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장소
▣ 이주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그냥 몸이 떨렸다. 산중의 절터에서 사무치는 공포감에 주저앉아버렸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울산 운흥사터를 찾아간 2000년 늦가을 무렵. 당시 울산시 의뢰를 받아 다른 연구원 1명과 함께 한 절터 조사가 공포 체험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옛 사서 등에는 거찰이었다가 조선 후기 사라진 폐사지로 전해지는 곳, 부도와 석물들만 몇 개 남아 있다고 기록돼 있을 뿐인 폐사지가 왜 그렇게 오싹했을까.
운흥사지는 경남 양산시와 울주군 경계에 있는 해발 700m의 정족산 오른편 사면 골짜기 기슭에 있다. 행정구역은 울산시 웅촌면 고연리. 인적 드문 반계마을 입구의 빈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천성산으로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절터가 있는 운흥 골짜기는 주민들이 즐겨찾는 명소지만, 운흥사터는 산악 오지로 터 일부만 논밭으로 개간되었고, 나머지는 음산한 풀숲이었다. 건물터에는 폐허와 더불어 여러 기 무덤떼가 있었다. 40여 분 힘들게 올라가 절터에 도착했을 때 을씨년스럽게 펼쳐진 절터의 전경을 보자 낯설고 기괴한 전율이 나를 사로잡았다. 왠지 모를 순간적인 공포감에 빨리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다. 다른 직원은 절터 곳곳을 다니면서 기와도 줍고 석물도 촬영했지만, 나는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고 누군가가 노려보는 듯한 음산한 느낌에 절터 들머리에 쪼그리고 앉아 안절부절못했다.
운흥사는 한때 거대한 전각과 50여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 조선 굴지의 경판 인쇄소로도 유명했지만, 19세기 초 갑자기 쇠락해 사라져버린다. 절터가 망가진 데 대한 옛 스님들의 분노일까. 절이 망할 때 어떤 곡절이 있었던 걸까. 혹 무덤떼의 주인중에 억울한 죽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8년 전 절터에서 느꼈던 오싹한 감정은 그곳 원혼들의 영적인 절규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