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2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10월05일 제579호
누구나 더러운 빨래감을 지녔다

미국 중산층 마을에서 온 도덕적 위기에 관한 절박한 보고서 <위기의 주부들>…공화당원 작가가 구현한 미국적 캐릭터,브리에게서 드러나는 속죄 의식의 모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주의: <위기의 주부들>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위기의 주부들>을 보면 인간성을 고민하고, 미국의 위기를 이해하게 된다. <위기의 주부들>의 배경인 미국 교외의 중산층 마을 위스테리아는 완벽한 외관을 지녔다. 거리는 깔끔하고, 정원은 가지런하고, 집들은 단정하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것 같은 마을의 겉모습과 달리 마을 주민의 일상은 음습한 비밀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더러운 빨랫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Everyone has a little dirty laundry) <위기의 주부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드라마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

“죄를 은폐하라" 늘어가는 조바심과 비밀

<위기의 주부들>은 인간에 대해 비관적이다. <위기의 주부들>을 휘어잡는 정서는 단연코 죄의식이다. <위기의 주부들>은 마치 ‘친절한 금자씨’의 금언을 복창하듯 “죄를 지었으면 속죄해야 하는 것 아냐?”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끝끝내 죄의식을 버리지는 못한다. 묘하게 창세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위스테리아에서 우리는 모두 죄지은 자들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속죄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을 밀어가는 힘은 죄의식이 아니라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이기 때문이다. 카인의 후예인 위스테리아 주민들은 속죄를 하는 대신 은폐를 선택한다. 그들의 근본 심리는 죄의식이 아니라 조바심이다. 나의 죄를 남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조바심. 다시 한번 내레이션을 떠올린다. “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정말로 역겹더군. 사람들에게 폭로해버릴 거야.” 첫 회에 자살한 메리 앨리스 영이 받은 협박문은 회를 거듭할수록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문이 된다.


여기, 위기의 주부들이 있다. 수잔(테리 헤처)은 “사랑밖에 난 몰라”, 리네트(펠리시티 허프먼)는 “직장을 돌려도”, 브리(마르시아 크로스)는 “완벽한 가정을 원해”, 가브리엘(에바 롱고리아)은 “애인도 필요해”. 주부의 고민을 빈틈없이 구비한 캐릭터 구성이다. 수잔은 로맨스에 중독된 여성성을, 리네트는 좌절당한 성취욕의 불안을, 브리는 위기에 처한 가족의 가치를, 가브리엘은 물질만능주의의 한계를 상징한다. 매우 미국적이면서 꽤나 세계적이다. 위기의 주부들은 무언가를 잃었다. 수잔은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고, 리네트는 네명의 아이를 키우느라 직장을 잃었고, 브리는 자신의 위선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잃었고, 가브리엘은 남편의 다이아몬드를 좇느라 진정한 사랑을 포기했다. 물론 그들은 잃은 것을 되찾고 싶다. 하지만 잃은 것을 되찾으려다 가진 것마저 잃을 위기에 놓인다.

<위기의 주부들>은 파국의 순간에 뒤통수를 때린다. 자포자기의 순간에 뜻밖의 구원이 찾아온다. 예컨대 가브리엘은 정원사와의 외도를 시어머니에게 들킨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가브리엘의 남편에게 외도를 알리지도 못하고 브리의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된다. 엄격한 기독교도인 브리는 종교적 신념을 깨고 아들의 뺑소니 사고를 덮어준다. 이처럼 한 사람의 비밀은 다른 사람의 비밀로, 꼬리를 물면서 연결된다. 여기서 교훈 하나. ‘나의 근심은 남이 풀어준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운이다.’ 이처럼 <위기의 주부들>에서 하나의 사건은 대개 두개의 맥락을 지닌다. 비밀의 연쇄고리는 메리의 자살을 매개로 마을 전체로 번진다.


△ 수잔과 마이크. 수진은 진정한 사랑을 찾은 걸까? 잘못된 남자를 고른 걸까?

