 어수 선한 사회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물려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아버지의 자리란 어떤 것인가’하는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2) 묘지로 뒤덮히는 금수강산
생로병사. 인간은 누구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법.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 분명한 사실 하나는 땅에 묻히거나, 한줌의 가루가 되어 강이나 산에 뿌려진다는 점이다.
매장과 화장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어차피 죽은 마당에 묘지를 만들어 흙에 묻히든, 화장을 해 가루로 뿌려지든 무슨 큰 차이란 말인가. 죽어서 도 무슨 권세나 영화를 과시하겠다는 듯, 일부 돈있는 사람들은 좋은 지 역에 넓은 묘역을 조성해 호화스럽게 꾸미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묘지가 늘어, 좁디좁은 우리 국토가 심각하게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한국인으로 위장해 <추한 한국인>이라는 책을 쓴 한 일본인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묘지를 가진 나라라며 ‘묘지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만큼 우리나라 묘지문제는 심각성 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서울 여의도 크기만한 땅이 묘지로 잠식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묘지공화국’이란 오 명도 뒤집어쓸 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 9평방km의 국토가 묘지로 잠식되고 있 다. 그러던 것이 95년 처음으로 8평방km로 줄었다. 최근 화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 95년 사망자의 화장률은 22%로, 전년도에 비해 1.5% 포인트나 증가했다. 71년에 비해서는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한국토지행정학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57% 가량이 화장이나 납골당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사망하 면 화장 뒤 산과 강에 뿌리거나, 납골당에 안치하겠다는 사람이 38%였다. 또 일정기간 매장 뒤 납골당 안치도 19%였다. 매장을 고집하는 사람은 43 %나 됐다.
지난해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사후 화장’을 당부해 세간의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설이면 이제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를 한다. 이번 설에는 가 족들끼리 매장과 화장을 놓고 한번 토론을 해봄직하지 않을까.
(3) 소를 떠내 보내야 하는 농심
“소 팔아서 자식들 대학에 보낸다”는 시절이 있었다. 소는 그만큼 한 가계의 든든한 밑천이었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65년 농민들은 소 1마리나 쌀 10가마면 자녀의 사립대학 1년 등록금은 댈 수 있었다. 쌀 80 kg 한가마가 3천2백10원, 황소 4백kg 한마리는 4만6백99원이었다. 이때 사립대 신입생의 1년 등록금은 3만4천3백20원이었다. 따라서 쌀 10.7가마 , 소 0.8마리분이면 사립대 학비는 가능했던 것이다.
30여년이 지난 요즘은 턱도 없는 소리다. 학교나 과에 따라 편차가 있지 만, 소 2~3마리는 팔아야 사립대 1년 학비를 댈 수 있는 상황이다. 사립 대 1년 등록금은 5백만원을 훨씬 넘는데, 소 한마리 값은 2백40~2백50만 원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연말부터는 그런 소값마저 더 폭락해 농민들이 울상이다. 한 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현재 한우 암놈 한마리(5백kg 기 준)는 2백44만9천원, 숫놈은 2백43만5천원이다. 3백20~3백30만원대였던 지난해에 비하면 큰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소값의 폭락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따른 시장개방과 농민들의 심 리적 불안감 때문으로 분석된다. UR로 인해 지난해 14만t 가량의 쇠고기 가 의무적인 물량으로 외국에서 수입됐다. 올해는 16만t으로 늘어난다. 우리나라의 쇠고기 자급도는 87년까지 1백%였으나, 이후 점차 떨어져 이 제 50%도 안 되는 상황이다.
소값이 계속 떨어지고, 경제가 위축되자, 농민들의 소 사육의욕도 크게 저하하고 있다. 정부까지 나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소값을 더 떨어뜨리겠 다고 하는 판이다. 따라서 너도나도 소를 시장에 내놓아 공급이 느는 바 람에 소값 하락은 계속된다.
(4) 탈북자 물결… 흔들리는 ‘북한’
도대체 북한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북한호’는 주인없는 난파선인 가. 최종 목적지는 또 어디인가. 최근 북한의 내부상황과 동향이 어떤지 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거의 없어, 북 한과 한반도의 앞날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드물다. 북한 전문가들 조차도 의견이 엇갈리고 자신있는 언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탈북자들은 계속 늘고,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북한 주민들이 많다는 보도 만 이어져 의혹을 더해주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통일을 갈구하는 이산가 족들은 북한의 이런 조짐에 행여 통일은 언제나 이루어질까,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진정 북한은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김일성 주석 사망과 식량난으로 인해 과도기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인가. 북한문제 전문가 들은 북한위기는 ‘쌀’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분석한다. 김일성 주석 의 북한 사회주의체제 아래서는 적어도 의식주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러나 김정일 체제 아래서는 ‘먹는 문제’ 때문에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체제 이탈자도 속출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
어쨌든 인민들이 ‘고기국에 쌀밥’을 먹게 하는 게 곧 ‘위대한 영도자 의 첫째 덕목’으로 여기는 북한 사회주의체제로서는 급작스런 식량난으 로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북한 지도부가 올 신년사에서 “먹 는 문제가 가장 큰 과제’라고 천명한 것도 이런 위기감을 드러내는 것이 다.
