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초점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7월05일 제567호
전우의 성기를 넘고 넘어…

대한민국 군대에 수치감을 준 ‘알몸 사진’파문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군사주의 연구 여성학자 · 정신과 전문의 · 인권단체 간사 3인의 긴급좌담

▣ 진행·정리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사회: 인권실천시민연대에서 사진 수십장을 공개했는데, 누군가 통째로 제보했다고 한다.

서석원(이하 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보자가 인터넷에서 모은 것 같다. 엽기 사이트에서 많이 떠돌아다녔다. 관리자들이 수시로 지웠는데도 통제가 안 된다고 들었다.

조중근(이하 조): 20대 초반은 굉장히 어린아이다. 장교인 소위, 중위들도 성숙한 나이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면도 있다.

사회: 대만에서는 군대에서 아들을 잃은 한 엄마의 운동 덕분에 인권 문제가 발생하면 신고하고 보호받는 시스템이 일찍이 마련됐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것 같다.

집단 의식용, 얼차려용, 두 종류의 사진

권인숙(이하 권): 지휘라인을 타고 윗사람에게 신고해야 하는데 해결은커녕 접수가 되겠나. 소원수리함을 통해 신고하더라도 문제를 사회화하거나 중요한 결정집단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중대장, 대대장 선에서 처리하는 수준에 멈춘다. 매번 군기 문제로만 귀결된다. 성폭력 사건도 군기 문제로만 다룬다. 그런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만 보니 쉽게 덮어지고 제대로 해결이 안 된다. 개인의 인권이 어떤 것인지는 군대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 머리에 들어 있지 않다.


△ 군부대 알몸 학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서석원, 조중근, 권인숙씨.

조: 일사불란함만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크건 작건 일사불란함을 흐트러뜨리면, 그 사람을 배제하거나 제외하고 다시 구성하는 식이다. 지금까지 군대 이데올로기는 신성한 의무, 국가주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권: 총기 사고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신세대 문제로 몰았는데, 공감을 못하겠다. 요즘 병사 다르다고 하지만 언제는 안 그랬나. 외아들이 많다고도 하는데, 어느 시대 아들에게 집중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개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10년 전에도 이런 사건은 있었다. 가혹 행위는 오히려 더 심했다. 고문관이라고, 뒤처진다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처벌하고 부정하는 문화였다. 그렇게 남성성을 체화해가는 문화였기 때문에 일부는 계속 부적응할 수밖에 없다.

사회: 문제를 세대론이나 군 기강 해이로 보는 것은 일종의 ‘변형된 마녀사냥’이라는 주장도 있다. 총기 사고에 이어 알몸 얼차려 문제가 공개되고 이슈화됐다. 부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일이 최근까지 있었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이다. 대체 왜 알몸일까.

서: 기본적으로 선임자나 상급자는 후임자나 하급자가 나와 동등한 인격체라는 생각을 안 한다. 까라면 까는 것은 시시비비를 스스로 판단하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 있다. 가혹행위나 폭언을 하면 일말의 양심가책이나 미안함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인데 이런 환경에 늘 노출되면 나중에는 당연해진다. 문제의식이 없어진다.

권: 공개된 사진은 두 종류로 나눠 분석해야 한다. 한 종류는 다 노출해서 같은 집단 의식을 느끼자는 것이고, 두 번째 종류는 얼차려의 수단으로 벗은 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둘은 콘텍스트가 다르다. 남자들이 성기를 내놓고 같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너와 나는 성기를 가지고 있는 남자다라는 감정이 강조되는 것이다. 남성연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두 번째 장면들은 수치심을 내보이고 있다. 여고 앞 ‘바바리맨’들이 성기를 노출하는 것은 일종의 희롱 수단이다. 여자들이 ‘악’ 하고 소리지를 때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후임병의 성기를 노출시키는 것은 그를 수치스럽게 하고 무장해제시키는 짓이다. 성적인 학대다. 성기 만지는 것 이상의 성폭력적 의미가 들어 있다. 파워 관계에서 그 성기를 누가 보고 누가 노출시키느냐를 주목해야 한다.

빡센 곳일 수록 고참 권한 정당화된다?


