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동양! 그 새로운 가능성

(사진/달라이 라마와 리처드 기어의 만남. 불교에 귀의하는 서구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지붕 유럽’을 향한 바쁜 발걸음이 개별국가 사이에 가로놓인 갈등 과 충돌로 주춤거리던 지난 93년, 독일 정부는 ‘아시아 구상’이라는 것 을 마련한다. 한편에선 유럽연합 차원의 공동 대외정책을 세우려는 움직 임을 벌이면서도 뒤편에서 이처럼 아시아를 향한 발빠른 홀로서기에 나선 것이다. 이 구상에 따라 독일은 같은해 아시아-태평양위원회를 발족시켰 다. “동양을 보자”는 목소리가 독일사회 구석구석에 조금씩 변화의 바 람을 몰고오기 시작했다. 경제계의 움직임은 단연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 다. 물론 독일 기업들이 앞다퉈 아시아 시장을 향하면서 매스컴도 연일 아시아 특집을 내보내고 있다.


중국·일본어, 인기 외국어로

하지만 최근 들어 불고 있는 독일의 아시아 열풍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서구 물질문명이 가져다준 정신적 황폐성을 이른바 ‘동양적 가치’로 메워보려는 움직임이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잡 아가고 있는 것이다. 심화되는 가정의 붕괴, 청소년문제, 범죄문제 등에 서 나타나듯이 새로운 공동체문화를 찾아보려는 이들의 고민 속에서 동양 은 무언가 희망적인 테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로 대학과 관련된 연구 기관들을 중심으로 동양철학과 동양역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것은 이런 독일인의 정서를 잘 말해준다.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아시아와 관련된 도서출판은 특히 인문과학분야 를 중심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미 독일인의 주요한 여가생활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요가의 뒤를 이어 최근에는 단전호흡과 같은 기공술과 침술 등이 새로이 대중적인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동양은 단순히 ‘신비의 땅’으로 치부되던 시대 를 지나 “과연 무엇이 얼마만큼 다른가”를 진지하게 되짚어보게끔 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24일자로 발간된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의 커버스 토리 ‘2백만 프랑스인을 유혹하는 불교문화’는 프랑스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구의 80%가 가톨릭이고 16%가 종교가 없는 프랑스에서 사실 다른 종교가 파고들 자리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유독 불교만이 꾸준 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불교 인구는 동남아 이민 출신자를 중심으로 약 6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렉스프레스>의 헤드카피처럼 2백만명의 프랑스인들이 불교에 어떤 형태로든 경도되고 있다. 프랑스인 들에게 불교, 특히 티베트불교에 대한 관심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학계에서도 동양학이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령 프 랑수아 고드망 같은 학자는 아시아 경제의 성장을 유교사상과 결부지어 분석해 주목을 끄는 등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양사상과 종교에 대한 학문 적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이다. 외국어 자체를 혐오하는 프랑스인들 사이 에서 중국어와 일본어가 점차 ‘인기 외국어’가 되고 있다. 각 대학의 중국어 일본어 강의는 물론 일반 어학강좌에 수강생이 대거 몰리는 것은 이런 추세를 잘 보여준다. 유럽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던 문화대국 프랑스 가 동양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새롭게 주목할 만한 징후임에 틀림없다.

나폴레옹이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는 전율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실 제로 문화적 우월감에 가득한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서구문화 중심주의 를 고수하며 동양문화에 대해 애써 눈을 감아왔다. 바로 그 오만한 골족( 프랑스민족을 뜻함)이 데카르트와 기독교사상에서 동양으로 점차 눈을 돌 리고 있는 것이다.


복고적 도덕주의 움직임도 숨어 있어

하지만 이른바 ‘심성의 아시아화’로 불리는 이런 흐름의 밑바탕에는 90 년대 들어 더욱 위세를 떨치는 유럽사회 전반의 복고적 도덕주의 움직임 이 숨겨져 있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동양적 가정의 가치에 대한 강조 가 “여성이여 가정으로”라는 메시지로 이용되거나, ‘동양적 기업문화 ’에 대한 관심- 이른바 유교자본주의 같은- 이 더 나은 노사관계의 모색 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노동자의 희생을 합리화하는 데 기여할 뿐임을 밝히 는 경험연구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얼마 전 독일의 시사주간지 <차이트>는 ‘우리 다음에는 이제 아시아?’ 라는 제목의 별책을 펴냈다. ‘태평양의 도전’이라는 조금은 상투적인 부제가 딸려 있는 이 책에는 ‘아시아’를 보는 독일, 나아가 유럽인의 눈길이 잘 담겨 있다. “유교와 불교가 굳건히 뿌리내린 삶 속에서는 옛 것에 대한 집착만 있을 뿐, ‘진보’에 대한 의지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던 막스 베버의 진단이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멀지 않은 장래 에 (유럽이) 햄버거를 안겨주는 미국과 컴퓨터 오락기술로 손짓하는 아시 아의 식민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음울한 대사로 뒤바뀌어 나타난 것이 다. 그러나 그 과장된 엄살에는 여전히 앞선 문명으로서의 유럽에 대한 우월감과, 단지 시장으로서의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의 전통적인 인식, 그 리고 세기말에 새롭게 황색 대륙으로부터 불어오는 정치적 경제적 도전에 대한 ‘황화론(黃禍論)적’ 경계심이 잠재되어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서구 자본주의 문명의 전철을 고스란히 되밟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환경파 괴에 대한 비판이나 혹은 동양적 가치라는 이름 아래 감추어진 인권에 대 한 무감각을 비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아시아대륙을 향한 유럽인들의 뒤늦은 ‘향학열’은 결코 액면 그대로이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그럴 수 도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베를린·파리=최우성·최연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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