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2월20일 제 145호 한겨레21

“한보 주식 누군가 조작했다”

(사진/한보철강 부도로 일반 주식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은행 대출부터 자금 사용까지 모든 과정이 온통 의문투성이인 한보그룹 부도 사건. 주가도 예외가 아니다. 한보그룹 부도 과정에서 주가가 조작 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지난 1월23일 부도 처리까지 약 3개월 동안 한보철강의 주가 흐름과 주식거래 양상이 비정상 적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한보철강의 주가와 주식 거래량은 전체 주식시장의 흐름과 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주식 거래가 대량으로 이뤄지면서 단기간에 주가 가 폭등한 뒤 다시 폭락했다. 이 과정에서 정태수 총회장 등 한보그룹 대 주주들이 주가 조작으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으며 또 한보철강 주식을 음성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일부 세력이 부도를 앞두고 주식을 처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왜 한보철강만 예외였을까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한보철강의 주가는 지난해 10월 초까지만 해도 5천~ 6천원 대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한보철강 주가가 이상 조짐을 나타낸 것 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였다(그림참조). 10월10일 6천9백원으로 출발한 한보철강의 주가는 이날부터 대량 거래가 이뤄지면서 급상승세를 탔다. 그전까지 하루 2만~3만주에 불과했던 거래량도 몇십만주 단위로 늘어났다 . 한보철강 주가는 12월4일 1만1천5백원까지 상승했다. 두달도 채 못 되 는 기간 동안 무려 4천6백원이나 오른 것이다. 상승률이 66.7%에 이른다. 만약 이 기간중 한보철강 주식 10만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2개월 만에 4억 6천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얘기가 된다. 한보철강의 전체 발행주식 수는 1천9백83만2천주. 10만주는 전체의 0.5%에 불과한 것이다.

한보철강의 주가 폭등과 거래량 폭증은 당시 주식시장 전체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것이었다. 같은 기간 동안 종합주가지수는 10월1 0일 830.21에서 12월4일 715.87으로 114.34포인트 떨어졌다. 15.9% 하락 한 것이다. 중간중간 등락은 있었지만 경기부진과 시중자금 사정의 악화 로 하락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보철강이 속해 있는 철강 종목도 마찬가지였다. 철강산업의 산업별 주가지수를 보면 10월 1174.00에서 12 월 1061.82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왜 한보철강만 예외였을까?

한보그룹의 한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도 당시 주가 급등에 대해 의아 해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보철강 부도 뒤 드러난 사실이지만 한보 그룹은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자금난에 부닥쳐 6월부터 는 직원들에게 월급이 제때 지급되는 일이 드물었다고 한다. 이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회사 관계자들에게 한보철강의 주가 급등은 이상하 게 비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식거래의 이상 여부를 살펴보는 지표로 거래량회전율이 있다. 일정 기 간의 주식 거래량을 상장 주식수로 나눈 것이다. 회전율의 급등은 이상매 매의 징후로 해석된다. 한보철강의 주식 거래량은 지난해 10월부터 폭증 했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한보철강의 월평균 주식 거래량은 78만5천 3백41주에 불과했으나 10월엔 2백71만8천2백60주, 11월은 6백84만6천4백2 0주, 12월은 5백20만6천6백60주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9 월까지 3.96%였던 한보철강의 월평균 거래량회전율도 10월 13.71%, 11월 34.52%, 12월 26.25%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주식시장 전체의 월평 균 거래량회전율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주식시장 전체의 월평균 거래량 회전율은 10월 11.96%, 11월 7.08%, 12월 6.57%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 폭락 때 일반투자자만 사들여

한보철강 주가에 대한 의문은 주가 하락 시기 때도 반복된다.

