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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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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생기 가득한 겨울산의 진경
(사진/횡계 오징어불고기.)
이곳 산간의 이름난 눈의 명소들 역시 고속도로의 출입구를 중심으로 이 어지는데, 이들 중 속사에서 이어지는 방아다리약수길과 진부와 유천 출 입구에서 연결되는 오대산 월정사 계곡, 횡계에서 들어가는 용평 리조트 일대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과 눈골의 신선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디 든 한번 발을 들여놓고 나면, 이런 눈고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간 다 행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겨울이 깊어가면서 눈도 쌓일 만큼 쌓였고, 계절의 맛이 물씬 풍겨나 말 그대로 눈고장임을 실감케 한다.
흔히들 겨울은 동식물이 겨울잠을 자는 계절이어서, 죽은 듯 적막한 설원 을 연상하기 쉽지만 실제 겨울산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겨울산의 신선함 과 넘쳐나는 생기는 5~6월 신록의 싱그러움과 맞겨룰 만하다. 흰눈을 바 탕으로 빨갛게 약이 오른 관목숲 가지와 티 하나 없이 파란 순녹색의 솔 잎이 햇볕에 반짝이는 모습이란, 충만한 생기 그 자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그 해맑고 생생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며들기라도 하듯 기분이 상쾌해지고 웬만한 추위쯤 잊어버릴 수 있다.
가는 길도 눈길 구간에는 제설기능이 원활하게 갖추어져 어느 정도 큰 눈 도 하루나 이틀이면 승용차 소통이 무난하게 치워진다. 그러나 고속도로 를 벗어나면 골마다 조심스런 눈길이고, 짧은 겨울 햇살이 오후 5시를 넘 기기 무섭게 그늘을 드리워, 서울을 기준삼아 하루나 이틀쯤 묵어오는 일 정으로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즌을 맞은 용평스키장 일대는 민박까 지 성수기여서 어디나 잠자리는 넉넉한 편이다. 다만 스키나들이가 아닌 가족이 함께 가는 눈구경길이라면, 차라리 초입인 진부쯤에서 자고 눈의 명소들을 차례로 들러보는 것이 더 편하다.
또 주변에는 겨울철 별미들도 고루 박혀 있어 즐거움을 더해준다. 진부에 는 산채된장으로 이름난 부일식당(0374-35-5477), 월정사 입구 유천마을 에는 유천막국수집(0374-32-6423)이, 횡계에는 오징어불고기로 이름난 납 작식당(0374-35-5477) 등이 있다.
좀더 욕심을 낸다면 이곳 눈구경은 겨울바다와도 이어진다. 대관령 고개 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때에는 두 길을 염두에 두고 가면 도움이 된다. 하나는 영동고속도로가 끝나는 강릉 IC에서 좌회전해, 오죽헌과 선교장을 거쳐 경호와 경포대 해수욕장을 들러보는 것이다. 또하나는 강릉 IC에서 우회전해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25분쯤, 옥계 톨게이트로 나가는 금진어항 이다. 이 경우 동해안에서 가장 싸고 싱싱한 회를 만끽할 수 있는데, 잘 먹으면 서울까지 기름값이 나온다고 할 정도다. 이름난 집으로는 어장횟 집(0394-34-2267)을 꼽는다.
인제군 미산-훈훈한 인심이 반기는 눈골
(사진/푸짐한 산골 상차림. 직접 만든 손두부와 동동주가 있고 짭짤한 민물고기 조림도 있다.)
겨울철 강원도 산골을 지나다보면, 흰눈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들 이 인기척 하나없이 적막감에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제군 에서도 벽촌인 상남면 내린천변의 1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 미산은 그런 기색이 없다.
지난 가을 입구인 상남면에서 마을까지 포장이 되어 접근이 다소 수월해 지기는 했다지만, 노면은 여전히 눈 반 얼음 반이다. 하지만 5km 남짓 들 어가면 이내 마을이 나타나고, 초입에는 열녀비가 서 있는 정문(旌門)이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어느새 군불을 지펴 구수한 연기 내음이 배어나는 , 산골 겨울나기의 현장인 미산이다.
정문 바로 다음집이 미산 민박 1호집이고, 정문에 모신 할머니의 손자 김 흥연씨 일가가 살고 있다. 집은 다 사그러져가는 산골 초막이지만, 집안 내력이 그렇듯이 소박하고 따뜻한 인정이 넘쳐난다. 미리 전화를 걸어놓 고 가면, 방은 뜨끈하게 데워놓고, 산골의 갖가지 맛거리를 준비해 준다. 그중에는 얼음구멍을 오함마(해머)로 깨고 잡아왔다는 민물고기 조림도 있다.
