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6·10을 겪은 역사적 현장에 다시 나온 윤철희씨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 윤철희씨
|
‘이명박은 간첩이다’(<한겨레21> 712호 ‘만리재에서’ 참조)의 완결편이 나왔다. “제가 이명박이랑 동갑입니다.” 집회의 마이크 소리가 빗소리를 거치면서 조그맣게 닿는다. 서울시청 앞 난간에 앉은 윤철희(67)씨가 말했다. “이명박이 프락치였답니다. 제 아는 친구가 이명박의 동창인데….” ‘카더라’가 발전해 정황이 보태지는 전형적인 ‘썰’이다. 어쨌든 윤씨가 그 말을 다 믿는 건 아니다. “포섭된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진짜 그런 건지는 모르죠. 기자님이시니까, 한번 확인해주십시오.”
윤철희씨는 “여기는 역사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서울 토박이 윤씨는 4·19 때도 6·10 때도 광화문에 있었다. 4·19 때는 고1이었고, 6·10 때는 직장인이었다. 그는 “저기 덕수궁 돌담길에 기관총알이 무수히 박혔고 많은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촛불집회는 정말 많이 달라요. 과격스러운 게 나올 만한데, 그런 게 나오면 사람들이 다 자제를 시키더라고요. 우리가 빌미가 되어선 안 된다며.” 4·19 때는 친구들과 함께였고 6·10 때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였다.
지금 윤씨는 혼자다. “탑골공원에 오던 친구들을 여럿 만나기는 합니다.” 부인과 같이 나오시지 그랬냐고 물었더니 “어림없죠”라고 딱 잘라 말한다. 철물점을 하는데 비워둘 수가 없어서다. “못 하나를 사러 오더라도 문이 닫혀 있으면 신용을 잃어요. 낮에는 제가 (가게를) 보고 저녁을 먹고는 집회장에 와요. 집사람이 오고 싶어하긴 하는데, 제가 나와야 해서….” 혼자 나온 그는 여기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젊은 친구들이 ‘아고라’도 가르쳐주고, ‘아프리카’도 가르쳐주었다. 집회가 계속될수록 ‘썰’은 점점 ‘사실’이 돼간다. 처음에는 ‘순전히’ 광우병 때문에 나왔는데, 이제는 ‘과격한’ 구호도 같이 외치게 된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 믿음을 소중하게 다뤄야 할 사람이 국민한테는 완전히 믿음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