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김덕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1만3천원

막스 베버(1864~1920)는 퇴니에스, 지멜 등과 더불어 현대 독일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독일은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은 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럽에서 낙후된 지역에 속했다. 이러한 독일 사회를 고민하면서 학자의 길을 걸었던 막스 베버의 자취는 독일이나 사회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전문성’을 학문의 본령으로 내세운 최초의 학자로 평가받는가 하면 그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보편성을 인정받으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발자취에 견줄 만한 인물로는 카를 마르크스 정도가 거론될 뿐이다.

‘학문적 아버지’와 벌인 싸움

그런데 지적 거인으로서의 업적을 인정한다고 해도 21세기 한국에서 왜 하필이면 막스 베버인가? 이 책의 저자 김덕영은 머리말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김덕영이 나열한 한국 지식사회의 문제는 그 항목만 해도 무려 2쪽 가까이 된다. 거대한 혼돈의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다. 막스 베버는 바로 이러한 사회를 비출 수 있는 거울이다. 왜냐하면 베버가 ‘근대’라고 하는 보편적 기준과 씨름했듯이 우리 지식사회 역시 ‘근대적인 합리성’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막스 베버라는 인물의 학문적 성취에만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베버의 삶을 추적하는 전기적 저작이면서도, 당시 유럽과 독일의 지적 배경 속에서 베버의 학문적 자취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베버와 같은 지적 거인이 등장할 수 있었던 독일 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선사하는 매력이다.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카셀대학에서 하빌리타치온(독일 대학교수 자격증)을 획득한 저자가 강조하는 독일의 대학 풍경은 우리와 퍽 판이하다. 베버는 1882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입학한 뒤 베를린대학, 괴팅겐대학 등을 두루 돌며 당대 저명한 교수들의 학문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독일의 대학에는 서열과 장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모두 대학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학에서 어떤 학설이 주창되고 어떤 강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베버는 이러한 풍토 속에서 당시 학문의 정수를 맛보며 학문의 장벽을 뛰어넘는 연구 속에 관심사를 발전시켰다. 법학 외에도 경제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고전학 등 그의 연구는 거칠 것이 없었다. 현대사회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가 불과 30살의 나이에 프라이부르크대학의 경제학과 재정학 정교수로 취임할 수 있었던 것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독일의 지적 풍토 덕분이었다.

그러나 베버는 독일 사회로부터 혜택만 입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독일은 통일을 이루고 산업화에 성공하며 제국주의 쟁탈전에 뛰어들고 있었는데, 독일인의 정신을 지배하던 인물은 바로 ‘철혈 재상’으로 불리는 비스마르크였다. 그를 정점으로 독일은 군국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관료주의 등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시민사회의 성숙은 자꾸만 연기되고 있었다. 베버는 이러한 독일 정신과 끈질기게 투쟁하며 그 이론적 토대인 독일 역사주의 경제학파와 대결했다. 그리고 경제 행위의 주체로 여겨졌던 ‘국가’ 대신 시민사회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주창했다. 이는 그의 ‘학문적 아버지’와 벌인 싸움이었다. 그의 투쟁은 비판적 학문과 학자의 직업윤리를 통해 전개됐지만 전방위적이었다. 그가 비스마르크를 비판하는 한편 권위주의적이던 아버지와 끝까지 대결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학에 유대인·사회주의자·여성을

베버에게 대학은 자유로운 정신의 공화국이 되어야 했다. 대학은 바로 이런 정신들이 투쟁하는 곳이었다. 베버가 학문적으로는 치열하게 비판하며 대척점에 섰던 유대인이나 사회주의자 학자를 대학이 받아들이도록 투쟁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여성의 입학을 허락하기도 전에 그는 그의 강의를 여성에게 개방했다. 이러한 정신은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한 뒤 머문 하이델베르크 네카 강변의 ‘베버 하우스’를 세계의 지성이 모이는 명소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