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동양학의 보고 ‘하버드 옌징’

중국 밖에 존재하는 세계 최대의 중국-동양학연구센터는 미국 하버드대학 에 있는 ‘하버드 옌징연구소’다. 기독교 선교교육 기금에서 비롯된 이 연구소는 서구에 동양사상과 문화를 알리는 데 공헌을 했고, 동아시아 학 계의 동양학 연구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동양학 연구자들이 선망 하는 이 연구소는 에드윈 라이샤워, 존 페어뱅크 등 미국의 유명한 중국- 동아시아 연구자 거의 대부분을 배출했다. 한국도 학계에 이름난 학자들 가운데 이 연구소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 다.

하버드 옌징연구소의 동양학 연구의 깊이와 규모는 도서관이 잘 보여준다 . 중국서적만 96년 현재 약 50만권을 소장하고 있고 일본서적은 약 24만 권에 이른다. 이 밖에 약 9만권에 이르는 한국서적과 베트남 몽골 만주 티베트 산스크리트어 문헌 5만여권을 모두 합치면 총 장서수는 약 88만권 이란 방대한 분량에 이른다. 동양학의 보고라 할 만한 규모이다. 전문학 술지로는 36년부터 발행되고 있는 <하버드 아시아연구학보>가 세계적 권 위를 인정받고 있고, 41년 창간된 계간지 <동방>은 56년 <아시아연구>로 확대되어 지금은 미시간대학과 위스콘신대학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또 31년부터 50년간에 걸쳐 편찬한 <00 인덱스>는 중국고전 검색의 필수 공구서로 유명하다.

한편 이 연구소가 미국이 아시아를 ‘관리’하는 지적 창구 노릇을 해온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시아의 학자, 관료들에게 이곳 은 또다른 의미에서 ‘선망의 배경’을 쌓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 연구소의 장학사업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따라 물결치듯 굴곡을 그려온 것은 그런 측면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90년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장지치엔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0~40년대에 연구소 장학금은 주로 중국 학생들이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된 뒤 맨 먼저 중국 학생이 장학생에서 제외됐고, 일본 대만 홍콩 남한 인도와 동남아 각국이 수혜대상이 되었다. 그뒤 베트남전쟁이 나자 베트남이 제 외된 반면, 72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자 중국 장학생들이 연구소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동서 냉전이 종식된 89년 이후부터 연구소는 베트남에 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북한에게도 문호가 열렸음을 알렸다.

하버드 옌징연구소는 미국알루미늄회사의 창시자였던 찰스 마틴 홀(1863- 1914)이 “아시아에서 기독교 고등교육을 증진하는 데 써달라”고 내놓은 유산을 기금으로 1925년 9월 설립됐다. 이후 70여년 동안 이 연구소는 동 양학 연구 발전과 함께 ‘서구 기독교문명의 전파를 위한 동양 학습의 장 ’이란 홀의 유지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보스턴=윤성주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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