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평전>

자크 랑 지음, 윤은주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1만5천원

콩고민주공화국의 탕가니카 호수 부근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던 체 게바라는 1965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만델라의 부인을 비밀리에 접촉했다. 체는 자신이 쓴 편지를 수감 중인 만델라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만델라의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체는 그 이전 이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규탄하는 연설을 한 바 있었다. 모든 억압과 차별에 저항했던 체 게바라가 만델라에게서 느낀 동지애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안티고네에서 스파르타쿠스로

27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감해, 350년에 걸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를 종식시킨 넬슨 만델라는 이제 하나의 살아 있는 신화가 된 것 같다. 수감생활 중에 아들과 어머니를 잃고 아내가 체포되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신념을 꺾지 않고 이상을 실천해나간 그의 삶을 누가 감히 외경스럽게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만델라의 신화는 어딘가 다르다. 그의 신화는 일반적인 영웅의 일대기와 달리 외경 대상이 주는 주눅감 대신 살가운 친밀감을 갖게 한다.

평전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요소가 ‘대상의 신화화’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자크 랑의 서술 방식은 다소 어리석어 보인다. 신화와 고전 속의 영웅들에 만델라의 삶을 비유하며 전개되는 구성이 언뜻 노골적인 신화화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서술 방식은 서문을 쓴 나딘 고디머의 말대로 “한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진정한 경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것은 종국엔 저 높은 곳으로 멀어진 신화를 지상의 차원으로 하강시킴으로써 텍스트화된 인물의 삶에 구체적 실감을 불어넣는다.

가령, 국가와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 안티고네처럼 만델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숭고한 책무를 깨닫고 지금까지 복종해왔던 백인의 법을 위반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는 그 옛날 로마인들에 맞서 싸운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되어 저항세력의 우두머리가 되고, 저항의 불꽃을 인간에게 가져다준 죄로 인종주의라는 바위에 27년 동안 결박당하는 고통을 짊어진 프로메테우스가 된다. 독수리가 간을 쪼는 고통을 견뎌낸 그는 마침내 셰익스피어의 <태풍>에 나오는 마법의 왕자처럼 민족을 어둠에서 구해낸다.

이 평전의 흥미로움은 우선 이와 같이 일반 평전과 다른 독특한 구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델라가 수감생활을 할 때 동료들과 연극을 하며 지낸 이야기에 주목한 저자는 구성을 ‘제1막’, ‘제2막’ 식으로 장치함으로써 인쇄 공간 속에 갇힌 독자를 텍스트 바깥으로 해방시킨다. 만델라는 모순에 가득 찬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불의와 맞서 싸우는 배우가 되고, 독자는 그 배우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이 된다. 여기서, 저자의 엄정한 비평적 시선은 브레히트식의 ‘소격효과’를 발휘한다. 즉, 관객이 지나치게 인물의 삶에 동화되는 것을 반성케 하면서 객관적 성찰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무대의 막이 내릴 때쯤 만델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록에 실린 석방 연설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나는 백인의 지배에 맞서 투쟁했을 뿐만 아니라 흑인의 지배에 대해서도 맞서 싸웠습니다. 나는 모든 인간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상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나는 그 이상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정치는 어떻게 숭고한 삶이 되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뒤 ‘진실과화해위원회’의 위원장이 된 투투 대주교는 “고백 없이 용서 없고, 용서 없이 미래 없다”며 흑인과 백인 모두를 설득했다. 그것은 만델라의 신념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었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은 정치라는 것이 어떻게 숭고한 삶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공공선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 그것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넬슨 만델라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