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이현세씨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이현세의 ‘신화 창조’

우리 만화계의 정상에서 끊임없이 신화를 창조해온 이현세(43)씨가 또하 나의 신화를 그리고 있다. 스포츠, 의학, 주먹세계, 한-일관계, 가상공간 등 끝모르게 가지치던 그의 관심사가 이번엔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에 미쳤다. <천국의 신화>(해냄미디어). 오는 2001년까지 앞으로 5년간 1백 권까지 이어질 이 야심작은 천지창조에서 발해가 멸망하기까지 우리 민족 의 흔적을 쫓는다.

제1부 ‘하늘과 땅’편을 펼치면 환인과 환웅은 물론 복희, 여와, 신농씨 등 신화로만 기억하고 있던 인물들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여기에 만물을 창조한 여신, 사악한 용, 거대한 인어, 늑대인간, 그리고 신화의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사랑과 이별, 원한과 복수 등이 어우러진 다. 책은 신화를 현대인의 소심한 머리로 옹색하게 짜부려뜨리지 않고, 대범한 필치로 역사 속으로 확대한다. 책을 읽노라면 그 옛날 바이칼호에 서 말의 목을 축이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던 조상들의 웅혼한 기상이 느 껴진다.

“<천국의 신화>는 허구입니다. 하지만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 동북아시아와 세계 각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을 용광로에 넣어 새 롭게 주조해낸 거죠. 우리의 조상인 천족과 중국의 조상인 용족을 두 축 으로 세계사 속에서의 한국사가 아닌 한국사 속에서의 세계사를 풀어갈 작정입니다.”

그가 이런 역작을 기획한 까닭은 소박하다. “80년대 중반 한-일 관계가 독도, 교과서 문제 등으로 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한번 제대로 알고 싶었죠. 단군과 광개토대왕 두 인물에 심취해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자료에 빠져들었고 결국 상고사에까지 닿고 말았죠.”

그는 오는 3월부터 대학 강단에 선다. 동료 만화가 이두호씨와 함께 세종 대 영상만화학과 교수로 임용됐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조심스럽 다. “정말 걱정입니다. 배우는 것도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남을 가르친 다니 어색하기도 하고요. 열심히 하겠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