그래서 북한은 최근 미국, 일본, 국제기구 등에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체제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선장인 ‘북 한호’의 운명은 얼마나 쌀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 들의 분석이다.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미루고 있는 이유도 쌀 문제와 밀접 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중국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한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고 있고, 북한이 쌀 확보를 위해 자존심도 팽개치고 안간힘 을 쓰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식량난이 나름대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다만 주변국이 남북관계상 우리의 눈치를 보 지 않을 수 없는 변수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쌀협상이 잘 진행되어 미국 과 일본에서 각각 50만t씩의 쌀이 북한에 제공되면, 북한의 식량위기가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 주석 사망 만 3년이 되는 오는 7월8일 이전에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술·고스톱, 그리고 여성해방
명절은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가. 남성들이 술판이다 고스톱 판이다 하여 놀고 먹는 여유를 갖는 사이, 여성들은 부엌데기로 ‘중노동 ’에 시달려야 하는 명절.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다. 한낱 여성들은 남성축제를 위한 들러리인 것이다.
여성들은 제사상에 놓일 음식마련을 위해 신문지를 깔고 쪼그려 앉아 연 신 튀김을 만들어낸다. 뿌옇게 솟아오르는 기름연기는 코를 찌르고, 얼마 나 튀겼는지 허리가 뻐근 할 정도다. 그런데 끼니 때는 왜 그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쉴 새 없이 밥상을 차려 올려야 한다. 그 다음엔 설겆이가 기 다리고 있다. 손하나 까딱않는 남성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정작 제삿날은 어떠한가. 남성들이 그럴 듯하게 차려입고 조상들에게 절을 올리는 동안 초라한 차림으로 부엌에 앉아 있어야 한다.
올 설날에도 이런 애처로운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이젠 명절을 가족 공동체의 축제로 이어가기 위해 의미있는 변화를 시도해보자. 여자 도 제사에 참여하고,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 가고, 제사를 간소화해 명절 노동부담을 줄이는 그런 것들 말이다. 남녀가 평등한 명절문화, 그것은 남성하기에 달렸다.
(6) 대통령 아들은‘젊은 부통령’?
자민련의 안택수 대변인은 지난 1월24일 “한보에 대한 천문학적 대출에 민주계의 젊은 부통령이 개입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성명을 내 비상 한 관심을 끌었다. ‘젊은 부통령’이란 다름 아닌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인 현철씨를 지칭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보사태와 관련, 김현철씨는 야당으로부터 막대한 대출을 가능케 한 ‘배후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철씨는 “무슨 일만 터지면 나를 걸고 넘어지는데 이제 나도 더이상 침묵할 수만은 없다”고 ‘한보에 대한 특혜대출 개입설’을 완강 히 부인하면서, 법적 대응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현철씨의 말대로, 왜 무슨 일만 터지면 그의 관련설이 꼬리를 무는 것인 가. 대통령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우리나라 대통령의 아들 가운데 현철씨 만큼 권력행사와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이는 없다. 절대권력을 휘두른 전 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그의 아들들은 조용했다. 그러나 유독 현철씨만은 세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고, 베일에 싸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는 그가 대통령 아들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현실정치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 고려대 경영대학원에 재학중인 현철씨는 오는 2월 학위 수여식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학생신분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민주계의 핵심실세’, ‘청와대 핵심측근’, ‘여 권의 핵심실세’라는 말이 김현철씨를 지칭하는 공식용어로 사용됐다. 간 간이 ‘소통령’ ‘황태자’라고도 불렸으나, 한보사태 이후에는 ‘젊은 부통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보이지 않게 행사하고 있는지는 확연히 드러 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알려진 그의 한 의원에 대한 폭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의료기기회사인 (주)메디슨의 특혜의혹을 제기 했던 장애인인 국민회의 이성재(전국구) 의원을 두고 “야당에 이성잰가 절룩절룩하는 X가 있나본데 (메디슨)이 청와대와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 미친 XX들 폭로하라면 하라지”라는 폭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7) 하늘도 모르는 대권의 향방
오는 12월18일 실시되는 제15대 대통령선거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를 끈다. 우선 여야간의 정권교체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는 해방 이후 단 한차례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이와 관련해 야권 에서는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있어 주 목을 받고 있다. 따라서 야권에서는 이들의 연합정권 성사 여부가 최대의 관심사인 셈이다.
