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한보사태가 수소폭탄이라면 수서는 수류탄”

(사진/`6공 최대의 비리'. 91년 2월 탑골공원에서 열린 수서비리 규탄대회.)

한보사태는 수서사건의 속편인가. 5조원에 가까운 금융대출을 둘러싼 한 보 의혹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면서 수서사건과의 유사성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가 택지를 특별분양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수서사건과 이번 사태가 여러모로 통한다는 지적이다. 의혹의 표적이 ‘분양’에서 ‘대출’로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내용은 같다는 것이다. 권력과 로비, 그리고 특혜. 무엇보다 두 사건 모두에 정태수라는 주연배우가 등장하는 게 공교롭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이 의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형 국도 비슷하다.


‘분양에서 대출로’바뀐 표적

수서사건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지난 91년 1월말 터졌다. 당시 서울시는 주택조합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수서지구내 공공용지 3만5천여 평을 한보에 시공을 맡긴 26개 주택조합에 특별분양했다. 누가 봐도 정상 적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특혜였다. 곧바로 숱한 의혹이 제기됐고, 나라는 한동안 수서 회오리로 시끌시끌했다.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회장 이 이른바 ‘로비의 귀재’로 떠오른 것도 이때였다.

정씨는 그때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는 일단 주택조 합원부터 모집해놓고, 문제의 땅을 용도변경하는 데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로비가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서울시를 비롯해 건설부, 국회 건설 위, 심지어 청와대에까지 로비의 손길이 닿았다. 당시 검찰의 수사발표는 그런 로비 행각의 일단을 보여준다. “정 회장은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 비서관을 통해 고위층의 내락을 받아낸 뒤, 정당·정부·서울시 등에 무 차별 로비를 가했다. 결국 국회의원들을 움직여 수서택지 용도변경을 지 시하는 공문을 민자당과 평민당 이름으로 나란히 서울시에 내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서울시는 공문대로 일을 처리했다.”

수서사건은 6공 최대의 비리사건으로 기록된다. 당시 비리의 일부가 드러 나면서 정씨 자신과 장 비서관은 물론, 이태섭·오용운·김동주(이상 민 자당), 김태식·이원배(이상 평민당) 의원이 줄줄이 구속됐다. 임기를 2 년 남짓 남겨뒀던 노 대통령은 재임 기간중 유일하게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한보사태 역시 본질적으로 이와 비슷하다. 4조9천5백억원이라는 비상식적 인 대출이 이뤄진 과정에는 권력을 움직여 목표를 달성하는 정씨 특유의 수법이 짙게 배어 있다. 이번에도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에 강력한 로비 가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로비의 대상이 청와대에서도 권력의 핵 심이었다는 의혹이 강하고, 금융권이 주요 표적이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법을 바꿔야 했던 수서사건과 달리, 이번 사태는 대출압력을 구 하는 것이어서 국회나 정당에 대한 로비는 입막음용에 그쳤을 공산이 크 다. 야당의 강경한 자세는 여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한보사태에 연 루된 한 시중은행 간부의 말을 들어보자. “정씨의 로비는 주로 청와대와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등 금융기관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력 상층부를 통해 이뤄졌다. 정씨는 이를 토대로 일선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 을 수 있었다. ”


검찰이 끄집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전편격인 수서사건의 충격을 능가한다는 말인가.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게 속설이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지적 이 많다. 한보사태가 지닌 폭발력이 수서사건에 비할 바 아니라는 것이다 . 한보그룹 한 임원은 “수서사건이 수류탄이라면, 한보사태는 수소폭탄 ”이라고까지 말한다. “정 총회장은 지난 93년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 철강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로비력을 총동원해 권력층에 접근했다. 수서사건으로 한번 곤욕을 치른 터라 로비의 대상이 은밀했고, 수법도 훨씬 치밀했다. 금융대출과 사업인허가를 둘러싼 비리가 밝혀지면 그 파장은 수서사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메가톤급이 될 가능성이 높 다.”

그러나 검찰이 그런 폭발력을 끄집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수서 사건 당시에도 일개 비서관 한사람이 그런 거대한 유착구조를 지휘했을 리 없다는 점에서 축소수사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이번에도 검찰수 사가 비리의 실체를 얼마나 규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마뱀이 꼬리 를 자르듯이 희생양 몇명만 내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은 게 사실이다. 한보사태의 결말만은 수서사건의 속편이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은 그래서 유효하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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