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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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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 근대 이후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이란 ` “시간이 정지된 세계”(랑 케)였으며, 따라서 ` “동양에서는 철학도 과학도 발전할 수 없었다”. 오늘날 여전히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양 없는 쪽 에 속한다. 동양의 과학과 동양적 사유에 대해 오히려 서양의 과학자·철 학자들이 적극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동양 전통 과학의 재발견은 영국의 과학사가 조셉 니덤(1900~95)의 계몽 적 작업에 힘입은 바 크다. 니덤은 고대부터 13, 14세기까지는 중국이 서 양보다 우수한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누차 강조한다. 그는 서양 의 근대과학이 철저하게 분석적·기계론적·결정론적·인과율적 성격을 지닌 데 반해, 중국의 전통과학은 종합적·유기체적·비결정론적 성격이 강하며, 이런 점에서 중국 전통과학은 현대 물리학과 닮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중국 전통과학은 근대과학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현대과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그 의 이런 주장은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그에게 동조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동양사상과 현대 물리학의 접근 가능성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사람은 오 스트리아 출신의 입자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58)다. 그는 파동과 입자 의 불확정성과 모순으로 물질을 설명하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76) 의 양자역학에서 영감을 얻어 출세작 <물리학의 도(道)>(1975)를 저술한 다. 그는 이 글에서 현대 물리학의 사유양식이 노장사상과 근접해 있음을 보여주었다.
과학사와 현대 물리학에서 동양적 세계관의 복권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 철학자들의 서재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가바드 기 타>에 심취한 쇼펜하우워(1788~1860), 티베트불교와 <주역> 등 동양 고전 을 깊이 연구한 칼 구스타프 융(1875~1961), 히말라야에서 요가와 명상에 빠졌던 미르시아 엘리아데(1907~86) 등의 경우는 직접 동양의 고전을 읽 고 연구하고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이다.
이렇게 표면적인 영향관계가 드러나 있는 철학자들 이외에도 앨프리레드 화이트헤드(1861~1942)의 유기체 철학,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존 재 개념, 자크 데리다(66)의 이성중심주의 비판 등은 동양적 사유양식에 매우 근접해 있다.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 에서, 서양철학을 관류하고 있는 사유양식은 동일률·모순율·배중률의 논리학이다. ‘`A는 A다’(동일률), ‘`A는 A이면서 동시에 -A일 수는 없 다’(모순율), `‘A와 -A 사이의 중간치는 없다’(배중률)는 논리는 서양 에서 근대 자연과학과 합리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동양의 사유양식은 이들과 다른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박동환(60) 연세 대 교수(철학)에 따르면, “복은 화가 숨어 있는 곳”이며 “화는 복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는 노자(老子)의 상반상성(相反相成)의 논리(서로 대립하는 짝이 서로를 이루어준다는 논리)는, `A이면서 -A’ `A 또는 -A ’ 등의 형식으로 서양의 동일률·모순율·배중률을 벗어나 있다. “바른 소리는 마치 거꾸로인 것처럼 들린다”(正言若反)는 노자의 말은 서양 근 대문명을 지탱해온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서양 현대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자크 데 리다의 이성중심주의 비판은 노자의 상반상성의 논리와도 통한다. 그는 의미의 폐쇄회로인 ‘`책’을 거부하고, 의미의 폐쇄회로 안과 밖을 포괄 하는 총체로서 ‘`텍스트’를 추구한다.
박동환 교수는 “서양의 현대 철학자들이 비록 동양의 텍스트들을 주의깊 게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성주의가 벽에 부딪혀 다른 사유양식을 모색 할 때, 이성중심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동양의 사유양식과 일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 서양은 진정 동양의 가치로 회귀하고 있는가. 그렇게 속단하기엔 이르다.
“나는 이렇게 확신합니다. 오직 근대 기술의 세계가 생성돼 나온 그런 세계에서만 사유의 전환도 준비될 수 있습니다”(<하이데거와 선(禪)>에 서).
하이데거의 이 발언은 `‘그들이 발견한 동양이란 결국 그들의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한 재료로 소화될 뿐’이라는 지적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상수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