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부터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나온 김현희씨
▣ 대구=글·사진 박영률 기자 한겨레 지역팀 ylpak@hani.co.kr
“촛불문화제가 계속되는 동안 주부들의 사회의식도 점점 자라고 있어요.”
6월5일 저녁 7시부터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는 10대 청소년부터 70대 노인까지 700여 명의 각계각층 시민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외쳤다. 간간이 빗방울이 날리는 날씨에도 4살 난 딸과 함께 촛불을 들고 집회장 한구석을 지키고 있던 김현희(37)씨는 요즘 매주 두 차례씩은 반드시 이곳을 찾고 있다. 주중엔 딸의 손을 잡고, 주말엔 남편까지 세 가족이 함께 나온다.

△ 김현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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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애 키우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를 지키는 마음에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엄마들 모두 같은 마음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육아카페 토론방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광우병의 심각성을 접하면서 지난 4월 말 촛불시위에 처음 나왔다. 신문도 그동안 인터넷으로만 보다가 지난달 처음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구독 신청했다.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진보적 인터넷 매체에도 더 관심을 갖게 됐고, 시위 동영상 중계로 유명해진 ‘아프리카’도 처음 알게 됐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하던 한의사 남편도 주말엔 김씨와 함께 촛불시위에 나선다. 남편이 퇴근한 뒤 저녁 시간에 사회문제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김씨는 “정부가 국민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정치적 계산만 하는 것 같아 너무 가슴이 답답하다”며 “이러다 5년 내내 촛불을 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입한 육아카페의 토론방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토론 내용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육아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게 전부였지만 올해 들어 광우병 문제에서 대운하, 산업은행 민영화 등 현 정부의 정책 전반으로 토론 주제가 넓혀지고 있다. 김씨는 “주부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문제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물·전기·먹을거리는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주부들의 분노가 크다”며 “특히 특정 포털 사이트가 <조선일보> 등의 기사를 많이 싣는다는 이유로 몇몇 주부들을 중심으로 이 포털에서 운영하던 자신들의 육아·요리 블로그를 철수하자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북대 90학번인 김씨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학생회 일도 했지만 그리 앞장서서 하는 편은 아니었다. 잠시 직장 생활을 했지만 결혼과 출산을 한 뒤엔 주부 역할에 충실해왔다. 쇠고기 문제가 잊고 있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깨운 셈이다.
김씨는 “시간이 갈수록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며 “국민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주식회사의 종업원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불가피하다면 재협상을 통해 최대한의 안전장치가 보장된 뒤에 들여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밤이 깊어가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날씨에도 김씨는 “이 정부의 성격을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끝까지 한번 해볼 생각”이라며 눈빛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