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증가는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것…실업의 대안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측면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11월 초 열린 음식점 주인들의 ‘솥단지 궐기’가 세간의 이목을 끈 뒤부터 자영업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취업자 중 3분의 1이 자영업자이지만, 그동안 정책적 관심은 대부분 임금 노동자에만 쏠려 있었다. 물론 솥단지를 내던진 음식점 주인들의 집단행동이 모든 자영업자의 심정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자영업자 대다수가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에 종사하고 있는 터라 이들의 궐기는 자영업자 일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솥단지’ 민심과 따로노는 이헌재 부총리
그런데 이런 ‘성난 솥단지 민심’과는 반대로 지난 12월3일 이헌재 부총리는 ‘자영업자 과잉론’을 펴며 자영업자들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당시 미국 방문 때 “현재 가사 종사자를 포함해 40%대에 육박하는 자영업자 비율이 미국처럼 5%대로 낮아질 때까지는 구조적 전환기에 따르는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에서 과거 작은 상점의 주인이나 농사짓던 사람이 대형 슈퍼마켓의 종업원이나 임금 노동자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헌재 부총리는 지난 6월에도 “자영업자가 많은 것은 경제의 고도화를 지연하고 저소득층을 형성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자영업자들도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임금 노동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자영업 축소론을 제기한 것이다.

△ 자영업 정책은 종사자 축소여야 하나, 경쟁력 강화여야 하나? 지난 11월 음식점 주인들의 솥단지 시위. (사진 /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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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부총리 말대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외국처럼 자영업 비중을 낮춰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영세 자영업자들을 임금 노동자로 전환시키고 생산성이 낮은 부문의 자영업 창업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아니면, 오히려 당장 필요한 정책은 자영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맞춰져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자영업주와 무급 가족 종사자(월급을 받지 않고 함께 일하는 가족 종사자) 등 비임금 근로자 비중이 전산업에 걸쳐 37.6%(2001)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나 대만, 홍콩 등 경쟁 상대국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표 참조). 국민대 류재우 교수(경제학)는 “국가별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경제발전 수준이 높아질수록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줄어드는데, 우리나라는 현재의 발전 단계에서 기대 수준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의 경우 인구 밀도가 높아서 구멍가게와 식당이 촘촘히 붙어 있어도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자영업주 증가가 거시적 경제환경 변화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 세계적으로 자영업자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왔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이런 추세가 반전돼 대다수 국가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을 기점으로 자영업자 증가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나라 비임금 근로자(자영업자) 비중은 1980년 52.8%에서 1996년 37.2%까지 낮아졌는데, 농림수산업 취업자가 계속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림수산업을 빼고 보면, 비농 전산업의 취업자 중 비임금 근로자는 1992년 29.0%에서 2001년 31.0%(536만8천명)로 늘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대량실업 사태와 고용불안 확산으로 비임금 근로자는 더욱 증가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은 “자영업주 증가는 외환위기 효과 이외에도 기술혁신과 지식기반산업 확대에 따른 창업 확산, 소사장제와 아웃소싱 확산,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제조업 비중 감소, 그리고 도·소매, 음식·숙박업, 개인서비스업의 비중 증가라는 ‘구조적 현상’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영업자의 소득이 투명하게 파악되지 않고 조세 부담도 임금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이런 ‘조세 효과’도 자영업자 증가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최문경 연구원도 “한국도 지식경제, 아웃소싱 확대 등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이 자영업 증가를 촉진하는 일련의 변화를 동반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증가는 대다수 국가가 경험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자영업자들이 경기를 심하게 타기 때문에 내수 부진에 따른 타격을 크게 받고 있긴 하지만 이것을 ‘자영업 과잉론’으로 해석하는 건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류재우 교수는 “우리나라 자영업은 과잉이라기보다는 경기가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문 닫는 곳이 늘고 있다”며 “젊어서 첫 직장으로 자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주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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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을 제외할 경우 한국의 비임금 근로자는 32.0%(자영업주 25.8%, 무급 가족 종사자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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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영업주 평균 나이는 47.5살로 정규직 임금 노동자 평균 나이(36.8살)보다 10살 이상 높다. 연령대별로 자영업주는 40대 35.2%, 50대 22.4%, 30대 21.7%, 20대 3.5%다. 자영업자가 가장 많은 40대가 임금 노동자로 전환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오히려 이들 중 상당수는 임금 노동 부문이 흡수하지 못하거나 고용불안 심화로 불가피하게 창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류재우 교수는 “자영업 부문이 불황기에 실업의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영업은 실직의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데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도·소매 및 음식점 자영업주를 강제로 임금 노동자로 전환시키는 정책보다 우선 고용과 소득 불안정에 대한 대책으로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 측면을 더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 양극화, 정책 실패의 결과인가
물론 자영업자들은 변호사 등 전문가에서부터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집단이기 때문에 복잡한 내부 구성으로 인해 성격을 간명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직업별로 볼 때 (준)전문가로 활동하는 자영업주는 1993년 34만1천명에서 2001년 73만3천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따라서 1990년대의 자영업 시장은 (준)전문가 집단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서비스·판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는 1993년 47.8%에서 2001년 41.8%로 낮아졌다. 유통 및 음식·숙박업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은 이미 임금 근로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영업자 비중 37.6%는 자영업 시장의 메커니즘이 나름대로 작동하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영업자는 새로운 소득 기회 창출과 직업으로서의 매력을 고려한 자발적인 선택이기도 하고, 임금 부문에서 밀려났거나 재취업이 어려워 실업의 대안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이기도 하다.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자영업자를 표본조사(각각 1200여명)한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자율성을 추구하는 직업 가치관이 자영업 종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반면, (준)전문가 비율이 높은 미국에서는 자율성 추구가 자영업 증가의 강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과 수출 중심의 불균형 고속성장 과정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계층이 대거 자영업 부문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금재호 연구위원은 “자영업 내부의 극심한 양극화가 자영업 부문의 본질적 현상인지 아니면 시장 또는 정책 실패의 결과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비효율성, 정책적 관심의 결여가 자영업의 양극화를 심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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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만족도 증가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노동연구원이 경제활동인구조사(통계청)와 노동패널조사(노동연구원)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2001년에 산업별로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37.5%·231만명)에 가장 많은 자영업주가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 이상 학력자는 자영업주가 17.5%로 정규직 임금 노동자(38.2%)보다 낮았다. 자영업을 시작한 동기는 20∼30대 젊은 층에서는 ‘좋아하는 업종이어서’나 ‘남의 간섭이 싫어서’가 큰 비중을 차지한 반면 40대 이상에서는 ‘실직 뒤 생계 또는 정년퇴직 대비’의 비중이 높았다. 또 나이가 젊어서 자영업을 시작할수록 사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만족도에서는 정규직 임금 노동자가 소득 등 모든 항목에 걸쳐 자영업주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이후 고학력·고기술을 지닌 노동자들이 자신의 기회와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영업에 뛰어든 경향이 있지만 대다수 자영업주들은 아직도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은 “자영업주의 소득이 임금 노동자보다 높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지만 근로 시간과 투자 자본, 무급 가족 종사자의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실제 시간당 소득은 정규직 임금 노동자보다 현저히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자영업자의 일자리 만족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금 연구위원은 “‘임금 또는 소득’과 ‘취업의 안정성’에서 자영업자의 만족도가 증가했는데, 외환위기 이후 광범위한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자영업주의 사회적·심리적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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