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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다큐네트 포토스 |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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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회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다큐네트 포토스' 회원들.)
사회다큐멘터리 사진을 지향하는 일군의 사진작가가 기존 매체의 상업성 에 ‘반란의 깃발’을 들었다. 이들의 ‘청석골’은 인터넷. 지난 2월1일 첫번째 ‘반란의 목소리’ <다큐네트> 97년 2월호(http://docunet.org)를 내보냈다.
이들이 지향하는 ‘반란’의 내용은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사진 웹진(웹 +매거진) <다큐네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창간호이기도 한 <다큐네트> 2월호에 실린 기사는 모두 네건이다.
네건 중 서울역의 부랑아 박자유씨의 삶을 추적한 특집기사 ‘국민소득 1 만달러 시대의 그늘’과 인간문화재 한형준씨 이야기 ‘손기와 만들기 50 년’은 한국의 고도성장 뒤에 숨은 ‘인간’을 다뤘다. 반면 보스니아전 쟁 막바지의 인간 군상을 다룬 ‘죽음도 삶의 일부’와 중국 노동자 귀성 동행기 ‘고향 가는 데 5박6일’에는 지구촌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기사는 모두 10장 남짓한 사진과 이야기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기사의 공통점은 기존 신문·잡지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는 것입 니다. 창간호에 실린 기사들은 모두 작업기간이 2개월이 넘는 것입니다. 어떤 자본주가 높은 월급을 주는 인쇄매체 사진기자들에게 돈 안 되는 이 런 작업을 시키겠습니까.”
‘다큐네트 포토스’의 홍보담당 송정근(27)씨는 <다큐네트>의 기사들을 “한마디로 채산성이 안 맞는 것들”이라고 요약한다. 다큐네트 포토스는 바로 8명으로 이루어진 ‘반란군’의 이름이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송씨 를 비롯해 몇몇 동지들이 처음 모임을 가진 것은 지난해 10월. 이들 8명 은 프리랜서부터 주간·월간지 사진기자 등 다양한 위치에 있었지만 “상 업적 인쇄매체 속에서 사회다큐멘터리 사진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문제의식만은 동일했단다. 두달간의 만남을 통해 입장정리를 한 이들은 지난해 12월 초 다큐네트 포토스를 결성하고 그들의 ‘꿈’을 인터넷에 싣기로 했다.
“인터넷을 택한 것은 인쇄매체의 상업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 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세계 곳곳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다큐멘터리사진에 관심을 가진 전세계인을 연결해 일정한 수 요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다큐네트 포토스 회원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두달 남짓 작업 끝에 인터넷에 ‘희망의 터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코 “돈이 되는 장사” 는 아니었다. 이들은 인터넷에 웹진을 띄우는 데 드는 비용 3천만원 남짓 을 대부분 ‘인건비 부조’로 해결했다. 서버는 학습지를 만드는 ‘디딤 돌 정보통신사업본부’에서 무료로 제공해줬고, 그 밖에 웹디자인, 영문 번역, 사진스캔 등도 뜻을 같이 한 이들의 ‘노력봉사’로 해결한 것이다 . 그래도 2월호 창간엔 약 1백만원 정도가 들었고, 다큐네트 포토스 회원 들에게 10만원씩이 ‘할당’됐다.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사회를 기록하는 일이 사진쟁이들의 의무라 는 믿음 때문입니다. 1백년 아니 2백년 뒤 후세사람들이 무엇으로 현시대 를 얘기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자료가 이 시대의 사회상을 담은 사진일 겁니다.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는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는 것, 그것은 이 시대를 호흡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최소한의 사명입니다.”
다큐네트 포토스 회원들은 앞으로도 매월 1일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으 로 인터넷 독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기획회의는 매월 초에 가질 예정이지 만, 그때 다음호 취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대부분 2달 정도 의 밀착취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성에 대한 고집이 <다큐네트> 창간호에 ‘1월 총파업’을 다 루지 못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내부적으로 1월 총파업을 다루자는 의견 도 많았지만, 그래서는 일반 인쇄매체와 차별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더 높 았습니다. 저희는 사회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수로 승부할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상업성’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다큐네트 포 토스 회원들은 현재 <다큐네트>를 뒷받침할 광고주를 찾고 있다. 앞으로 도 다달이 들어갈 1백만원 가량의 비용은 이들 ‘가난한’ 사진쟁이에게 커다란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큐네트>를 운영할 수 있는 최소기 금만은 광고로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면 광고주와 갈등문제가 생기겠죠. 하지만 만일 광고로 인해 우리 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면 광고를 포기하고 다시 자비로 만들어야죠. 광고 에의 종속은 바로 우리 ‘반란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김보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