△ 권인숙/ 명지대 교수

사회: 군대 생활을 한 남자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더니, 둘로 나뉘었다. 성기 장난이나 알몸식 같은 데에서 특별히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는 쪽은 어쨌든 나만 당하는 게 아니니까 허용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경험 자체를 지워버린 이들도 있었다. 반면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는 단순 얼차려에도 굴욕감을 느꼈는데 엉덩이를 까라고 했으면 탈영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자는 나름대로 적응을 잘했고 알몸 강요를 이너서클 문화로 이해했지만, 후자는 끔찍했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부대에 막내가 들어오면 비닐 봉투를 주고 자위시키는 관행이 있는 부대도 있다고 한다.

조: 왜 굳이 벌거벗기냐면, 그런 것들을 통해서 (당하는 이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굴욕을 통한 복종이다.

사회: 전경부대나 해병대 같은 ‘빡센’ 곳일수록 알몸 얼차려가 많은 이유는.

조: 쉽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곳일수록 고참의 권한이 훨씬 정당화된다.

권: 교도소에서도 강력범들이 많은 곳에서 성폭력이 더 많이 일어난다. 군대 성폭력의 특징은 그것이 일종의 장난으로 일상 문화로 편하게 사용되는 도구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엉덩이를 까는 건 재미있는 일이라는. 개개인은 수치심을 느끼지만 그래서 더 저항감을 지우고, 군대라는 곳은 다 이렇다라고 합리화하고, 그 자체에 적응해나간다. 그런 일을 폭력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문제제기를 하면 다들 ‘장난이었다’ ‘친해서 그랬다’라고 말한다. 실제 군대 성폭력 가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은 “친해서 그랬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 그런다”는 식의 얘기였다. 후임병들도 그런 질서 속에서 선임병이 될 시간을 기다린다. 권력 행사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니까 성적 학대나 성폭력이 쉽게 합리화되는 것이다.

사회: 알몸 강요에 대해 “다 가족 같아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옹호 글이 올라왔는데, 한 네티즌이 댓글 달기를 “너희 집에서는 그러고 노니?”라는 것이었다. 가족적이라는 이유로 집단적인 가학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서 간사는 지난해까지 2년간 ‘군인의 전화’를 운영했는데, 어떤 쪽의 상담이 많았는지.

서: 사실 성폭력은 거의 접수되는 게 없다. 또 현역병들 상담 비율이 아주 낮다.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들을 통해서 상담이 온다. 그것도 한참 뒤에 심각해진 상태가 돼서 온다. 정신질환이 일어났거나 영창에 갔거나 하는 상태가 돼서야. 성폭력이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건 잘못을 처벌해 경각심을 일으키지 않고 여러 이유로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쉬쉬한다. 후유증으로 정신치료를 받는 사람조차 회상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쉽게 말을 못 꺼낸다.


권: 지난해 국가인권위와 함께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해보니, 성적 취향과는 무관했다. 강간 등은 통상 이성애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도소도 마찬가지다. 일 대 일 성폭행일 경우 가해자의 인격장애를 의심할수 있지만, 집단적으로 이뤄지거나 용인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체로 그런 억압집단에서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성폭력을 행사했을 때 남자답지 못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라는 의미가 강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성기를 만지고 빨라고 하는 것은 성욕을 채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내가 성적으로 더 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수단이다. 옷 벗기기도 마찬가지다.

"6개월 단위 4계급 위계 전면 검토를"

서: 군대에서 인권침해나 집단적 가학은 결국 지휘관의 문제다. 사병 군기를 얘기하기 이전에 간부 군기부터 얘기해야 한다. 바로 인권의식과 책임감이다. 병사들이 지휘관의 사노비처럼 부려지는 것도 집단 가학을 용인해주는 원인이 된다. 상담 사례인데, 운전병이었던 그는 모시던 상관이 아니라 사모에게 정신적 학대를 많이 당했다. 땀이 나면 당연히 냄새도 날 수 있는데 그런 걸 두고 사모가 벌레 취급했고, 사람들 입에 자기가 많이 오르내리는 걸 두고 ‘네가 말을 옮겨서 그렇지?’라고 몰아붙이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계속 참고 당하다가 발병이 됐다. 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데 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조: 용병이 아니라 개병이라는 이유로 군대 들어가는 순간 출퇴근은커녕 24시간 머슴이 된다.

