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의 명령거부권 보장을 외치는 달꿈, 진선, 김이민경, 정훈씨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들은 같은 대학에 다니지만, 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 아래 있지는 않았다. 대신 컬러펜으로 꾹꾹 눌러쓴 손팻말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 간절한 구호를 담았다. ‘전·의경의 명령거부권 보장하라!’ 잠깐, 수식어가 빠졌다.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보장하라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었다. 6월3일 서울의 촛불집회에서 만난 달꿈, 진선, 김이민경, 정훈(사진 왼쪽부터), 네 명은 전경의 폭력을 넘어서 전경의 권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 달꿈, 진선, 김이민경, 정훈씨 (사진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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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실정법’ 안에서 전·의경이 국가의, 상관의 명령에 ‘아니요’라고 거부하는 것은 엄중한 처벌을 받는 범죄다. 그래서 아무리 정부가 비폭력 무방비 시민을 방패로 막으란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촛불집회 최대의 화제작 ‘닭장차 투어’ 같은 시민 불복종은 실정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직접행동이다. 실정법보다 인권에 바탕한 비폭력 직접행동이 더욱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김이민경씨는 전경들 앞에서 외쳐왔다. “방패를 버리고 나와라!” 그들의 생각에 국가 권력의 부당한 명령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항명이 아니라 권리다. 하지만 병역거부권과 상통하는 명령거부권은 아직 대한민국에선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다. 그래서 진선씨는 “국가 권력의 부당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전·의경도 인권 피해자”라고 말했다.
깃발에 다양한 목소리가 묻혔을까. 정해진 발언 순서를 따지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불만을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초기엔 자발성이 넘치고 다양성이 출렁였다. 한 번도 자신의 고통을 정치화된 언어로 말하지 못했던 여고생이 자유발언을 통해 0교시 수업의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집회가 커지며 초기의 난장은 조금 활기를 잃었다. 깃발에 개인이 묻혔다. 정훈씨는 “그냥 한 명의 시민으로 들어오면 되지 굳이 깃발을 앞세울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김이민경씨는 “이명박 개인, 광우병 하나, 외교적 주권만 말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커졌다”고 덧붙였다. 안타깝게 구호의 다양성, 표현의 기발함이 흐려졌다. 그래서 정훈씨는 “갈수록 집회가 재미없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대부분 하나는 다수의 다른 이름이고 소수는 배제되기 십상이다.
맨발의 청춘을 꿈꾼다. 제복에 맞서는 맨발을 말이다. 김이민경씨는 비폭력 행동의 하나로 ‘맨발 행진’을 제안했다. 방패를 쿵쿵 바닥에 찧으며 다니는 전경을 향해 맨발로 맞서는 행동이다. 맨발은 원초적 비폭력을 상징한다. 전경의 방패에 맞서는 맨발의 비폭력, 그는 맨발 행진을 아고라 청원에 올렸다. 하지만 썰렁한 무플. 댓글이 거의 달리지 않았다. 그래도 좌절 금지. 김이씨는 “뜻을 모아서 맨발 행진을 꼭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에겐 촛불집회 안의 성별분업도 불편하다. 진선씨는 “전경과 맞서면 ‘남자 앞으로!’ 같은 말이 나온다”며 “나도 앞으로 나가고 싶지만 여자라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예비군들이 나서면서 이러한 성별분업은 더욱 뚜렷해졌다. 김이씨는 “무언가를 간구하는 연약한 소녀의 전통적 이미지에 기대는 ‘촛불 소녀’ 캐릭터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들이 예민한 촉수를 세우는 이유는, ‘지금 여기서’ 자유롭지 않으면 이것은 자유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탁 하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사이트에 가봤는데, 촛불집회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더라. 앞으로 촛불집회에 적극 나와서 병역거부권, 명령거부권 얘기를 알렸으면 좋겠다.” 깃발 없는 청춘들의 정체는 그냥 사회에 관심 있는 “술친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