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2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9월20일 제678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장

가리워진 섬 몽골타워·필리핀 장터·옌볜거리를 가다… 그들은 왜 자기들끼리만 뭉치는가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몽골타워? 몽골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몽골 음식 사고파는 데가 서울에 있다고요?” 9월9일 저녁 8시. “광희동 몽골타워에 가주세요”라고 택시기사에게 말하자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돌아온 답이다. 그렇게 다섯 대의 택시가 떠나갔다. ‘서울에 떠 있는 몽골섬’이라고 몇몇 언론 매체에 2003년부터 간간이 소개된 터라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한 해 해외여행객이 1천만 명을 넘어섰고 매년 명절마다 해외로 가는 비행기 티켓 예매율은 전년도 기록을 훌쩍 앞선다. 하물며 수십만원 하는 비행기 값 없이도 ‘서울 안의 몽골’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 유명해진 명물이지 않을까? 아니었다. 몽골타워는 ‘서울에 떠 있는 가리워진 섬’이었다.


△ 몽골타워 내부. 오피스텔용 빌딩 속에 미용실, 식료품점, 여행사, 전자제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사진/ 한겨레21 박수진 기자)

4층에서 머리 깎고 6층에서 비행기 티켓 사고

서울에는 각 나라 출신 이주민들이 그들의 생필품이나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장터’ 혹은 ‘시장’이 여럿 있다. 종로구 혜화동 혜화성당 앞과 중구 남대문로 5가 필리핀 메트로 은행 앞 두 군데에서는 일요일마다 필리핀 장터가 열린다. 가리봉동 옌볜거리는 이 일대에 중국 동포 수가 늘어나면서 한국 상인 다수가 중국 동포로 대체되면서 형성됐다. 러시아·중앙아시아 보따리상들을 모태로 형성된 동대문운동장 근처의 중앙아시아촌, 네팔 음식점을 중심으로 네팔인들이 모여드는 창신동 네팔거리를 비롯해 프랑스 음식점·와인숍·빵집이 즐비한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 일본어가 오고가는 미장원과 병원 등이 일상적인 풍경인 용산구 이촌동 리틀도쿄 등 서울에 자리잡은 ‘이주민의 공간’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몽골타워도 그중 하나다.

몽골타워는 오피스텔용으로 지어진 10층짜리 건물 뉴금호타운 빌딩을 부르는 말이다. 빌딩 안에는 없는 게 없다. 2층에서 몽골 음식을 먹고, 3층에서 몽골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하고, 4층에서 머리 깎고, 5층에서 영화 CD를 사고, 6층에서 본국에 들를 비행기 티켓을 알아볼 수 있다.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한 30여 개의 각종 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이곳은 그들을 위한 원스톱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누구나 오가며 물건을 구경하고 주인과 잡담할 수 있는 열린 시장의 모습은 아니다. 10층짜리 빌딩 속 좁은 복도 안에 가게마다 닫혀 있는 콘크리트 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 열고 들어가는 시장’이다.

몽골 드라마·영화·음악 CD와 DVD를 주로 판매하는 4층의 한 가게.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가자 가게를 지키던 다즈카(20·가명)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한국에 온 지 7년째인 그는 사촌형의 가게를 봐주고 있었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다니지만 그가 생활하는 주무대는 답십리에 있는 집과 신촌의 어학당, 그리고 이곳 몽골타워다. 다즈카는 “머리도 여기서 깎고 옷도 이 근처 동대문에서 사요. 밥도 여기서 먹어요. 신촌 같은 곳은 좀 낯선데요.” 기자에게 이곳이 낯선 만큼 한국살이 7년째인 그에게는 신촌, 대학로 같은 공간이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곳인 것 같았다. 다즈카는 “가게 손님의 90%는 몽골 사람이고, 10%는 몽골 부인을 둔 한국인 남편이에요”라고 말했다. “가끔 시켜먹는 김치찌개집에서 배달하는 친구랑, 어학당 선생님 말고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은 별로 없어요.” 몽골타워 앞에서 각종 바지류를 3천원에 파는 노점상 주인 김정수(48)씨도 “몽골 친구들은 굳이 말을 걸거나 말하지 않고, 뭐 나도 굳이 말 걸지 않아 같은 구역에서 장사해도 서로 얘기가 많이 오가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밌는 장터’로 소개된 뒤