권: 미군은 병들 사이에서는 경례를 안 한다. 위계 개념이 없다. 우리는 병들 사이에 이른바 ‘짬밥’에 따라 불필요한 위계가 너무 발달해 있다. 다른 계급보다 병사들 사이에서, 내무반에서 선·후임간 가혹 행위가 유독 많다. 아무런 보상이 없기도 하고 일·이병 때 너무 고생해 그렇다고 하지만, 병들끼리 괴롭히고 자책감을 못 느끼는 것을 익히도록 둘 수는 없다. 6개월 단위로 네 계급으로 나누는 병사끼리의 위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다시 계산해봐야 한다.

서: 부대에서의 일상적인 문제는 장교들의 한마디에서 시작되곤 한다. 청소 상태 같은 것도 장교가 한마디 지적하면, 그렇게 꼬투리 잡히면, 줄줄이 내려가 맨 밑의 사람은 눈덩이에 깔리는 꼴이 된다. 짬밥이 높을수록 그걸 이용하고.

권: 지휘체계의 책임 회피 문제와도 닿아 있다.


△ 조중근/ 정신과 전문의

서: 에프엠대로만 해도 훨씬 나아진다. 훈련하고 보초 서고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정해진 보직에 맞는 일을 하면 괜찮다. 테니스병에게 들었는데 윗분과 테니스를 칠 때 항상 공이 일정한 위치에 가도록 쳐야 한다더라. 그렇지 않으면 불벼락이 내린다. 테니스병, 관사병은 물론 심지어 노래방병도 있다. 이들의 보직은 공식적인 것들이 아니다.

사회: 군 당국에서 알몸식 사진은 조사를 한다고 했는데,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처벌 기준도 마땅한 게 없다. 국방부의 군형법 개정안을 보니 위력을 행사해 학대나 가혹 행위를 하면 처벌을 강화하고, 위계·위력에 의한 추행 조항을 새로 만들어 최대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추행한 자는 1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막연한 조항밖에 없었다.

권: 그동안 추행에 대해서 처벌 기준은 있었지만 적용이 제대로 안 됐다. 한마디로 보기 싫은 행동을 하면 그걸 추행으로 봤다. 군형법은 군기를 흐트러뜨리는지가 처벌 기준이다. 개인이 어떤 피해나 상처를 받았는지가 기준이 아니다. 한명이든 두명이든 집단으로 했든 그런 행동들이 추행죄로 적용되기 어려웠다. 당연히 집단적 성 학대에 대한 처벌 기준도 없었다.

조: 지휘관들조차 제대로 인권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지 않다. 자식처럼 사병을 사랑한다고 할 뿐,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개념은 없다.

권: 군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너무 은밀하고 방어벽을 많이 쳐놓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심각한 인권침해 공간이다. 부적응자의 선택권조차 하나도 없는 시스템을 이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문제는 이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 해임 문제로 정치권이 난리를 쳤는데, 내가 통치권자라면 군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생각하는 사람을 장관으로 앉힐 것 같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포괄적 대체복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 장병 문화뿐만 아니라 모병제까지 본격적으로 재검토할 사람, 매인 곳이 없는 사람이 국민과 정권의 지지를 받으며 일을 해야 한다.

서: 여당에서 군 인권법을 추진한다던데 역설적으로 그동안 군인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말 같다. 한홍구 교수가 군인을 군복 입은 시민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 것에 적극 공감한다. 국방부 장관을 민간 출신이 하면 안 되나, 여성이 하면 안 되나.

권: 일본만 해도 자위대를 일제시대 군대의 원형에서 벗어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군인으로 상징되는 남성적 퀄리티를 안 가지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는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남성성을 벗어나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다. 네덜란드도 그렇고 자위대도 그렇고. 그런데 우리는 6·25 전쟁 뒤 변화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니 부적응자는 자꾸 늘고, 집단적으로는 폭력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판친다.