하느님의 법이냐, 가족의 가치냐

<위기의 주부들>에서 가정은 가족들의 결투장이고, 마을은 주민들의 전쟁터다. 위스테리아 주민들은 영화평론가 심영섭씨의 표현대로 “관음증이 아니라 관청증”에 중독됐다. 이웃은 이웃의 비밀을 알아내고, 약점을 파고들고. 대가를 요구한다. 참견쟁이 후버 부인은 메리의 비밀을 훔쳐들은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 가브리엘의 외도를 우연히 알게 된 이웃집 꼬마는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자전거를 요구한다. 교훈 하나 더. ‘네 이웃의 비밀을 탐하지 말라.’ 엿들은 비밀은 때때로 엉뚱한 오해로 이어진다. 수잔은 정원사 존의 외도 상대로 오해받아 존의 어머니에게 봉변을 당한다. 정작 미성년자 존과 바람을 피운 가브리엘은 폭행을 당하지 않는다. 때로 가벼운 협박은 끔찍한 불행을 부른다. 후버 부인의 장난 같은 협박문은 메리의 자살을 불렀다. 비밀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비밀을 낳는다. 폴은 아들 잭의 생모를 살해한 아내 메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화사한 위스테리아는 한 꺼풀 벗기면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강명석 문화평론가는 “위기의 주부들의 새로움은 미국의 진정한 위기는 저 빈민의 슬럼이 아니라 여기 중산층의 교외에 있다고 말하는 데 있다”고 요약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인간성이 산뜻하지 않기 때문에 위스테리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 가브리엘과 그의 남편, 정원사 존, 이디(왼쪽부터 시계 방향). 누구나 비밀은 있지만 아무도 속죄하지 않는다.

사랑을 갈망하는 수잔, 아이들에 시달리는 리네트, 다이아몬드를 좇는 가브리엘의 캐릭터가 미국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녔다면, 기독교적 보수주의자 브리는 가장 미국적인 캐릭터다. 브리는 성경을 끼고 살고, 총기를 사랑하며, 레이건을 존경한다. 대학시절 공화당 집회에서 남편의 사형제도에 대한 연설에 감동받아 연애를 시작했다. 브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가 아니라 성경적으로 올바른 용어를 사용한다. 아들이 동성애(자)를 “게이”(gay)라고 하면 “소도미”(Sodomy)라고 ‘바로’ 잡아준다. 그는 빈민들을 믿는다. 빈민들의 부도덕을 믿는다. 브리는 완벽한 주부이자 살림의 여왕이다. 음식 만들기부터 정원 가꾸기까지, 집안일에 만능이다. 위스테리아의 마사 스튜어트다. 하지만 브리가 완벽할수록 가족들은 숨막힌다. 털끝만큼의 흐트러짐도 참지 못하는 브리의 완벽주의 강박증과 한치의 도덕적 일탈도 용납하지 못하는 브리의 엄숙주의는 가족들의 숨통을 옥죈다. 기독교적 도덕으로 무장한 완벽한 가정을 꿈꾸는 브리에게 가혹한 시련이 닥친다. 남편은 외도하고, 아들은 커밍아웃하며, 딸은 순결서약을 깨려 한다. 콘돔, 마리화나, 사도마조히즘, 동성애…. 미국의 보수주의가 적으로 삼는 모든 것이 보수주의자 브리의 가정에 침투한다. 브리는 미국 중산층의 악몽을 죄다 현실로 경험한다. 이제 브리에게 선택이 남는다. 하느님의 법이냐, 가족의 가치냐. 보수주의자들이 조화로운 가치로 여기는 하느님의 법과 가족의 가치가 브리의 내면에서 충돌한다. 브리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딜레마를 온몸으로 떠안고 갈등한다.

