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신도시 40년 역사가 주는 교훈… ‘화려한 건축미’보단 ‘도시의 활력’으로 슬럼화 방지해야
▣ 파리=글·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파리 신도시 건설의 역사는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 파리시의 신도시 건설 계획이 수립되면서 4년 뒤 옛도시 퐁투아즈에 신도시 세르지 건설이 시작됐다. 그렇게 ‘세르지 퐁투아즈’ 건설이 시작된 이래 해마다 1개의 신도시가 기초공사에 들어가면서 파리는 라데팡스를 중심으로 한 5개의 신도시에 둘러싸인 형국이 됐다. 하지만 파리를 보존하기 위한 40여년 동안의 ‘대단한 도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벌써부터 신도시의 슬럼화 징후가 보이는 것이다.
“신도시의 성공 여부는 도시의 활력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의 신도시 계획은 실패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신도시 주민들의 이동이 거의 없고 집값도 오르지 않는다. 언제든 파리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다.”(에파 마른르의 건축가 크리스토프 무하니) 그동안 파리 접근성이 뛰어난 자리에 신도시를 건설해도 거주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는 말이다. 도시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파리와 다른 가치, 그 뭔가를 보여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리의 신도시들은 탁월한 도시 모델을 제시한 게 사실이다. 마른 라 발레 지역에서 가장 파리에 가까운 곳에 조성한 ‘누와지 르 그랑’에는 예술적 건축물이 즐비하다. 황홀한 입면과 정제된 광장 등 높은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물이 ‘슬럼화’되는 데는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한상욱씨는 신도시의 실험적 건축이 해롭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신도시에 들어선 많은 건축물들은 주변 건물과의 부조화로 인해 바뀌는 도시 프로그램에 대응하지 못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신도시에서 신도시 이미지를 지우는 게 필요하다.”
대부분의 파리 신도시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꾀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마른 라 발레에 있는 파리의 관문을 뜻하는 신도시 ‘포르트 드 파리’(Porte de Paris)는 신시가와 구시가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중심에는 실험정신에 충실한 건축물들이 작품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솟아 있다. 그런데 눈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오래된 거주지가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시가 사람들에겐 신시가의 환상적 건축물이, 신시가 사람들에겐 구시가의 낡은 가옥이 눈엣가시로 작용한다. 어쩌면 기념비적 건축물이 신도시 슬럼화의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는 프랑스 사회의 다민족 특성도 신도시 건설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를 신도시가 흡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른 르 발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누와지 르 그랑에 있는 피카소 집합거주(설계자: 마놀로 뉘네즈)에서 백인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건축적 완성도가 거주자의 휴식공간을 잠식했다는 평가도 있다. 거주자들이 환상적인 건물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신도시에 파리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