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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희망의 사람들 |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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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조는 독립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지킬 때 힘을 가질 수 있다. `노동자의 힘' 본부는 파리 14구 6층짜리 건물에 있다.)
“8시간 일하고, 8시간 자고, 8시간 삶을 즐긴다.”
노동운동이 싹트던 시기부터 노동자들이 꿈꾸어오던 세상이다. 적어도 노 동시간면에서 본다면 프랑스에서 이 꿈은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졌다. 현 재 대부분 5일 근무제에, 법정주간노동시간이 39시간에 불과하니 말이다. 영국의 경우는 아예 법정주간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의 제한조차 없고, ‘ 놀기 좋아하는’ 이탈리아도 주간노동시간이 48시간인 데 비한다면 프랑 스는 분명 노동조건의 성취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도 프 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노동운동이 활발한 나라다. 왜그런가? “착취와 모 순이 극심한 곳일수록 저항과 운동이 격렬하다”는 대원칙에 비추어볼 때 언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 해답은 프랑스 생디칼리슴과 솔리다리 테(연대의식)에 있다.
“파업은 혼란 아닌 사회적 연대의 표시”
국가를 포함한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철폐하고, 생산단위로 조직된 노동자 조직에 바탕을 둔 사회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직접행동을 주장 하는 생디칼리슴. 이 이념의 조국,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은 그 규모나 그 성과면에서나 세계인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늘날 하루아침에 총파업을 조직하고, 수개월간 사회를 전면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서는 교사나 공무원의 파업이 더 격렬하고, 심지어는 경찰까지도 노조활동이 왕성하다. 그 숱한 파업에도 국민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업자에 대한 여론 의 지지도는 언제나 60%를 웃돈다. 프랑스인들은 파업을 혼란이 아니라 사회적 진보, 사회적 연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겨울 프랑스 전역을 두달간이나 마비시켰던 엄청난 총파업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체국 노조의 파업으로 우편물은 일체 배달되 지 않았고, 지하철과 버스·기차는 두달간이나 멈춰버렸고, 교사나 공무 원도 거리로 뛰쳐나갔다.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을 이 대규모 전국적 파업 을 이끈 장본인이 바로 프랑스 3대 노조연맹 가운데 하나인 노동자의 힘( FO) 사무총장 마르크 블롱델이다. 그 뒤 그는 프랑스에서 ‘강한 지도자 ’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한창이던 지난 1월24일 한국 언론사상 최초 로 프랑스 노동운동의 최고 참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리 1 4구 유럽에서 제일 높다는 63층의 몽파르나르 빌딩에서 멀지 않은 멘느 거리에 자리잡은 6층짜리 FO 본부는 입구에 붙어 있는 CGT-FO라는 현판을 빼면 겉보기에 여느 관공서 건물 같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노동운동 관계 자료실과 도서관이 다. 노조연맹의 사무실에 도서관이라니? 다소 어색한 느낌이다. ‘우리나 라에는 전문도서관에도 노동운동 전문코너는 없을 텐데’라는 생각에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빽빽하게 꽂혀 있는 노동운동 관계 서적과 잘 정리된 자료는 역시 ‘운동은 과학’이란 생각을 들게 했다.
6층 꼭대기의 전망좋은 위원장실은 비서실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블롱델의 비서인 머리가 희끗한 50대 여인은 다름 아닌 블롱델의 부인이 다. 블롱델은 첫 부인이 요절한 뒤 20여년을 동거한 끝에 자신의 비서, 조지안 고베르와 지난해 12월28일 생제레옹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려 당시 언론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공시적으로는 ‘ 신혼부부’인 셈이다.
20년의 동거 끝에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결혼증명서에 서명을 한 블 롱델에게 기자들이 몰려와 소감을 묻자 블롱델은 “어렵게 결혼했지만, 사업주와 협상 끝에 하는 서명보다는 훨씬 쉬웠다”며 노조 지도자다운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는 비서로 대하고, 저녁에도 마 주하니 우린 24시간 생디칼리슴을 실현하는 부부”라며 껄껄 웃는 블롱델 은 한국 총파업 문제로 화제가 흐르자 금방 거침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 였다.