그리하여 브리는 가족을 위할수록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된다.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주한 아들의 죄를 덮어주고, 외도를 하고 사도마조히즘적 성행위를 요구하는 남편을 받아들이려 한다. 브리는 가족을 선택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 노력하지만, 끝끝내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다. 브리의 어정쩡한 선택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온다. 아들은 갈수록 엇나가고, 남편은 끝끝내 죽게 된다. 그 모든 비극이 브리의 실수와 관련된다. 만약 브리가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면, 어쩌면 바람직한 주부상일지도 모른다. 가족의 죄를 용납하지 못하는 내면의 갈등만 없다면, 브리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주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강명석 평론가는 “한국에서 가족은 절대선이고, 가족 앞에서는 공사의 구분도 없다”며 “하지만 미국에서는 죄의식이 더욱 근본적이고, 가족의 죄도 죄로 여겨지는 모습이 브리를 통해 드러난다”고 말했다. <위기의 주부들>은 브리를 둘러싼 현실을 통해 미국의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강 평론가는 “교회와 학교에서 도덕적인 당위를 강조하는 교육을 받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미국 사회의 이중성이 브리의 현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분석했다.


△ 브리(왼쪽)와 리네트. 리네트의 역할 모델은 브리지만 브리의 가정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철저히 조롱당해도 끝끝내 이해받는 브리

고지식한 청교도 브리는 도덕이 무너진 자리에서 도덕을 지키려고 몸부림친다. 공화당원인 (아마도 극우는 아니고 중도일 것 같은) 작가는 브리의 바로 왼쪽에서 브리를 비판하고 브리를 동정한다. 덧붙이자면, 동성애자인 브리의 아들은 작가의 초상 같다.

브리는 철저히 조롱당하지만 끝끝내 이해받는다. 브리야말로 가장 처절하게 죄의식으로 고통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해해. 그리고 용서해.” 브리의 남편이 남긴 유서에는 브리에 대한 드라마의 태도가 요약돼 있다. 강명석 평론가는 “위기의 주부들에서 브리는 근본적으로 순수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여자로 그려진다”며 “결국 그런 브리가 점점 불행해지니까 더욱 안타깝다는 시선이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위기의 주부들>은 브리를 통해 미국인의 일상을 비판하지만, 결국은 미국적 가치를 옹호한다. 하지만 그것은 부시의 가치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위기의 주부들>의 화자는 메리 앨리스 영이다. 죽은 자인 메리는 전지전능하다. 산자들을 내려다보며 말씀을 전하신다. 속죄를 넘어서는 것은 연민이라고. 이렇게 <위기의 주부들>은 메리의 입을 빌어 따뜻한 위로의 말도 건넨다. 하지만 절박한 위기에 대한 긴 보고서 끝에 한마디 덧붙인 위로는 왠지 허약하게 들린다. 그래도 <위기의 주부들>은 속삭인다. 신이시여, 아메리카를 긍휼히 여기소서!


‘위기’에 빠져보시렵니까?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 한국의 20·30대 여성도 사로잡다

<위기의 주부들>은 혼합장르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첫 회에서 자살한 메리 앨리스 영의 자살의 비밀을 밝히는 추리극이 뼈대다. 여기에 블랙코미디의 쌉쌀한 유머를 섞고, 멜로 드라마로 달콤함을 더하고, 가족극의 짠맛으로 마무리했다. <위기의 주부들>은 2004년10월 미국에서 처음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에서만 2200만명의 시청자가 <위기의 주부들>을 시청했고,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5월부터 캐치온, 7월부터 한국방송을 통해 방송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9월부터는 OCN에서도 방송하고 있다. 한국의 주시청층은 20대 직장여성과 30대 주부들이다. 송성근 한국방송 영화만화팀장은 “미국의 중산층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공감대가 인기의 비결”이라며 “한국 드라마에는 없는 적나라한 묘사도 인기에 한몫을 한다”고 분석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 11시15분부터 한국방송에서 방송되는 <위기의 주부들>의 시청률은 심야시간대치고는 높은 7%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소프 드라마는 태평양을 건너와 쿨한 드라마로 소비된다. 이영빈 캐치온 홍보담당자는 “외국 드라마에 익숙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위기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섹스 앤 더 시티>가 클린턴 시대의 문화적 산물이라면, <위기의 주부들>은 부시 시대의 드라마로 보인다. <섹스 앤 더 시티>가 뉴욕 독신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쿨한 감수성을 전파하는 구실을 했다면, <위기의 주부들>은 교외 중산층 마을을 배경으로 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9월25일 시즌2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송성근 팀장은 “반응이 좋아 이미 시즌2를 구입했다”며 “내년 초에 시즌2가 방송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즌1의 위기의 주부들은 시즌2에서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 같다. 시즌1의 마지막에 브리의 남편은 죽었고, 가브리엘의 남편은 감옥에 갇혔고, 리네트의 남편은 직장을 때려치웠고, 수잔의 남자친구는 정체가 드러났다.