막걸리와 강냉이엿은 3일전쯤 주문하고 가면 된다. 순두부와 막국수, 올 챙이묵 등은 도착하여 주인과 손님이 함께 직접 만들어 먹는다. 일손이 따로 없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거나 국수를 누르는 일을 도와주어야 하고, 부인들은 부엌에 들어가 양념을 함께 비비며 고향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 다. 이렇게 해서 언 땅에서 꺼내온 김장김치와 얼음이 서걱거리는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막국수맛이란 과연 별미가 아닐 수 없다.
떠날 때 밥값도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조금 넉넉한 듯 싶으면 너무 많 다고 거슬러주거나 어린 아이들 것은 빼라고 할 정도다. 이래저래 첩첩산 중 눈골에서나 맛볼 수 있는 옛 고향의 정취를 체험하고, 더불어 사는 즐 거움도 맛보게 된다. 아마도 소박하나마 인정이 배어나는 눈골 나들이라 면 이곳이 마지막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산민박(0365-461-6921)은 떠나기 전 예약을 해야 된다. 가는 길은 서울 의 경우 양평~홍천을 거쳐, 홍천과 인제 중간지점인 철정 검문소 삼거리 에서 우회전해 내촌을 지나 30.5km 들어간다. 중간에 아홉고개라는 고갯 길의 그늘진 오르막 지점이 항시 빙판을 이루어 특히 야간에는 조심운전 을 해야 한다. 이곳만 조심하면 서울에서 3시간 반에 닿을 수 있다.
거제 학동-신비한 파도소리에 취한다
거제도 남부 학동은 바닷물에 깎인 동글동글한 자갈들로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하나같이 반들반들하게 깎인 주먹 같은 둥근 돌이 크고 작은 것으
로 나뉘어 있는데, 층층이 해안을 덮고 있어 인상적이다. 거제 사람들은
이런 몽실몽실한 돌모양을 보고 ‘몽돌’이라 부르며, 해안도 몽돌해수욕
장이라고 한다.
몽돌은 물이 깊을수록 굵고 해안으로 오르면서 크기가 점점 작아져, 밤알
만한 것에서 콩알처럼 고운 것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파도가 약하게 밀려
오면 맨 윗부분의 작은 돌들이 물결에 쓸리며 ‘자르르 자르르’ 소리를
내, 파도소리와 부드럽게 화음을 이룬다. 어쩌다 큰 파도가 몰려오면 물
가 가운데 큰 몽돌들이 물살을 따라 구르며, 이때는 ‘따그르르 따그르르
’ 보다 영근 소리가 물소리 위로 맑고 영롱하게 퍼진다. 이런 신비를 안
은 몽돌해수욕장은 계절이 따로 없고, 한겨울 겨울바다 산책길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무튼 몽돌해안을 걸으며 남해바다의 맑고 온화한 해풍과
함께 신비한 파도소리에 취하면, 몇번이고 오간 자국을 되밟아도 물가를
쉽게 떠나지 않게 된다. 경남일대에서는 꽤나 사랑받는 해안임에 틀림없
다.
부산과 대구에서는 각각 마산과 고성을 거쳐 거제로 들어가고, 진주쪽에
서는 직접 고성을 거쳐 거제교를 건너게 된다. 부산과 마산, 진주 등지에
서는 하룻길로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하루쯤 묵는다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하는 것이 다소 흠이다. 그럼에도 여유있게 떠나면 남
해바다에서 아침 해돋이를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다. 오가는 길에 충무와
고성 당항포, 연화산 옥천사 등을 들러볼 수 있어 즐거움은 몇배 더하다.
나들이의 즐거움인 먹거리도 학동의 싱싱한 겨울바다 횟거리를 비롯해,
고성 성은정(0558-74-2870)에서 떡 벌어지게 내놓는 경상도식 한정식 상
차림도 볼만하다. 반주상과 식사상을 구별해 찬이 두 차례로 나뉘어 나오
는데, 처음 나오는 횟감과 생선류, 그리고 탕과 산채류 등은 푸짐하기 이
를 데 없다. 또 당항포도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이곳 명물인 실붕장어
회를 맛보며 충무공의 승전일화를 곁들일 수 있다.