“한국에서는 교사는 노조도 할 수 없다는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하긴 프랑스에서 통일노조연합(FSU)이나 교원노조연합(FEN) 등 교직원 노 조가 프랑스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 중 하나인 점을 생각한다면 블롱델 같 은 프랑스 생디칼리스트가 한국의 노조 현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 하다.
총파업 이끌며 ‘강한 지도자’로 부각
“이번 한국 총파업에서는 노조의 권리와 구실, 그리고 자본의 유연화 전 략에 대한 저항 이 두가지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유연화 문제는 프랑스 에서도 논의되는 문제지만 노조의 기본권 문제는 심각합니다. 나는 FO의 위원장이며, 국제노동기구(ILO) 집행부의 이사이며, 국제자유노련(ICFTU) 의 부의장으로서 이 문제에 더욱 민감합니다. ILO 규약 87조와 98조에는 노조는 정부와 사용주로부터 철저히 독립되며, 그 활동에서 완전한 자유 를 누릴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한국 총파업은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노조의 기본권 탄압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입니다.” 그는 노동조합의 자유 없이는 어떠한 사회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거듭 강 조한다.
1백만 노조원을 자랑하는 FO의 지도자 마르크 블롱델. 프랑스판 전경련격 인 프랑스경영자전국평의회(CNPP)와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이 생디칼리 스트 지도자는 지난 35년 남짓을 한결같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해 왔다. 그는 1938년 파리 근교 쿠르브부와에서 태어났다. 그의 설명에 따 르면 그것은 ‘사고’였단다. 태어날 당시에만 파리 근교에 있었지 태어 난 지 2주일 만에 고향인 북부 프랑스의 파 드 칼레지방으로 돌아가 자랐 기 때문이다. 파 드 칼레지방은 탄광촌으로 유명한데, 바로 에밀 졸라의 대표적 소설 <제르미날>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탄광노동자의 애환을 몸으로 겪으면서 자란 블롱델이 뒷날 강한 노동운동 지도자가 될 수 있었 던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일용노동자로 전전하며 고학으로 공부했 기에 학창시절부터 이미 그는 학생노조(UNEF)와 FO에 동시에 가입해 열성 적으로 활동했다. 식당에서 접시닦이도 했고, 우체국에서도 일했으며, 임 시직으로 가르치기도 하는 등 안 해본 일이 없는 그는 결국 못 가진 자의 유일한 힘은 단결과 투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평생을 노조활동 에 바치게 되었고 지난 89년에는 앙드레 베르쥐롱의 후임으로 FO의 위원 장에 선출되기에 이른다. 올해로 40돌을 맞게 되는 FO는 1895년 창설된 프랑스 제1노조 노동총동맹(CGT)에서 갈라져 나온 노조이다. 블롱델은 FO 의 탄생이 “CGT가 지나치게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되고 CGT의 지도부가 CG T를 공산당의 하부조직쯤으로 생각해, 여기에 반발하여 분리독립된 것” 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아직도 정식명칭은 CGT-FO이다. FO의 창설자는 1909년에서 1947년까지 CGT의 위원장을 지낸 레옹 주오다. 레옹 주오는 1 949년에는 국제자유노련 부의장을 지냈고, 195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 았다.
