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경제 > 경제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7월27일 제570호
토지공개념, 무덤에서 살아나나

위헌 판결 등으로 무너진 택지소유상한법·개발이익환수법·토지초과이득세법
한나라당까지 관련제도 도입에 찬성, 정부·여당의 부동산 대책에 반영될까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청구인 경영업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295.5㎡를 소유하고 있고, 그 지상에는 철파이프조 천막지붕 단층 창고 1동 건평 58.2㎡와….”

헌법재판소 조규광 소장(재판장)이 결정문을 읽어내려가자 법정 안의 긴장감이 차츰 높아졌다. 사건 개요 설명에 이어 청구인과 관계기관의 주장 등이 세밀하게 소개된 뒤 이윽고 최종 결정이 떨어졌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토초세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선고한다.” 헌재의 결정문은 이어졌다. “헌법 불합치 결정의 취지에 따라 입법자는 빠른 시일 내에 이 결정에서 밝힌 위헌 판단의 취지에 맞추어 토초세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여야 하고, 법원, 행정청, 기타 모든 국가기관은 입법자가 토초세법을 개정 또는 폐지할 때까지 토초세법의 시행 또는 적용을 중지하여야 한다.”

공개념 자체에 위헌 딱지 붙일 수 없다

택지소유상한법, 개발이익환수법과 함께 토지공개념의 3각 축을 이룬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법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1994년 7월29일,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토지공개념 3법이 만들어진 지 5년 만이었다. 이는 토지공개념의 첫 파열구였을 뿐 아니라 토지공개념 제도의 전반적인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택지소유상한법은 1999년 4월 위헌 판결을 받았으며, 이보다 1년 전에 정부의 폐지법안 발의로 이미 폐지된 상태였다. 개발이익환수법은 합헌 판결을 받았음에도 부담금 부과율·적용 대상을 계속 낮추고 줄임으로써 흐물흐물해지다가 그나마 2003년 말 효력이 중지됐다.


△ 정부의 종합 부동산 대책에 토지공개념이 포함될 것인가. 7월20일 열린 제3차 부동산정책 당정협의회. (사진/ 연합)

이런 곡절 탓에 토지공개념은 곧 무리한 법 적용과 위헌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적 정책이란 ‘색깔 시비’까지 낳는다. 정부·여당이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겠다면서도 ‘토지공개념’이란 용어를 정면으로 내미는 걸 마뜩찮아하는 게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같은 토지공개념이란 용어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한나라당조차 토지공개념적 요소를 담은 개발이익환수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걸 어떻게 봐야 할까?

토지공개념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형식 당시 건설부(지금의 건설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토지의 사유 개념은 시정돼야 한다”며 “토지의 공개념에 입각한 각종 토지정책을 입안 중에 있다”고 밝히면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토지공개념의 제도화가 시도된 것은 서울올림픽이 치러진 1988년이었으며, 이듬해 입법화됐다. 올림픽 개최를 앞뒤로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던 때여서 ‘공공의 복리를 위해 토지 소유권에 일정한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토지공개념제의 취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었다.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아 만들어진 토지공개념 제도가 좌초하고 토지공개념의 의미까지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행정편의적 입법화에 따른 법 조항의 결함 탓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토지공개념법에 대한 위헌 심판의 속내용이 오도된 데서 비롯된 바가 적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토지초과이득세법이 ‘미실현 이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함에 따라 위헌 판정을 받았다는 오해다. 토초세법은 ‘위헌’보다 한 단계 수위가 낮은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고, 이는 미실현 이득에 대한 과세와는 무관한 결정이었다. 이는 당시 헌재 결정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과세 대상인 자본이득의 범위를 실현된 소득에 국한할 것인가 혹은 미실현 이득을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는, 과세 목적·과세소득의 특성·과세 기술상의 문제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헌법상의 조세 개념에 저촉되거나 그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 토지공개념의 제도화는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불던 1989년부터 시도됐다. 1989년 2월23일 열린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사진/ 한겨레)

당시 토초세법에서 문제가 된 것은 개별 토지의 지가를 감정평가사와 같은 전문가가 아닌 하급 공무원이 맡도록 한 점, 양도소득세 부과 때 토지초과이득세 부과분을 빼주지 않아 이중과세가 된다는 점 등이었다. 요컨대 국민 부담으로 직결되는 세법을 행정 관료들의 편의에 따라 적용할 수 있게 해놓은 걸 문제 삼은 것이지, 투기이익을 억제하는 토초세법의 정신을 부정한 게 아니었다.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애초 토초세법의 결함을 고친 개정 토초세법에 대한 위헌 소송 4건(1997년 8월~1999년 8월)에서 모두 ‘합헌’ 판정이 나온 게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원칙과 일관성 없어서 실패

위헌 판정을 받은 택지소유상한법도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주거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 소유를 금지한 입법 목적 자체가 위헌으로 결정된 게 아니었다. 다만, 소유 상한을 200평으로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는 점, 소유 목적이나 택지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예외 없이 획일적인 상한을 정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헌재의 판례는 기록하고 있다. 획일적인 법 적용으로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토지공개념제 3각 축의 하나인 개발이익환수법은 합헌 판정을 받았다는 사정을 감안할 때 토지공개념에 위헌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복잡한 판례 해석을 떠나 우리 헌법(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에는 토지공개념 정신이 담겨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헌재 결정 뒤 토지공개념 관련법의 결함을 고치는 정부의 노력이 이어졌어야 함에도 사태는 거꾸로 전개됐다. 토지공개념제 도입으로 재벌들의 비업무용 토지가 대거 매물로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자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토지 가격이 더욱 안정되고, 건설회사들이 토지공개념 제도를 건설경기 활성화의 장애물로 꼽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 뒤 이어진 외환위기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경기 활성화라는 구호에 모든 게 압도당했다. 토초세와 택지소유상한제가 폐지된 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이었던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합헌 결정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은 개발이익환수법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택지 등을 조성할 때 사업 시행자에게 개발이익의 50%를 물리다가 곧 25%로 깎아준 데 이어 2004년부터는 기업 부담을 덜어준다며 부과를 중단했다.

