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누드 사진 게재하고 성로비 의혹 덧씌워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 글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건 형사처벌 대상이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신정아(35)씨의 누드 사진을 게재한 <문화일보>의 보도 행태가 ‘황색 저널리즘 그 이상’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포르노’에 근접한 <문화일보>는 자진 폐간하라”고 성명을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6곳의 여성단체는 보도 관련 기자와 편집진은 총사퇴하고 <문화일보>는 폐간하라고 요구했다. <문화일보>엔 과연 어떤 보도가 났던 걸까?

△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는 9월14일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문화일보사 앞에서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을 게재한 <문화일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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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는 화끈했다. 석간인 이 신문은 9월13일치 1면에 “신정아 누드 사진 발견… 원로 고위층에 ‘性로비’ 가능성 관심”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황당한 건 관련 사진·기사라며 살굿빛 신문 3면에 실린 두 장의 신씨 누드 사진들이다. 기사 내용도 터무니없긴 마찬가지다. 익명의 한 미술계 인사의 말을 빌려, “신씨가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각계 원로급 또는 고위급 인사들에게 성로비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물증”이라고 전했다. 몸로비란 말도 불순하지만, 누드 사진은 몸로비의 물증으로 비약된다.
“한 사람 인생 파탄내고 인권 짓밟아”
친절한 누드 사진 설명도 덧붙인다. “몸에 내의 자국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내의를 벗은 지 한참 후에 찍은 사진”이라며 한 전문가의 말을 땄다. ‘빠른 뉴스의 신문, 젊고 미래를 개척하는 신문, 착한 시민에게 희망을 주는 신문’을 사시로 내건 종합일간지의 보도라고 하기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누드 사진 위에선 정색을 하고 쓴 “‘性로비’도 처벌 가능한가”라는 큰 상자기사를 볼 수 있다.
신씨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언론학자와 언론 및 여성단체들이 <문화일보>에 대한 형사 처벌과 폐간까지 요구하는 건, 언론 보도가 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선정성이 도를 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언련은 성명서에서 “마침내 누드 사진까지 등장했다.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내고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문화일보>가 정녕 언론이 맞는가”라고 되물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도 “<문화일보>의 누드 전재 보도 사건은 인권의식의 실종, 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 여성 인권에 대한 매우 직접적인 위협”이라는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문화일보>는 비판의 목소리에 9월14일 기사를 통해 이렇게 답했다. “사진의 존재 사실을 보도한 것은 이 사진이야말로 신씨로 인해 최근 두 달여 계속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 이해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씨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려했으나 독자들의 신씨 사건 본질 이해를 돕는다는 ‘알 권리’가 상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여전히 “이 사진이…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문화계 유력 인사나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에게 성로비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물증”이라고 고집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개인의 사생활이 이처럼 보호받지 못한 것은 심각한 인격권 침해다. 피의자도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보장돼야 할 인권이 있다. 또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현재 신정아씨는 피의자 신분이다. 학력 위조(업무방해죄) 등의 혐의로 수사 대상이지만, 확정된 혐의는 아무것도 없다. 김창룡 교수는 “범법자, 심지어 살인자라 하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인권이나 명예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누드 사진을 게재한 <문화일보>의 폐간이나 형사처벌을 거론할 만큼 법적 근거가 있는 걸까? <문화일보>는 ‘정기간행물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이 법 12조 2항엔 “문화관광부 장관은…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때에는 6월 이하의 기간을 정하여 당해 정기간행물의 발행 정지를 명하거나 법원에 정기간행물의 등록 취소의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음 각호’ 중엔 “음란한 내용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한 때”가 명시돼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정청래 의원은 “법 위반이 맞다. 문화관광부든 국회든 아니면 독자든 <문화일보>에 대한 저항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룡 교수는 형법 307조의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신정아 누드 사진 게재는 ‘위법성 조각’ 사유인 같은 법 310조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명예훼손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언론계 안팎에서 ‘10대 일간지’ 중 하나로 꼽혀온 <문화일보>의 보도를 두고 문화관광부가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권의 ‘언론 탄압’이란 또 다른 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명예훼손죄의 경우엔 신씨가 처벌을 원해야 한다.
관련자 징계는커녕 사과·반성도 없어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지만 의무 조항은 여러 법률에 명시돼 있다. 정기간행물법 2조 2항엔 “건전한 가정생활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음란·퇴폐 또는 폭력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또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 4조 6항에도 똑같은 내용의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 명시돼 있다.
물론 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게 결코 능사는 아니다. <문화일보>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사과나 반성은 없다. 보도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도 없다.
‘신정아 사건’를 다루면서 ‘개인의 명예 존중과 사생활 보호’(한국신문협회 정관 제5조)를 소홀히 한 건 사실 <문화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력 위조에서 권력형 비리, 다시 스캔들로 번진 사건을 방송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언론이 신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사생활까지 깊숙이 파헤쳤다. 그게 결국 누드 사진으로 터진 거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사회적 성격과 본질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속성을 보여줬다”며 “신씨 사건의 경우 권력의 비호를 파헤치는 게 언론 본연의 임무인데, 변양균과 신정아가 무슨 관계인지 개인적 추문에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공인의 경우나 국민적 관심이 된 비리 사건 관련자들의 사생활 보호 기준은 일반인들보다 덜 엄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누드 사진과 같은 막무가내식 보도는 곤란하다.
선정적 내용 흘리는 검찰도 문제
검찰이 범죄 혐의와 관련한 변양균과 신정아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둘 사이 내밀한 관계까지 언론에 흘리는 것도 문제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검찰은 슬그머니 관계자를 가장해 선정적 내용을 보수 언론에 흘리고, 보수 언론들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행태가 마치 현대판 ‘조리돌리기’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문화일보>의 선정적 보도는 새로운 게 아니다. 신정아의 누드 사진이 게재된 9월13일치 신문엔 1727번째 ‘강안남자’가 실렸다. 연재소설 ‘강안남자’는 △선정보도 금지 위반 △유해환경으로부터의 어린이 보호 위반 △성행위 장면의 선정적 묘사 등의 이유로 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공개 경고 4회, 비공개 경고 21회, 주의 2회(2006년 10월11일 기준)를 받았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서도 의원들의 비판이 있었으나, ‘강안남자’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