“니도 브리맹키로 입어봐라”

르네트의 ‘그냥 청바지’를 입은 딸에게 던진 어머니의 충고

▣ 심은정/ 패션 에디터

요즘 들어 부쩍 엄마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다 <위기의 주부들> 때문이다. 엄마는 요즘 한 남자의 아내, 삼남매의 어머니로 사느라 포기해야만 했던 ‘패션 리더’로서의 삶을 <위기의 주부들>에 등장하는 브리를 통해 충족시키고 있다. 빨래를 할 때조차 러플이 달린 니트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완벽한 헤어스타일로 가족들의 저녁상을 차리는 브리야말로 우리 어머니가 꿈꿔온 ‘퍼펙트 와이프’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브리에 대한 동경이 엄마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충족시켜주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아직 주부의 대열에도 끼지 못한 노처녀 딸을(‘위기에 처해도 좋다. 주부만 되거라!’가 우리 엄마의 바람) 필코 브리 같은 주부로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를 심어준다는 데 있다.

사실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내 삶은 전혀 우아하지도, 전혀 패셔너블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내 평상시 옷차림은 리네트의 그것에 가깝다.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맨 헤어스타일, 매일 갈아입는 것 같기는 한데 어제 입었던 것과의 차이점을 도통 끄집어내기! 힘든 평범한 셔츠들, 그리고 청바지. 그러다 간혹 데이트가 있거나(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공식 석상에 참석해야 할 때, 기껏 차려입는다고 입으면 수잔 정도?

수잔처럼 입는 것도 그다지 쉽지는 않다. 옷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야 “수잔과 리네트의 옷차림이 뭐 차이가 있어? 오십보백보지”라고 말할지 몰라도 수잔과 리네트의 차이는 아주 크다. 가령 청바지만 해도 그렇다. 엉뚱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으나 자신의 딸보다 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이혼녀 수잔은 옷도 철없이 입는다. 자기 딸의 친구들이나 즐겨입을 법한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스키니 진이나 부츠컷 진에 발랄한 니트 혹은 실용적인 톱 같은 것들. 반면 리네트가 입는 청바지는 그야말로 ‘그냥 청바지’다. ‘실루엣이고 나발이고’ 철저히 무시한, 그야말로 편하고 질기고 세탁이 용이한 ‘청바지’인 것이다. 리네트라는 캐릭터가 한때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는 점(커리어우먼은 통상적으로 실용성을 사랑한다)이나 현재 네명의 아이들을 상대로 ‘고독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당연한 옷차림이라 할 것이다.

이런 두 사람에 반해 브리는 완벽한 레이디라이크 룩의 전형을 보여준다. 트위드 슈트, 진주 목걸이, 러플 달린 화사한 니트, 그리고 풀스커트 등에서 여성스러움과 우아함이 뚝뚝 흘러내린다. 또 한명의 주인공 가브리엘은 섹시 글램 룩으로 뭇 남성들을 공략한다. 등과 목선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홀터넥, 화려한 액세서리들, 속옷인지 겉옷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대범한 원피스 등은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정원사와 정사를 벌이는 그녀에게 그야말로 딱이다.

오늘도 리네트처럼 다림질조차 제대로 안 된 셔츠를 입고 집을 나서는 내게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니도 그 누고, 브리맹키로 얌전한 치마도 좀 입고 하믄 안 되나? 그라고 다니니 어느 머스마가 쳐다보겠노?” 농담반 진담반으로 “엄마, 자꾸 그러면 나도 가브리엘처럼 훌러덩 벗고 다닌다!”라고 엄포를 놓았더니 잠깐 눈을 흘기시다가 “아이고, 어느 세월에…” 한다. 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각자 말 못할 비밀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위기의 주부들처럼 내 삶 역시 평온해 보이지만 고민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위기고 뭐고, 주부 되기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