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신승근 김창석 칼럼 목록 > 내용   2005년12월14일 제589호
“난자 제공 연구원은 괴로워했다”

[김창석의 도전인터뷰]

황우석 교수 자문변호사 지냈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김형태 변호사
“〈PD수첩〉방영 포기한 문화방송의 의사결정은 더 이상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김형태(50·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들을 변호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폭탄선언으로 한순간에 ‘빨갱이’에 ‘거물간첩’으로 몰린 송두율 교수 사건을 맡아 지난해 7월 2심 재판에서 사실상의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2003년 2월에는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기소된 뒤 1·2·3심을 오가며 사형과 무죄 선고를 번갈아 받았던 이도행씨 사건을 맡아 사건 발생 8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예스’라고 몰아칠 때 단호히 ‘노’라고 말하며 버틸 수 있는 배짱을 그는 가졌다.

그는 황우석 교수 사태와 관련해 〈PD수첩〉이 ‘공공의 적’이 돼버린 지금 상황에 대해 ‘노’라고 말한다. 12월9일 오후 취재팀과 만난 그는 “취재 과정이나 국익 등 곁가지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현재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인 환자 체세포에서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는지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재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문화방송도 지금까지 취재된 내용을 하루빨리 보도해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PD수첩〉이 확보하고 있는 취재 내용과 관련해 그는 “〈PD수첩〉이 난자를 제공한 여성 연구원 가운데 한 명이 난자 제공과 관련해 직무 관련성을 직접 언급한 내용의 글도 물증으로 확보하고 있다”면서 “이 글은 2003년 작성된 것”이라며 처음으로 이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또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다른 취재 내용들이 방송될 경우 새로운 국면이 벌어질 것”이라면서 “국민적 관심사를 방송하지 못하도록 결정해 결국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문화방송의 의사결정은 더 이상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문화방송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누구도 줄기세포-체세포 비교하지 않아

황 교수와 〈PD수첩〉 사이의 줄기세포 1차 검증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사실이 밝혀져 일부 언론에서는 문화방송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를 맡고 있는 김 변호사가 검증과정에 참여한 것이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 황교수 쪽과 문화방송 〈PD수첩〉쪽의 입장을 가장 가까이서 동시에 이해해온 김 변호사. 그는 '검증'과 '취재내용 공개'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윤운식 기자)

= 문화방송 쪽의 편을 들었다는 얘기는 완전히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황우석 교수나 안규리 교수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관계였다. 안 교수는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당시부터 알았고, 황 교수도 나와 가끔 식사를 할 정도로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있었다. 황 교수 연구를 돕는 정부 출연기관인 바이오장기사업단에 내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황 교수와의 관계 때문이다. 이 기관은 4개 정부부처가 관여하고 있다. 황 교수와 안 교수 쪽에서 여러 번 자문을 요청해왔다. 법률 방어와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공동검증을 위한 계약서 작성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1차 검증의 전 과정은 지켜봤다.(이와 관련해 〈PD수첩〉 취재일지를 보면, 안 교수 쪽 제안으로 김 변호사의 참여가 이뤄졌다고 돼 있다. 즉, 11월7일에서 11일께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 쪽에서 검증과정을 감시하고 양쪽 이견을 조정할 재판관격 인물로 명망 있는 변호사를 지정하자 이 이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1차 검증 결과 이후 2차 검증이 합의됐다가 번복된 이유는 무엇인가.

= 11월17일 1차 검증 결과가 나와서 양쪽이 만나 의논한 뒤에 재검증에 합의했다. 서울대 법의학팀 참석과 외국의 저명 법의학팀의 참여까지도 제안했지만 날짜가 계속 지나가는 상황에서, 황 교수 본인이 대리인을 보내겠다고 연락해왔다. 11월28일 황 교수의 대리인으로 나온 윤아무개씨와 〈PD수첩〉팀 관계자 등과 만났을 때 윤씨가 재검증 수용 불가 입장을 전달했다.

〈PD수첩〉이 준비한 방송 내용을 공개하면 의혹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고 보나.

= 그렇다. 〈PD수첩〉팀이 방송하지 못한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논문 제출 과정에서 섀튼 교수나 노성일 미즈메디병원장 등 공동연구자,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 등 그 누구도 줄기세포를 가지고 직접 체세포와 비교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사이언스>도 보내온 사진과 데이터만을 봤을 뿐이고 줄기세포를 가지고 체세포와 비교해보지는 못했다. 직접 줄기세포로 체세포와 비교하고 사진 찍은 사람은 미즈메디병원 김아무개 연구원과 서울대 수의대 몇몇 교수들뿐이다. 줄기세포 실물 문제는 특허등록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줄기세포 11개는 엄청난 재산가치가 있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서라도 외국의 다른 연구자들이 선점하지 못하게 특허등록을 해야 하는데 황 교수 쪽에서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줄기세포 실물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의문점이다. 또 사진을 찍은 연구원 김씨는 〈PD수첩〉팀 취재 과정에서 ‘황 교수의 지시를 받고 사진 2장을 10장으로 불렸다. 해선 안 되는 일을 해서 부담을 느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런 내용은〈사이언스〉 출판 논문에서 사진이 중복됨으로써 부합하는 내용으로 밝혀졌다. 1차 검증에서 2·4번 줄기세포가 논문 및 환자 체세포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의문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난자 제공, 직무관련성 명백히 언급

황 교수 쪽에서는 다음 논문 발표를 통해서 이 논란을 잠재운다는 계획인데.