거리의 시장은 다를까? 일요일마다 열리는 혜화동 필리핀 장터. 혜화성당에서 필리핀 신부님이 미사를 진행하면서 필리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하나둘 생긴 노점이 지금처럼 20여 개의 가게가 포진한 ‘번듯한 장터’가 됐다. 구운 바나나, 필리핀 돼지 족발, 필리핀 볶음밥 등 필리핀에 가야 먹어볼 수 있는 필리핀 음식을 비롯해 필리핀 비누·치약·세제 등 물건들도 모두 필리핀산이다. 근처 여행사 직원이 나와서 단돈 28만원에 마닐라로 갈 수 있는 세부 퍼시픽항공 비행기편을 알려주기도 했다.


△ 일요일마다 열리는 종로구 혜화동 필리핀 장터. 코코넛 주스, 구운 바나나 등 필리핀 고유의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를 파는 가게 옆에 서 있던 필리핀에서 온 셜윈(28·가명)은 “친구가 휴대전화 좋은 게 나왔대서 보러 왔다”며 가게를 살피고 있었다. “지금 쓰는 게 좋지만, 뭐 새로 나온 기계도 보고 싶고 해서….” 중랑구 중화동에서 영어 개인과외 지도를 하고 있다는 그는 일요일마다 이곳에 온다. 말을 거니 생각보다 이야기를 잘 받아준다.

역시 필리핀 장터에서 채소와 구운 바나나 등을 파는 양아무개(49)씨는 “이곳을 재밌는 장터, 풍물장터 뭐 이런 식으로 소개하는 기사나 방송이 나가고 나면 구청 단속이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필리핀 출신 부인을 두고 있는 양씨는 “처음에는 우리도 같이 섞여서 잘 지내고 싶었는데, 감시하고 그러니까 점점 우리끼리 사고파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운 바나나를 사먹어봤다. 맛이 시큼했다. 3천원 짜리 필리핀 코코넛 비누도 덤으로 샀더니 양씨는 “이걸 쓰면 피부 때깔이 달라진다”고 자랑했다.

북적이는 장터 옆 도로 한쪽에는 ‘정찰’ 표지를 단 구청 차량이 나와 있었다. 종로구 가로정비과 직원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열고 있는 장터라 함부로 철거를 하기에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지켜보고 있지만, 불법 장터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구청과 장터 상인들 사이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서려 있다.

가리봉동 옌볜거리에도 ‘어울림’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 곳은 현재 식료품을 주로 파는 골목과 식당들이 밀집된 골목이 나뉘어 있다. 2000년만 해도 자장면, 짬뽕, 달큰한 탕수육 같은 대만식 중국 요리가 아닌 정통 중국 요리를 파는 음식점이 세 곳밖에 없었지만, 주변에 동포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가 많아졌다. 한국 음식점을 하던 한국 상인들은 가게를 접고 중국 음식점으로 바꿨다. 지금 160여 개의 옌볜거리 상점들 중 중국교포가 운영하는 상점은 47개 정도다. 그러나 이곳에도 여전히 한국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중국 동포들이 식당과 맥줏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 호프집 점원 김아무개(46)씨는 “한국인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니까 그렇다”라고 말했다. 한국인과 동포 사이의 교류가 많지 않은 셈이다.

김은미 이화여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현재 한국에 있는 외국인 마을, 시장은 자기 안에서의 결속력은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한국인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열린 마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이촌동에 형성된 일본 마을이나 방배동 서래마을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이민족들만의 이너서클이 형성되는 것은 이민사회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본 마을이나 서래마을처럼 역사가 오래된 마을은 주변과 혼합될 만도 한데, 여전히 그들만의 특색이 강하고 그 경향이 번져나가지 않고 있다”며 “이건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이주민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가 이들에게 배타적이기 때문에 더욱 자기들끼리 뭉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우리 안의 세계’에 눈을 돌리자

시장은 그 지역의 문화를 가장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생기가 넘치는 역동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세계 속의 시장을 우리는 못 보고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다 건너로 눈을 돌리기 전에 ‘우리 안의 세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생긴 지 7~8년 된 세 곳의 외국인 시장 골목을 쏘다니며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