두번째 흥밋거리는 후보군이 난립하고 있는 여권의 대선주자는 과연 누구 로 낙착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애초 ‘9룡’의 주자가 대선가도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현재로서는 조금씩 압축되어가는 과정이다. 특히 정치권에 태풍처럼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한보사태’는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최형우, 김덕룡 의원 등 민주계 핵심인사들은 한보 와의 연루설로 그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상당한 치명상을 입은 상황이 다. ‘한보태풍’은 이처럼 여권의 대선구도에 돌출변수로 등장해 대선가 도를 더욱 혼미스런 양상으로 몰고가고 있다. 대선주자 중 누가 한보태풍 에서 휘말려 중도탈락할 것인가. 대선주자 중에는 또 노동법 날치기 처리 에 총대를 둘러멨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던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 가 선두그룹에서는 다소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세번째 흥밋거리는 여권과 야권에서 깜짝 놀랄 만한 제3의 후보가 등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여권에서는 이인제 카드, 야권에서는 조순 및 이종찬 정대철 카드 등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가 여권 대선주자가 될 것이며, 여야간의 대 결에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질지 여부도 오리무중의 형국이다.
(8) 미로 헤매는‘한보게이트’
30여년 동안 세무공무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기업을 일으켜 세운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 그는 도대체 어떤 힘으로 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은행대출을 받아내 계열사를 확장해 나가고, 거대한 덩치의 철강 산업에 뛰어들었을까. 91년 수서비리, 95년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 등에 잇달아 연루돼,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인 그가 최근까지도 제일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수천원억원에 이르는 은행대출을 받은 것은 미스 터리가 아닐 수 없다. 정상적인 정치·경제 구조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한보 금융특혜사건의 핵심은 역시 정치권의 개입여부다. 시중은행들 이 청와대나 정치권의 외압을 받지 않고서는, 야권에서 ‘사기꾼’으로 부르는 정태수 총회장의 한보에 수조원대에 이르는 대출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전·현직 은행장들과 은행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청와대쪽 과 민주계 핵심쪽에서의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삼 대통령 의 차남 현철씨를 비롯해 청와대쪽에서는 이석채 경제수석, 이원종 정무 수석, 한승수 경제부총리 등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여권에서는 최 형우 신한국당 고문을 비롯해, 김덕룡, 서석재, 홍인길 의원 등 민주계 4 인방이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 을 하고 있다. 야권은 이에 대해 김 대통령도 조사를 받아야 하며, 현철 씨를 지목해 ‘젊은 부통령의 배후설’을 주장하고 있다.
한보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한보철강에 무려 1조8백억원의 대출을 해줬다. 제일은행이 대출해준 총여신규모는 27조원으로, 이 가운데 4%가 한보에 집중된 셈이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대출이 한보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정치권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연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9) 자본의 칼자루 정리해고 회오리
“기업가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경영상의 이유로 아무나 자를 수 있다. 이제 노동자는 파리목숨이나 다름없다.”양경규 전국전문기술노조연맹 위 원장은 지난해 12월26일 신한국당에 의해 기습 날치리로 처리된 새 노동 관계법이 도입한 ‘정리해고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노동관계법은 재계의 요구대로 변형근로시간제, 파견근로제 등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자 들의 생존권을 크게 위협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노동자들이 가장 위협적 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정리해고제다.
개정전 노동법에는 정리해고와 관련, 정당한 이유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네가티브’(negative)한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새 노동법은 경제, 기술상의 이유로 기업가가 언제든지 노동자를 자를 수 있는 적극적 인 개념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사용자는 ‘계속되는 경영악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과 기술혁신 또는 업종전환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 요’에 따라 마음내키는 대로 노동자를 정리해고할 수 있다.
(10) 노년의 불행 막을 수 없나
이제 부모의 건강에 대해 생각해보자. 요즘 명절이나 돼야 겨우 부모를 찾게 되는 ‘불효자’가 많다. 빡빡한 직장생활과 그로 따른 스트레스, 혹은 힘겨운 살림살이에 가위눌려 있는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 쩌면 핑계일 뿐, 조금만 신경을 써도 늙고 외로운 부모에게 상당한 위안 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중풍이나 당뇨병, 그리고 흔히 노망이라고 불리는 치 매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집안의 기둥인 부모가 그런 회복하기 힘든 병에 일단 걸리게 되면, 그것은 당사자는 물론 온가족의 고통이요, 가정 불화의 요인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평소 노부모를 둔 가족들은 그들의 건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풍이나 당뇨 환자는 정신적으로는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상태여서, 가족 들이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보살피면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힘들지라도 나름대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게 ‘노인성 치매’ 다. 치매란 뇌세포가 파괴돼 후천적으로 기억력, 지적 능력 등 정신기능 이 심하게 쇠퇴하는 무서운 증상이다. 암, 에이즈 등과 함께 현대 인류의 무서운 질병으로 꼽힐 정도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4백여만명이 이‘알 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려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증 치매까지 합치면 약 10만명이 넘는 노인들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 정된다.
혹 당신의 부모가 이른바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등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노망들렸다고 그냥 방 치해서는 안 된다. 최근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담을 해주는 단체나 전문병원, 요양시설 등이 늘고 있는 추세다. 치매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치매가족회’(02-431-9963)에 문을 두 드려라. 전화상담도 가능하다.
이번 설 명절에는 온가족이 모여 부모의 건강한 여생에 대해 진지한 얘기 를 나눠보면 어떨까.
김경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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