정치적 이해와 노조활동은 분리해야
생디칼리스트로서 FO의 지도자 마르크 블롱델은 수단으로서의 집단주의는 받아들이지만 통치수단으로서의 집단주의, 즉 공산주의는 부정한다. 그가 공산주의 성향의 CGT에 가입하지 않고 독립노조 FO에 가입한 것도 그 때 문이다. 블롱델은 강력한 노조의 힘은 노조가 정치권력의 부속물이 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지킬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는 이것을 견제세력과 반권력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노조는 정치정당이 아닙니다. 따라서 영국처럼 노조가 노동당의 강령을 좌지우지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CGT의 총서기 루이 비안네가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 다음날 그 이야기가 프랑스 공산당(PCF) 서 기장 로베르 위에 의해 공식입장이 되는 식의 권력지향적 노조는 받아들 일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FO가 CGT에서 분리되어 나온 거지요. 노 조의 생명은 자유와 독립입니다. 만약 독립적인 자유노조가 없었더라면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고, 전체주의 권력도 무너지지 않았 을 겁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노조는 반권력체가 아니라 견제력, 균형추 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CGT나 사회당을 지지하는 민주노동연합(CFDT) 관계자 에게 했다면 단박에 거센 반박이 이어질 것이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항 변할 것이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 되려면 노조의 힘뿐만이 아니라 정당의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영국 노동당과 영국노총(TUC)이나 공산당과 CGT는 이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관계이다.’
하지만 블롱델의 논리논 바로 FO 창설자 레옹 주오의 가르침이자, 현재 F O의 이념적 토대이며 소위 프랑스식 생디칼리슴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다. 생디칼리슴이 프랑스 노동계급의 철저한 무정부주의와 반 의회적 전 통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은 블롱델의 사고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법하다. 생디칼리스트는 어떠한 국가든 국가는 억압 도구이며 관료주의적 구조로 인해 반드시 비효율적이고 독재적인 체제가 되기 마련이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블롱델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FO가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 고 지적한다. 그 자신 역시 사회당 당원이다. 그는 노조나 노조원이 정치 적 입장을 가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조가 정치권력체에 종속될 위험 성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블롱델의 집무실 구석구석에 투우사나 투우용 소의 포스터, 장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3백65일 바쁜 중에도 간혹 시간이 날 때면 그는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투우를 보러 간다고 한다. 투우사의 정열과 생디칼리스트, 어쩐 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노조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어 떠한 법안도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정부도 야당보다는 노조의 눈치를 먼저 본다.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진 노조지만, 사실 노조가입률은 전체 노동자의 10%선에 불과하다. 일본 24%, 영국 33% , 덴마크 85%, 스웨덴 84%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비율이지만 프랑스의 노조는 예의 어떤 나라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정당원의 수로 그 정당의 득표율을 따질 수 없듯이, 노조가입률로 노조의 영향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조가입률이란 노조비를 내고 정식으로 등록된 노 동자의 비율을 말할 뿐이지, 노조에 대한 지지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 는 것이 블롱델의 설명이다. 1930년대 CGT는 조합원이 5백만명을 넘었지 만(현재는 약 1백만명) 지금의 5배의 힘을 가졌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1백년 투쟁의 전통이 사회를 이끈다
복수노조제인 프랑스에서는 사업장 단위로 노동자 대의원 선거가 있다. 이때의 득표율이 그 사업장에서 각 노조의 지지율인데, 비조합 노동자들 도 대부분은 성향별로 CGT, CFDT, FO 등 선명노조에 투표를 한다. 마치 비당원이 선거 때 특정 정당에 투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노조원들과 여론의 사실적인 노조 지지에 프랑스 막강노조의 비결이 있는 것이다. 지 지난해 CGT는 1백돌을 맞았다. 노조의 기본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노조가 사회진보의 큰 구실을 담당하게 되기까지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1백년 이 상을 싸워왔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다. 블롱델의 총파업 경고에 정부가 겁을 먹는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실제 사회를 마비시킬 수 있는 위협적인 힘 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95년 총파업을 지시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정부가 사회복지제 를 축소시키려고 기도했기 때문이지요. 만약 노동자의 권익 수호를 위해 서라면 내일이라도 당장 전 사회를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진 정한 ‘노동자의 힘’입니다.”
언제쯤 한국에는 정부가 노조의 눈치를 보게 되는 세상이 올까.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가입국가로서 적어도 노조의 권리와 구실쯤은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프랑스의 노조 지도자 블롱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의 노조운동이 갈길은 더욱 뚜렷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