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03일 제717호
비가 온다, 떠나자

여행전문가가 권하는 비와 어울리는 곳…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순천 선암사 등 비 오면 더 아름다운 곳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대청마루에 누워 한옥 처마 밑으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삭아삭 수박을 씹으며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앞뒤로 시원하게 뚫린 대청마루는 주거 공간이 가질 수 있는 개방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딱딱한 콘크리트 벽과 두꺼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현대적 주거 공간은 폐쇄적이다. 변기가 놓인 곳 위에 다른 집의 변기가 놓여 있고 거실 위에 다른 집의 거실이 있는 아파트는 최소 면적으로 최대 효율을 실현하는 현대식 주거 형태의 대명사다. 나의 바닥이 남의 천장이고, 남의 바닥이 곧 나의 천장이 되는 구조는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다. 한정된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방음에 신경쓰다 보니 비의 정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 (사진/ 연합)

그렇다면 비의 정취를 느끼러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볼까. 비가 오면 여행을 떠나는 게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지만, 오히려 비가 올 때 더욱더 여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한국여행작가협회의 양영훈 회장은 비가 올 때 운치 있는 여행지로 전남 완도군 보길도 부용동의 윤선도 유적지를 추천한다. 보길도의 대표적 유적지는 십이정각, 세연정, 회수담. 그중에서도 양 회장은 세연정을 꼽는다. “세연정은 윤선도가 풍류를 즐긴 정자예요. 이곳에서 풍류를 노래한 ‘어부사시사’를 썼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정자 주변으로 세연지와 회수담 두 연못이 있고, 멀리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요. 비 오는 날 정자에 앉아 있으면 연못에서는 물안개가 피고,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 들죠.”

그는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순천의 선암사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고 덧붙인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으로, 비 오는 날 입구 쪽의 대밭을 울리는 바람 소리와 대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 선암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중축을 하거나 내부를 현대식 건축물로 꾸미지 않아 전통적인 산사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친절한 여행책>의 저자 최정규(38)씨는 경북 영주시 봉화군의 청량사를 권한다. “청량사에는 비가 오면 안개가 잘 피어올라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산사에 자욱이 깔리면 그 분위기에 취해 몽롱해져요.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죠.” 청량사가 위치한 자리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청량사에서 내려다보면 산 굽이굽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낮은 구름 사이로 온 산봉우리에 비가 내리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청량사 입구에는 사찰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사방이 통유리로 제작돼 있어 비 내리는 풍경을 실내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편안히 느낄 수도 있다. 청량사에서 40분 안팎의 거리에 위치한 봉화 금강소나무숲도 또 하나의 볼거리. 무성한 소나무 숲이 빗방울을 막아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