부평종합법률사무소 김남근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개발이익환수제도를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일반적 원리로 보지 않고 특정 부동산의 투기를 억제하거나 경제정책의 한 수단으로 여긴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나 경제 전반의 사정과 무관하게 토지 불로소득은 늘 일정하게 거둬들임으로써 경제정의를 세워야 전반적인 경제 효율도 꾀할 수 있는 것인데, 원칙과 일관성이 흐트러졌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개발이익환수제 폐지 직후인 2004년 주택법 개정으로 공공택지 입찰 때 적용하는 채권입찰제 등 땜질용 개발이익환수제가 그때그때 도입된 데 머물렀다. 이런 임기응변적 정책 방식으로는 실효성을 거둘 수 없을 뿐 아니라 형평성 시비로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김 변호사는 지적했다.

토지초과이득세 정신도 살려야

정부·여당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토지공개념적 성격을 띠는 개발이익환수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만큼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한나라당 부동산대책특위(위원장 김학송 의원)는 7월20일 부동산 정책 방안을 발표하면서 “합리적인 토지공개념 관련 제도 도입에 찬성한다”며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개발 지역과 인근 지역의 개발이익 환수를 위한 기반시설 부담금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정부와 열린우리당도 당정회의에서 기반시설부담금제의 조기 도입 방침을 정했다. 올해 ‘5·4 부동산대책’에서 2007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던 것을, 1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의 한 축이 부활할 것이란 기대를 낳는 대목이다.


△ 개발이익환수제뿐 아니라 토지초과이득세의 정신도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토지정의 시민연대 회원들이 7월22일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윤운식 기자)

기반시설부담금제는 각종 토지 개발 사업에 따른 이익의 일정 부분을 환수하는 장치다.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등 대규모 국책 사업 주변 지역은 물론 재건축, 재개발에 따른 용적률 확대로 발생하는 이익, 건물의 신·증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거둬들여 도로, 동원, 학교 등 도시 기반시설 설치 비용에 충당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반시설부담금제로는 개발 지역 주변의 개발이익을 온전하게 환수할 수 없다는 관측이 많다. 땅 소유자가 토지를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땅값이 오르더라도 개발부담금을 물지 않기 때문에 개발 지역 인근의 땅값 상승을 노린 투기에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개발을 노린 투기이익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개발이익환수제와 동시에 토초세 정신을 살린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옛 토초세는 땅값이 올랐을 때는 개발 여부와 무관하게 세금을 물도록 했다. 정부·여당이 8월 말까지 내놓겠다고 밝힌 부동산 대책에 토지공개념 정신이 어떻게 담길지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8월 말, 뭔가 특별한 게 나올까

소문만 무성한 정부의 종합적인 부동산 대책을 미리 들여다본다

부동산 대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부가 8월 말에 종합적인 부동산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가운데 검토 단계의 갖가지 방안이 제시돼 혼란스런 모양새다.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당과 토지정의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자체적인 부동산 해법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8월에 나올 정부 대책을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열쇠는 ‘부동산 정책 3원칙’이다. 정부가 갖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세 갈래 원칙은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고 △투기로 얻은 초과이익은 철저히 환수해 투기 심리가 사라지도록 하며 △시장이 투기세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도록 공공 부문의 역할을 확대해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6월2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밝힌 내용이다.

거래 투명성과 관련해 열린우리당은 공공기관에서 택지를 조성해 공급할 때 택지 조성원가와 주택 분양원가를 전면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동산 등기부에 실제 매매가를 기록하도록 하는 방안도 한때 거론된 바 있는데 이번에 포함될지 주목된다. 지금 등기부등본상에는 매매거래일과 당사자만 표시하고 있다.

투기이익 환수라는 두 번째 원칙은 토지공개념 정신과 직결되는 항목이다. 열린우리당·한나라당 모두 개발이익 환수제도의 한 방식으로 기반시설부담금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내년부터 어려움 없이 시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당 일각에선 개발지역 주변의 투기이익까지 거둬들이려면 옛 토지초과이득세 같은 장치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대상 기준을 국세청 기준시가 9억원 초과에서 6억원 초과로 낮추고, 보유세 인상 상한(전년의 50%)을 없애는 등 세제 강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도 투기이익 환수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공공 부문 역할 확대라는 세 번째 방향과 관련된 것으로는 공영개발 방안을 들 수 있다. 이는 ‘판교 문제’ 해법을 놓고 불거졌던 것으로, 공공기관이 주택을 직접 지어 분양하거나 임대하는 방식이다. 판교에 이 모델을 적용한다면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공사가 택지를 민간업체한테 팔지 않고 주택공사 등에 조성원가 이하로 매각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짓게 된다.

물론, 아직은 이 모든 게 유동적인 상태다. 더욱이 8월 말 정부 방안으로 확정된 뒤에도 국회에서 입법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2003년 10·29 대책이란 제법 강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훗날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면서 종합부동산세의 기준 완화 등으로 크게 후퇴한 전례가 있어 정부 방안은 부동산 해법의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