△ 〈PD수첩〉의 취재내용에는 의혹에 대한 황 교수의 답변이 포함돼 있다. 황 교수가 11월24일 열린 난자 제공 해명 기자회견 중간에 목을 축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 재검증이 어렵지는 않다. 과연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는지는 연구실에서 무한정 자라고 있는 줄기세포를 조금만 떼어내 환자 체세포와 비교해보면 금방 결론을 낼 수 있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방법도 복잡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학자적 자존심을 내세우기에는 너무 큰 문제가 돼버렸다. 다른 나라 대학에서 검증을 공언한 마당이 아닌가.

연구원 김씨에 대한 〈PD수첩〉의 취재는 취재윤리와 관련해 문제가 있었고 문화방송 쪽에서 이 점은 이미 시인하고 사과한 상태다. 이후 김씨가 〈YTN〉의 취재 과정에서는 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는가.

= 〈PD수첩〉에서 취재한 영상을 꼼꼼히 보면 김씨가 취재진한테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 진술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취재진에게 담배를 권하고, 답변을 하면서 장소를 이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술 말미에는 나는 이제 끝났다는 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이 취재 내용을 국내에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만난 황 교수도 인터뷰에서 이말 했다 저말 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부분들이 모두 공개돼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풍부해진다.

〈PD수첩〉팀이 취재를 해놓고도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더 있다는 얘기인가.

= 난자 제공과 관련한 윤리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난자를 제공한 한 연구원이 2003년 쓴 글이 있다. 이 내용이 공개되면 윤리 문제가 다시 한 번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이런 논란이 전혀 없었으니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었을 것이다. 여성 연구원은 글에서 난자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한다. 난자라고 하지만 생명으로 볼 수도 있는 존재인데 너무 괴롭다, 그렇지만 연구원 일을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외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직무 관련성이 명백히 언급되는 셈이다. 〈PD수첩〉 쪽에서 물증으로 확보했지만, 방송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공개되면 국제적인 윤리 기준으로 거론되는 헬싱키 선언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사실 〈PD수첩〉 쪽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공개하고 나섰더라면 이렇게 일이 꼬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황 교수 쪽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방송 시점 등을 상의하다가 계속 늦춰졌고, 그런 와중에 〈YTN〉의 보도가 나온 것이다.

〈PD수첩〉팀의 취재 내용이 다양하다면 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문화방송 경영진의 결정이 아닌가.

= 문화방송의 방송 중단 결정은 무책임한 것이다. 자신들이 문제를 제기해놓고 정보는 자기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핵심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국민들이 난리를 치니까 정보를 사장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문화방송이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프로그램을 없앤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작정 국민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로는 국민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본다.

서울대의 소장학자들이 서울대 총장에게 황 교수 논문의 자체 검증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 제대로 된 흐름이라고 본다. 사실 이제는 공이 과학계로 넘어가고 있다. 원래는 과학계에서 검증돼야 하는 게 원칙이다. 언론에서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까지 왔지만, 이제부터는 과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과학계가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 있다. ‘언론이 뭘 안다고 감히 검증한다고 나서느냐’는 비난을 하기 전에 직접 나서야 한다.


△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사태가 자칫 냉소주의나 허무주의로 마무리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사진/ 윤운식 기자)

나중에 황 교수 위로할 사람은 나

황 교수를 지금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 기자회견 날에도 단둘이 만나 얘기했고 그 뒤에도 가끔씩 조언을 했다. 어쨌든 지금 제일 괴로운 것은 황 교수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이런 입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들이 나를 욕하지만 결국 나중에 황 교수를 위로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어쨌든 훌륭한 업적이 있는 인물이다. 황 교수도 적당한 시점에서 적절한 발언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우리 사회가 냉소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뭘 느꼈나. 아니면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로 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 고전적인 의미에서 언론의 자유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인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권력 대신 ‘인터넷 여론’ ‘국익’ 등이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언론은 그런 것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언론의 원래 기능인 ‘감시’가 중간에 포기되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얘기’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에 놀랐다.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는 ‘대한민국~’을 외쳐도 좋지만 이 문제는 그것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 않나. 이성적인 비판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황 교수 연구의 진위보다도 사회적으로는 그게 더 큰 문제인지 모른다. 국가와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도 상당 부분 알고 있으면서 정권의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더 중요한 변수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