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진압 겪은 뒤 시위장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밤샘녀’ 이한나씨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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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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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잠을 잊었다. 이번 시위의 특징 중 하나는 ‘밤샘 시위’다. 6월4일 새벽에도 어김없이 ‘밤을 잊은 그대들’이 광화문을 지켰다. 새벽 3시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지면 70~80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길을 건넜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어청수를 구속하라!” 초록불은 1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켜졌고, 8박자 구호도, 사람들의 길 건너기도 이어졌다. ‘초록불일 때만 건너는’ 도덕 교과서형 준법 시위였다. 그나마도 경찰이 막으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다른 신호등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횡단보도 시위는 계속됐다.
이한나(26)씨도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 7시에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이씨는 시청앞~서대문 경찰청~광화문으로 이어진 거리행진을 마치고 광화문 네거리를 지켰다. 새벽 2시20분. 한 무리의 사람들이 횡단보도 건너기를 시작하자 이씨도 동참했다.
이씨는 왜 집에 가지 않고 밤을 밝히는 걸까. “남아 있는 사람들이 걱정돼서 갈 수가 없어요. 사람이 적을수록 강제 진압을 할 확률이 높잖아요.” 5월31일 토요일, 이씨는 폭력 경찰을 직접 겪었다. “효자동에서 경찰들이 물대포를 쏠 때 제 옆에 여중생, 여고생들이 있었어요. 얇은 옷만 입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도 물대포는 어김없이 뿌려졌어요. 애들이 벌벌 떨더라고요. 전경은 여중생·여고생도 방패로 밀어붙이고 때렸어요. 살기가 느껴졌어요. 잠이 오겠어요? 경찰의 ‘폭력 진압’이 제 잠을 쫓은 거죠.”
이씨는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 “실직하고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불평하고 호소하는 촛불집회를 벌인다”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 사실? 이씨는 코웃음쳤다. “밤새우고 곧장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밤새우면서 알게 된 한 분도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곧장 출근하시던걸요. 홍보실에 근무한다는 한 여성 회사원은 새벽 5~6시께 집으로 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할 거래요. 그리고 취업 준비생은 뭐 할 일 없는 줄 아세요? 준비할 것도 공부할 것도 산더미예요. 사람들이 자기 생활을 뒤로하고 시위에 참여할 만큼 문제를 절박하게 느끼고 있구나, 귀 막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구나, 라고 해석해야 할 텐데 답답하네요.” 이씨는 덧붙였다. “그리고 생활이 어렵고 사회에 불만 있는 사람들도 집회에 나오겠죠. 그럼 그걸 민심으로 받아들여 고칠 노력을 하고 사죄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날 새벽, 500m쯤 떨어진 서울광장에서도 횡단보도는 쉴 틈이 없었다. 강원 횡성에서 쇠고기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넜고, 남편과 함께 나온 40대 주부는 “딸 같은 아이들이 맞는 걸 보고 참을 수 없었다”며 초를 밝혔다. 회사원 남편은 잔디광장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학원 수업을 끝내고 밤 12시에 경기 시흥에서 엄마를 조르고 졸라 거리로 나왔다는 고등학생도 지친 몸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휴대전화 가게를 운영하는 세 명의 남성도 밤 11시 가게문을 닫은 뒤 ‘한 잔의 술’을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왔다. 다음날 아침 1교시 수업이 있다는 대학생 이고임(24)씨는 “이명박 대통령은 일찍 일어나서 ‘어~린쥐’ 까드셔야 하니까 자고 있을 텐데, 우리가 자기 때문에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걸 제발 부디 알아달라”고 외치며 신호등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질기고도 착한 시위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