지난해 12월4일 1만1천5백원을 정점으로 한보철강의 주가는 하락세로 돌 아서 폭락했다. 12월12일 1만원대가 붕괴됐고 96년을 6천8백원으로 마감 한 뒤 지난 1월23일 부도 당일에는 5천3백90원까지 떨어졌다. 거래량은 1 월 들어 부도 당일인 23일까지 8백17만6천1백40주로 거래량회전율은 41.2 %. 반면 같은 기간 주식시장 전체의 거래량회전율은 7.1%였다. 주가 하락 기중엔 특히 1월15일부터 23일까지가 주목된다. 16일 4천9백90원에서 출 발한 한보철강 주가는 20일까지 6천8백원으로 오른다. 그리고 다시 하락 세로 반전해 23일까지 5천3백90원으로 떨어진다. 거래량도 상한가를 기록 한 18일 1백18만5천20주를 기록했고 23일에는 1백64만2천9백9주가 거래됐 다. 전체 발행주식에 10%에 이르는 주식이 하루에 거래된 것이다.

특정 세력이 한보철강의 주가를 끌어올려 엄청난 액수의 시세차익을 챙긴 뒤 다시 내다 팔아 주가가 하락했다는 추정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은행들에 의혹의 눈길이 쏠린다. 한보철강의 부도 뒤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보철강은 실질적으로 18일부터 부도상태에 빠져 있었다. 채 권은행들이 18일부터 한보철강의 어음을 부도처리하고도 금융결제원에 부 도사실을 신고하지 않고 감춰온 것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은행들의 경우 지난해 10월~12월 한보철강 주식을 21만7천3백30주 사고 34만2천8백 90주 팔았으나 올 1월에는 17만7천주를 팔았을 뿐 단 한주도 매입하지 않 았다. 한보철강에 관한 정보를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는 은행들이 이를 이용해 내부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지난 3개월 동안 한보철강 주가 흐름을 좌우한 세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보철강 주식의 전체량 중 은 행들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주가 흐름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보철강의 경우 은행 보험 증권 투신 기금 등 기관투자가들보다 개인투 자자들에 게 관심이 쏠린다. 한보철강 주식 거래에서 개인투자자들의 거 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서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 의 거래 비중은 3 대 7 정도이다. 그러나 한보철강은 개인투자자들의 비 중이 1월의 경우만도 94%에 이른다.

특히 한보철강은 대주주 1인(최대주주와 그의 특수관계인 포함)의 지분율 이 매우 높다. 정태수 총회장은 5백35만7백13주를 가지고 있는 것을 비롯 해 정보근 회장과 정한근 부회장 등 일가족이 전체 주식의 49.94%인 9백5 2만4백80주를 가지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의 대주주 1인의 지분율은 평균 20%선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한보철강 주가 폭락 때 매입세력은 일반투자 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일반투자자들은 한보철 강에 자금 지원이 계속되거나 또는 은행관리 뒤 제3자가 인수해 회사 사 정이 지금보다 좋아질 것으로 판단하고 한보철강 주식 매입에 적극적이었 다”며 “상당수는 증권사들의 만류에도 신용을 얻어가면서까지 주식을 매입했다”고 말했다.

증권예탁원에 따르면 한보철강 주식 소유자 중 일반투자자는 1만2천5백7 명이며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수는 6백37만주다. 그리고 이 가운데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신용 투자한 주식 수가 1백55만8천8백주에 이른 다.


구체적 거래내역 ‘접근 불가능’

반면 이 시기 주식 매도세력으로는 정태수 총회장과 주식 처분이 시급했 던 특정 세력이 지목되고 있다.

한 증권사 정보팀 관계자는 “주가가 폭등 뒤 하락세로 반전하면서 한보 그룹 대주주들이 은닉 지분을 매각했거나 한보철강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 곤란해질 인사들이 주식을 처분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구체적인 주식 거래 내역에 대해서는 금융실명제 때문에 접근이 불 가능하다. 누가 언제 얼마만큼의 주식을 거래했는지는 금융거래 비밀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검찰의 수사나 증권당국의 조사를 제외하고는 공개 하지 않는다.

증권거래소는 현재 한보철강 주식의 이상 매매 여부에 대해 조사중에 있 다. 한보철강 주식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풀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이주명·안재승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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