진짜 군기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만든다


△ 서석원/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과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 간사

조: 문제는 억압을 받는 당사자가 말도 못 꺼낸다는 점이다. 무조건 강한 정신력으로만 풀려고 하는 게 문제다. 부적응자는 당연히 배려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내재적인 법칙을 갖고 있다. 국가가 뭐라고 하기 전에 상징적인 초자아가 있다. 그것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데 거기서 악착같이 벗어나려는 사람은 딴 데로 빼야 한다. 초자아는 법과 규범의 이념형이다. 인간 내부의 정신기제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군에 대한 의무를 강제하기 전에 대한민국 남성은 국방의 의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미 초자아에 입력돼 있다. 군부적격자 문제의 핵심은 강제성의 공평한 집행에 있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내부에 존재하는 규율과 법의 조화에 있다. 군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보았을 때 무엇이 절실하게 필요한지는 분명하다. 군대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군생활 2년이 개인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확신을 국가가 줄 수 있다면, 내부의 규율과 법은 분명히 조화롭게 된다.

권: 월급도 병력 수도 그렇고, 문제는 금기다. 사고의 금기.

조: 당장 근무 개념부터 바꿨으면 한다. 지금은 오와 열을 맞춰 자며 꿈까지 통제하는 구조 아닌가. 내무반에서도 선임 순서로 누워 잔다. 거대담론은 병 개개인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로서 효과가 없다. 개개인이 군생활을 즐겁게 해야 한다. 군에서는 ‘느슨해지면 사고난다’고들 하는데, 소소하게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대든다거나 앉아 봐야 할 텔리비전을 누워서 본다거나 남들 다 텔리비전 볼 때 혼자 딴 짓을 하거나 그런 것을 느슨해지는 걸로 보는 게 말이 안 된다. 큰 사건은 강압적인 상황에서 터져나온다.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면서 군기를 제대로 잡을 수 있는 방법도 많다.

권: 성폭력이니 알몸 얼차려니 모두 공식 훈련시간 외에 일어나지 않나. 군기 개념만 있지 개인의 개념은 없다. 일정한 합의와 조직적 규율 속에서 만들어가는 게 군기인데, 우리는 맹목적으로 지휘에 복종하는 식의 형태적 문제로만 군기를 이해한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군인이 싸우는 대상은 군기라는 말이 있을까. 미군은 승진의 문제가 있어서 군기가 오히려 세다. 잘못하면 월급도 깎인다. 느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과시간에는 규율을 잘 지킨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설명 없이 밀어붙인다. 해병대 캠프 체험만 봐도 ‘너 지금부터 이거 해’라고 명령하면서 왜 그걸 해야 하는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게 우리 군의 유지 방식이다.


서: 병장이 풀어져 있다고 하지만, 병장들은 사격장 안전사고를 거의 안 일으킨다. 안 그러면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규정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행동 기준을 스스로 납득한 덕분이다. 오히려 이등병이나 일병은 제대로 설명을 듣기보다는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움직이다 보니 행동이 경직돼 잘못하면 사고가 난다. 납득할 만한 선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해 체화하는 것이 군기이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군기라면 기계인간과 뭐가 다른가.

사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강요받을 때 스트레스 지수가 굉장히 높아진다던데.

조: 여자들 명절 스트레스가 있듯이, 당연히 그렇다. 납득 못할수록 긴장도가 높아지고 스트레스가 된다. 하물며 집단 알몸 얼차려라면 이를 경험한 이들이 새도매저키스트가 될 위험이 높다.

사회: 알몸 강요 문제는 복합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처방이 뭘까.

