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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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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보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총무들.)
‘한보사태’는 분명히 충격이다. 국가경제를 비틀거리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그 파괴력이 어디까지 몰아 닥칠지 예측불허의 상태다. 이러한 대형 사건이 터지면 으레 그렇듯이 정 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빠진다.
물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부산함이 아니다. 수많은 대형 비리사건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의혹’의 꼬리가 달라붙는 여권은 항상 수세적인 방어에 급급하고 야권은 이를 쫓기에 바쁘다. 쫓기다 못한 여권에서는 ‘공멸 椒�이니 ‘정면 돌파’니 하는 비정치적 용어가 튀어 나온다.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너희도 깨끗하지만은 않다”는 식이다. 중병에 대한 진단 과 처방을 내리기도 전에 상처만 덧나게 만드는 ‘폭로전’이 우선이다.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상대방의 허점을 찾기에 더 바쁘다는 얘기다.
여권 “야당은 깨끗하냐”
확인도 되지 않은 ‘설’이 난무한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자신들의 이러 한 모습을 스스로 ‘진흙탕 싸움’이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나마 좋게 표현해주면 ‘정치공방’이다. 결국 이번에도 ‘정쟁’으로 표현되는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의 한장면이 또다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다른 대형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정치권이 국민들의 울분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보사태’는 지난해 12월26일의 ‘국회 날치기 처리’에 이어 노 동계 총파업과 안기부법 개정 반대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과정에서 터진 사건이어서 충격의 강도를 더해주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겠다며 모 인 국회 모습이 오히려 국민을 짜증나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한 층 더 총체적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이 벌이고 있는 공방의 내용은 이렇다. 공세적인 입장에 있는 야권 부터 보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한보사태는 권력형 비리인 만큼 여당 은 어떤 얘기를 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면서 도 검찰의 정치권 수사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기 위해 과거 정권들이 자주 사용했던 ‘야당 의원 끼워넣기’ 에 대한 경계다. 두 당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야당의원들의 한보비리 연루설을 자작 유포하고 있다”고 항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당은 “소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도 국회 국정조사특위와 TV청문회, 특별검 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공격의 고삐를 더욱 바짝 조이고 있다.
물론 여당은 이러한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로 일축하면서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오히려 “야당이 이번 사건을 대통령선거용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야권의 정략적 공세로 몰아세우고 있다. 심지어 야권이 정치공 세를 계� 겠다며 노골적인 ‘폭로전’ 경고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한보사태 당 진 상조사위에서는 야권인사 연루설과 관련된 확인작업도 계속할 뜻이 있음 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점입가경이다.
이러한 공방으로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지고 있다. 서로를 비난하면서, 특히 집권당인 신한국당이 야권 의원을 대상으로 비리연루설을 퍼뜨리면 서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정경유착에 대한 정 치인 스스로의 인정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치공방 속에서 유일하게 얻은 성과인 셈이다.
정치공방은 여야 사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한보사태를 통해 나 타난 이상한 기류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신한국당 안에서의 논란이다. 여권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계와 3당합당 이후 핵심에서 밀려나 있 던 민정계와의 감정대립이 점점 첨예화 되고 있는 것� 煞@� 공방처럼 노골적인 표현들이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두 계파간의 알 력이 폭발직전까지 가고 있다는 것은 쉽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여권 인사 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여당 안에서는 민주계가 수세에 몰려 있고 민정 계가 공세적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계로서는 당안팎으로부터 한보와 관련 해 곱지 않은 시선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민정계는 이번 사건 과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민정계 “절호의 기회다”
(사진/시민단체들은 한보의혹을 벗기기 위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민정계의 한 의원은 “모든 문제는 저 사람들(민주계)에게 물어보라”며 공격의 화살을 민주계로 돌렸다. 심지어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라고 말하는 민정계 의원의 측근도 있다. 민주계와 영입파 사이에서 눌려 있던 민정계 대선 예비후보가 이번 사건을 기회로 정치적 위상을 급부상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미 민정계 일부에서는 “그 선(김영삼 대통령의 측근 의원)까지 대로의 정치적 해결책까지 제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라는 대목에서만큼은 신한국당의 민정계와 야권의 목소리가 같아 보일 정 도다. 민주계의 위기의식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민주계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민주계쪽은 “민주계 핵심이 다치면 정권의 위기가 온다”며 사활을 건 승부에 들어갔음을 감 추지 않았다. 한 의원의 측근은 “우리에 대한 공격이 거세질 것을 대비 해 민주계 내부 측근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비난이나 평가를 자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며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면 민주계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이러한 여야간, 또 여권 내부의 공방 못지 않게 정치권을 곤혹스럽게 만 들고 있는 것이 김 대통령의 말 한마디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 을 엇갈리게 하면서 공방의 강도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까지 세번의 변화를 겪었다. 김 대통령은 지난 1월31일 “이번 한보부도 사태는 기업측의 외부차입에 의한 무리한 사업추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 인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경제장관회의에서다. 이에 대해 야권은 일제히 김 대통령의 상황인식 부족을 공격하며 사건의 축소·은폐 를 우려하는 비난을 쏟아냈다. 반면 여당, 특히 민주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그러나 2월1일 오전에 청와대쪽에서 김 대통령이 “이번 한보사건은 권력 형 비리”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력형 비리’라면 얘기가 달 라진다. 여권 핵심의 관련설을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민주계를 포함한 여권 인사들의 반응은 불안해 보였다. 야권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야권은 "뒤늦게나마 대통령이 상황을 정확히 보기 시작했다”며 분노한 민심이 여권을 바꿔놓았다고 즐거워했다.
정치권 사정 예측불허
그러나 청와대쪽은 곧바로 ‘권력형 비리’라는 표현은 잘못 전해진 것이 라고 해명했다. 대신 김 대통령이 “한보사건은 전형적인 부정부패의 표 본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우리가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으면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다”고 말한 것으로 공식 발표됐다. 여권은 처음보다는 다 소 안심하는 모습이지만 그렇더라도 정치권에 대한 사정은 예측불허의 상 황이 됐다고 보고 있다. 야권은 사실여부를 떠나 청와대의 기류변화가 가 어느 정도는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권력형 비리 ’는 여권 핵심에 좀더 가까이 가 있는 표현인 반면 ‘부정부패’라는 표 현은 정치권 일반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설’에서 떠나 구체적인 실체를 밝혀야 할 시점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국회가 스스로의 오명을 씻어내야 할 때라는 얘기다. 특 히 집권당인 신한국당의 책임이 더욱 크다. 정책결정과정에 직접적인 연 결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당이 나서 정치권의 정화기능을 회복해 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이 자신의 대표를 ‘진흙탕 싸움 꾼’으로 선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용성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