항구 내 남경식당(0556-73-2605)의 실붕장어 차림솜씨가 뛰어나다. 학동
은 거제교에서 사등 삼거리~거제~산양~구천골~학동 길이 가장 빠르다.
서해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나앉은 태안반도는 해안선이 다채롭고, 아름답
기로 이름나 해안선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국내에서는 하나뿐인
해안국립공원인 셈이다.
만리포해수욕장은 바다쪽으로 뾰족하게 나온 반도의 끝자락에 있다. 때문
에 해수가 유난히 맑고, 활처럼 휘어진 모래사장은 서해안 다른 해수욕장
들과 달리 모랫발이 희고, 개펄이 섞이지 않아 한낮이면 눈이 부실 정도
로 희다. 더욱이 떡가루처럼 고운 모랫발은 물이 들고 날 때 유리알처럼
다져져, 그 위를 따라 걸어도 발이 빠지지 않는다. 내다보이는 바다도 앞
에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수평선이 하늘 중턱에 걸려 마치 동해바다를 보
는 것만 같다.
또한 모래사장의 양쪽 끝은 해안의 지층이 솟아오른 기암으로 장식됐고,
벼랑 위에는 짙은 송림까지 덮혀 있어 그림 같은 절경으로 마무리된다.
금상첨화로 두곳의 송림 속에는 모항과 천리포 등 어항이 들어 앉아 연안
의 각종 해산물이 철따라 난다. 이렇듯 만리포해수욕장은 천혜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어,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태안반도 내 제1경을 장식
하고, 겨울바다 나들이에도 최적지로 손꼽힌다.
다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금도 해수욕장 내의 숙박시설과 편의시설들
이 썩 달라진 것이 없는 게 흠이다. 도로사정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것을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으로 받아들여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
래서 일단 해수욕장 내에 들어서면, 여느 겨울바다에 비해 맑고 조용해
마치 섬 속에 들어앉은 듯 한적하고, 서해바다 고유의 풋풋한 정서 속에
묻힐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다 제쳐놓고라도, 겨울철 서해바다의 차
고 상큼한 바람에 뺨을 달구며 곱게 다져진 모래밭을 걷다보면, 그 시원
한 물소리와 바람소리에 온갖 상념이 말끔하게 씻겨나가는 듯 심신이 개
운해진다. 특히 해수욕장과 이어지는 곳 명소에서 나는 계절의 별미는 빼
놓을 수 없다. 그 첫째가 해수욕장의 남쪽 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모항의
‘아나고 통구이’라는 것이다.
모항은 태안반도 내에서 해안 단애가 가장 발달된 곳이어서 해수욕장과는
전혀 다른 풍광을 이루고 있다. 포구의 삼면은 병풍처럼 둘러싼 벼랑과
파란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방파제 하나로 천혜의 요새를 이룬다. 인
근 연안어선들이 제발로 찾아들게 마련이고, 요즘 제맛나는 것이 ‘아나
고(붕장어)’다. 이것을 산 채로 톡톡 토막지어 소금을 훌훌 뿌리며 숯불
에 구워 먹는다. 다 익도록 살아 꿈틀거릴 만큼 힘이 넘치고, 노릿노릿하
게 구어내 먹는 맛이란 비할 데 없이 고소한 진미다.
또 한곳, 해수욕장의 북쪽인 천리포에는 ‘갱개미회’라는 것이 있다. 갱
개미란 가오리의 일종이라고 한다. 펄떡이는 가오리로 회를 떠 양파와 함
께 빨갛게 무쳐놓으면, 가오리 특유의 육질이 오돌오돌 씹히는 묘한 지감
과 매콤새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소주라도 곁들이면 한마디로 그만이다.
아나고 통구이는 모항 오성회관(0455-72-0659)이 원조집이고, 갱개미회는
천리포횟집(0455-72-9170)이 잘한다.
태안반도로 빠지는 서해안 도로가 최근 많이 좋아지고 있다. 경부고속도
로 평택 IC에서 둔포와 안중으로 나가는 길의 평택시가지를 우회하는 길
이 생겼다. 인천과 안산, 수원에서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면 아산만 방
조제까지 40분대로 닿게 된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의 당진~삽교천 구간은 아직 주말체증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아예 주말을 피하거나 서산에서 운산쯤 오다가 덕산온천으로
빠져 예산~온양~둔포~평택으로 우회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글·사진 김순경/ 여행칼럼니스트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사진/당항포 실붕장어회.)
태안반도 만리포-수평선 걸린 쪽빛 겨울바다
(사진/천리포 어항의 갱개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