조: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는지 전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그런 것들을 정당화하는 논리, 군기 운운하는 처방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신적으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고참이 되면 일 벌일 가능성이 높다. 남 괴롭히는 사람들은 열등감이 많은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오히려 관심 대상이다. 지휘관들은 계급으로 묻고 넘어갈 게 아니라 이런 이들을 오히려 섬세하게 관리해야 한다. 상담 시스템도 매뉴얼을 제대로 갖추고 군대에 맞는 표준화된 정신건강 척도도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알몸 얼차려 잘 견디는 게 적응일까

서: 알몸 학대뿐만 아니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기본적으로 이게 병사들 문제라기보다는 간부들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업군인들이 프로페셔널한 의식을 갖고 일에 전념했다면 총기난사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휘관이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는 절대적인 문제다. 지휘관이 이등병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이등병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부대생활 스트레스의 절반 이상은 줄어든다. 지휘관이 먼저 인권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권: 남성에 대한 이해도 바꿔야 한다. 한국 사회가 여자들한테 요구하는 기본적 역할이 많은데, 남자들한테는 특정 남성성을 보이지 않았을 때 유독 처벌이 강하다. 알몸 얼차려를 잘 견디거나, 알몸 기념식을 별것 아닌 것처럼 웃어넘기는 것이 적응 잘하는 것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 그런 것이 학교에서 군대, 사회로 이어진다. 특히 병사가 인격적 존재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누구라도 함부로 강압적이고 굴욕적으로 벗길 수는 없다.


나는 왜 스트립쇼를 했을까

‘카투사 출신’ 길윤형 기자가 모멸감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던 군대경험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어떤 기준으로도 내가 힘겨운 군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미 2사단 헌병대에 근무하던 카투사였다. ‘헌병’ 완장과 실탄 10발이 든 ‘M9베레타’ 권총을 찬 내 업무는 부대 내 안전 점검과 미군과 한국인 사이의 분란 해결이었다. 미군 군복을 입었던 2년 동안 내가 쫓아낸 택시를 줄 세운다면 아마 ‘부산’은 못 되더라도 ‘대구’까지는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일주일마다 한번씩 서울로 ‘외출’(!)을 나갈 수 있는 카투사였다.

인터넷을 떠돌던 전경·해병대 병사들의 알몸 사진을 훓어내리다,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추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1999년 5월 ‘카투사 축제’ 때였다. 미 2사단 헌병 중대에는 8개 소대가 있었는데, 장기자랑 때마다 막내 병사에게 여장을 시켜 ‘스트립쇼’를 하던 관행이 있었다. 그때 우리 소대의 막내는 나였다.

하늘색 원피스 치마를 입고, 가슴에 수건으로 ‘뽕’을 넣은 채 무대로 올라갔다. 미군과 카투사와 그들의 애인이 히히덕대며 벌떼같이 무대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소라의 <난 행복해>가 배경 음악으로 깔렸다. “그까이꺼, 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딱 5분만 참자”고 이를 악물었다. 원피스 위에 걸친 카디건을 벗고, 가슴 속에 넣었던 수건 뽕을 집어 던졌을 때, 흑인 병사가 휘파람을 불며 5달러짜리 지폐를 집어던졌던 것 같다. 음악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막사 세탁기에서 훔쳐온 미군 여자애의 팬티를 벗어 던졌다. 꼭 그 동작을 해야 한다는 고참들의 특별 주문이 있었다.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밖에 무대 위에서 내가 정확히 어떤 짓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 소리를 뒤로 하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들었던 감정은 ‘수치심’이라기보다 ‘안도감’이었다. 다시 옷을 입으러 화장실로 들어왔을 때 고참들이 몰려와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였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전문가들은 “알몸 얼차려는 가장 동물적인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넣음으로써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정신적 외상을 남기는 가장 저급하고 파시스트적인 수법”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렇게 전문적인 분석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람을 길들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막연히 배웠던 것 같다.

군대에서는 그런 관행을 ‘신고식’이라고 부른다. 우리 부대에서는 후임병이 새로 들어오면 차렷 자세로 세워놓고 그가 그동안 관계를 맺은 여자들의 이름과 학교와 주소를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 한 후임병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빛을 보여, 좀더 모질게 신고식을 진행했다. 신고식 이후 이 친구는 호명되면, 몽둥이 찜질당한 개를 연상시키는 반응을 보여, “그럴 필요 없다”고 매번 다독여야 했다. 그는 나중에 후임병이 들어오자, 군기를 지나치게 잡아 원성이 자자했고 가끔 말썽을 일으켰다.

군대는 자기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관행적으로 용인되는 사회다. 충격적인 사진 탓인지 사회 모두가 ‘알몸’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지점은 죄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얼차려’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