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서구문화, 중국과 충돌하는가

(사진/보스니아내전은 문명충돌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미래에는 문명의 충돌이 지구촌의 정치를 지배하게 되고 문명간의 경계 선이 곧 미래의 전선이 될 것이다.”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미국 하버드대 교수)은 93년 여름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논문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질서 해체 뒤 세계 역학구도를 서구문명 대 비서구문명의 대결구도로 파악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지구 곳곳에서 민족주의적, 종교적 분쟁이 빈발하던 시기에 제기된 이른바 ‘문명충돌론’은 전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사회주의가 패퇴하고 자본주의 단일체제로 유지되 는 미래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나 경제문제가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각 문명권간(서구권 유교권 일본권 이슬람권 힌두권 슬라브 정교권 남미권 아프리카권)의 문화차이가 분열과 갈등의 지배적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헌팅턴은 그 대표적 사례로 걸프전과 유고 내전을 예로 들었다. 특히 이슬람근본주의의 발흥, 나아가 이슬람진영과 유교권이 손을 잡는 상황을 서구 입장에서 심각히 우려할 사태로 간주하 고, 이에 맞서 서구적 가치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서구문명권의 경제력, 군사력의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헌팅턴의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도 즉각 제기됐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대 니얼 벨은 헌팅턴의 생각은 문화를 정치로 착각한 데서 온 오류라고 비판 했다. 그는 21세기가 경제적으로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될 것이란 점은 확실하지만, 교통 통신의 발달 등으로 인한 문화의 범세계화 경향 때문에 어느 한 나라-지역의 문화가 지배적인 문화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에드워드 사이드 등 탈식민지 담론 이론을 펴온 학자들은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려는 발상이라고 비판 하고 있다. 특히 사이드는 78년 발표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의 동 양주의는 서구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려는 허구의 상징체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궁극적으로 동서 문화의 조화와 발전을 주장 하는 사이드의 관점에서 볼 때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서구 대 비서구의 대결구도를 조장함으로써 서구 지배의 당위성을 21세기까지 유지하려는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의 또다른 변형이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중국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 21세기 경제중심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겨질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동아시아 문명의 종주국으로 자처하는 중국이 서구문명에 맞서는 강자로 부상하는 것을 견제하고, 만일의 충돌을 합리화하려는 데서 나온 ‘신황 화론’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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