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야기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농익은 포도의 ‘늦따기 와인’

독일인들은 양질의 포도주를 만들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다. 그러나 이탈리 아, 스페인,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국에 비해 기후가 한랭하고 음습하여 포도의 질과 작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하여 특별한 포도 재배기술과 수확방법을 연구했다. 오늘날 라인 가우 지역과 모젤 자르 지역의 특수 와인은 세계의 고급와인 대열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라인계곡에 가면 겨울철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포도의 ‘늦따기’ 기법이 발견 된 뒤, 고급의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 고전적인 포도 수확방법이 되었다. 여기에는 에피소드가 얽혀 있다. 중세의 수도원은 포도주 생산을 독점하 고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 수사들은 포도주 제조기술을 발전·보호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8세기 라인계곡의 포도원에서는 수도원장의 허락없이 포도를 수확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1775년 쉴로스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한 수도원장이 회의차 타지에 가 있었다. 그 사이 그의 수도원에 속한 포도원의 포도들 이 익었는데, 수도원 사람들이 수확을 허락 맡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이윽고 수도원장이 돌아와보니, 포도는 농익어 쭈글쭈글해지고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상태로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에 없이 맛난 포도주가 생성되 지 않았는가. 보통의 포도는 풋포도에서 나는 신맛이 포도가 익음에 따라 서 사라지는데, 이 늦따기 포도에서는 당도도 높아지고 동시에 곰팡이로 부터 유래된 향긋한 신맛이 그대로 있었다. 아주 이상적인 와인이 만들어 진 것이었다.

이 밖에 익은 포도 송이만을 골라 따서 만든 와인과 건포도 상태로 만든 와인, 그리고 포도 송이가 언 뒤에 수확하여 만든 와인이 있다. 기후의 핸디캡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멋진 포도주를 만들어낸 라인계곡의 장인들 에게 갈채를 보낸다.

이종기/ 두산씨그램 생산팀장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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