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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엽서 |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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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이 열려라 참깨인가
커버스토리 ‘YS 일보후퇴, 저항은 계속된다’는 영수회담으로 자칫 흐트 러지기 쉬운 정국을 면밀히 분석한 기사였다. 알맹이 없는 영수회담의 결 과로 노동계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는 없는 일이다. 그토록 뻣뻣하던 김영 삼 대통령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민심이반이 더 깊어진다면 정권마저 내놓을 상황으로 갈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놓을 것은 다 내놓는 듯이 하면서 호흡을 조절하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 민 심을 천심으로 여기는 국정운영자였다면 총파업과 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 았을 것이기에 말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제 정권유지에 연연할 일이 아 니다. 진정으로 민심을 보듬기 위한 후속조치가 시급한 것이다.
김현수/ 서울시 관악구 신림8동 567-20
나라의 장래가 백척간두에 섰다
특집 ‘문인들의 민심기행’ 부산편을 관심있게 읽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성이라 불리는 곳에서 ‘정권타도’의 주장이 간간이 들린다니 놀랍기 도 하다. 하지만 부산시민들의 불만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를 곰곰이 생 각해보면 안타까운 점도 있는 게 사실이다. “부산을 위해 뭔가 해줄 것 으로 기대했는데…”라는 식의 오도된 기대가 속내에 있는 것이다. 어쩌 면 그것을 채워주지 못했기에 불만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은 지역감정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안동지역만 해도 대구, 부산 등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 하지 만 현재의 시점에서 지역적 이해관계를 고집하는 것은 그다지 올바른 일 로 여겨지지 않는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진욱/ 경북 안동시 운안동 상일대자연맨션 A-303
국민을 기만하는 언론은 가라
특집 ‘3대신문, 노조마저 숨죽였는가’는 우리나라 언론의 실상을 여실 히 보여주는 기사였다. 재벌과 언론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대표적인 언론 사가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다. 하지만 그것이 비난을 면할 무기는 될 수 없다. 국민을 위해서가 아 니라 가진 자를 위해 신문을 제작한다면 국민들은 더이상 그런 언론에 귀 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노조에서도 회사쪽과 이면합의까 지 있었다니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그들이 그토록 내세우는 ‘동업자 의 식’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국민의 바람을 외면한 그것이 무슨 의미 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방송사 노조원들이 해당 언론사에 날달걀을 던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최영진/ 경남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804
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배우라
노동법 파문과 관련해 정부여당과 재계는 정리해고·대체근로 등이 선진 국들의 대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론이 제대로 제시되 지 못하는 실정이다 . 하지만 외국이 그런 제도를 시행하면 우리도 항상 그래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들이 그런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실업보험 등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고 노동자의 경영 참가가 이루어져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사회보장 제도와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될 수 있는 상황인가. 또 정리해고시 재취업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었는가. 노동자의 처지에서 선행조건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면 정부와 재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할 뿐이다.
유호범/ 광주시 광산구 두정동 544-1
지나친 특수성 논리는 그만
특집의 ‘노동악법, OECD 도마 올랐다’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처지를 보 여주는 기사였다. 정부가 OECD 고용노동사회문제위원회에서 내세우려는 논리는 ‘한국의 특수성’에 관한 것인 듯하다. 물론 국내적으로도 총파 업에 대처하기 위해 내세우는 근거 또한 ‘한국의 특수성’인 게 사실이 다. 한국의 정경구조라든가 주변상황이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세계적 보편성과 추세 위에서 군림할 수 있는 무기는 아니다. 더구나 지 금은 정부 스스로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고 자부하는 때 아닌가. 이제 는 반대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원리가 보장되지 않은 ‘한국의 특수성’을 반성할 때이며 올바른 세계적 보편성의 원리를 추구할 때인 것이다.
유선웅/ 인천시 계양구 계산3동 인정프린스 101-207·나우누리 ledford
노동단체 연대투쟁이 빛났다
이번 총파업 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연대투쟁은 그 효과 와 의미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한국노총에 대한 어용·관변단 체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사태 해결과정에서 서로 방법의 차이가 있더라도 지금까지 국민 앞에 보여준 연대의 의지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노동자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구실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두 단체가 연대를 강화하고 거기에 국민들의 관심이 어우러질 때,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에 의한 변질된 노동법이 아닌 노동자 를 위한 올바른 노동법안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재주는 곰(노동자)이 넘 고 돈은 주인(정치인)이 챙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마재철/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1가 231-33 13/5 대성주택 나-101
재벌은 저효율의 원인 규명해야
포커스 ‘우울한 천일야화 재벌정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났다 . 세계 여러나라가 불황의 늪을 벗어나 호황을 누리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만 유독 불황에 헤매는 것은 재벌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경 제위기의 원인을 ‘고임금 구조’에서 찾고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일방적 으로 전가하는 재벌논리이다. ‘기업이 서야 노동자가 산다’는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추악함으로 치달은 거대재벌은 저효율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차분히 재고해 보기 바란다. 현재의 재벌에 대한 유연화 정책이 공룡재벌의 몸을 더욱 비대하게 할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간’ 마저 도 빼줄 기세인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잡식성을 자랑하는 재벌 은 우리 경제를 꿀꺽 삼켜버릴지 모른다.
장미라/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 274-2 39/6
민중가요는 시대상 담은 교과서
문화시대 ‘부활하는 민중가요’를 읽으며 어느새 흥분하고 있었다. 이제 야 민중가요가 제 임자를 만났구나 싶어서였다. 90년대 이전까지의 민중 가요는 특정소수에 의해 불려졌고, 그 ‘민중’이 부르는 노래는 특정집 단의 목소리를 높여주는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90년대 들어서 그런 노 래들이 불려질 만한 상황이 줄어들면서 민중가요는 내용면에서나 넘쳐나 는 힘에서나 많은 유연성을 띠게 되었다. 당연히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으나 수요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도 민중가요의 맥은 이 어져 왔다. 민중가요는 그 시대 민중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 놓은 역사책 과 같아서 후대를 위해서라도 오늘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든 노래로 남겨 져야 한다. 이땅을 밟고 사는 모든 민중들의 함성이 스며 있기에 말이다.
최윤정/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2가 581-9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