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이 세운 독립·자유 지향의 에이전시 매그넘…‘한국 프로젝트’에서는 20명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별로 한국을 담을 예정
▣이기명 한국매그넘에이전트 디렉터·(주)유로커뮤니케이션
살아 있는 전설, 로버트 카파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후예들이 오고 있다. 신화를 창조하는 세계 최고 사진작가 에이전시 ‘매그넘’(Magnum Photos) 소속 20명의 사진작가들이 1년 동안 대한민국을 촬영한다. 이 프로젝트는 <한겨레> 창간 20돌을 의미하는 20가지 주제를 한겨레신문사와 매그넘이 함께 선정하여 지난해 10월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한겨레신문사는 2008년 창간 20돌을 기념해 한국을 대표할 이미지로 사진집을 발행하고, 국내외 순회 사진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매그넘 역사상 단일 프로젝트로서는 최다 사진작가가 참여하는 초대형 기획 사업으로, 사진집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화염에 싸인 유정 앞에 서 있는 미군 병사. 이라크 사프완. 1991. 아바스는 한국에서 종교와 종교 관련 산업을 담는다.
(사진/ ABBAS/ MAGNUM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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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매그넘의 오늘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매그넘의 출발로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매그넘은 4명의 사진작가들에 의해서 창립되었다. 열망과 추진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쟁 사진작가로 알려진 로버트 카파(미국, 헝가리 태생)가 있었다. 그리고 근대사진의 마스터이자 찰나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프랑스)이 동참했다. 전혀 종교적이지 않았지만 일종의 슬픔으로 자기 안에 유대인의 짐을 지고 다니는 데이비드 세이무어(미국, 폴란드 태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꿈꾸는 사람으로 묘사했던 <라이프>의 사진기자 조지 로저(영국)가 합류했다. 다른 위성에서 온 듯한 4명의 창립자는 자신들의 길이 교차되고 다시 교차되었을 때 서로를 위해서 신뢰와 존경, 나아가 사랑하는 방법을 계발했다. 매그넘은 이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진작가 6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에이전시로 성장했다. 매그넘은 창립자들의 가장 훌륭한 창조물이었다.
창립자들의 가장 훌륭한 창조물
4명의 창립자는 1947년에 편집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신이 촬영한 필름에 대한 사용권과 그들 자신의 어사인먼트를 선택할 자유를 보장받고 자신의 개성을 사진에 반영하기 위해 매그넘을 창립하였다. 그들은 대담하고 새로운 도전의 의미로서 매그넘이란 이름이 적합하다고 동의했다. 매그넘은 라틴 문학에서 ‘위대함’(Greatness)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총의 내포적 의미로서 ‘강인함’(toughness)을, 그리고 샴페인 양식에서 ‘축하’(celebration)의 의미를 지닌다.

△ 스위스 취리히. 1980. 르네 버리는 한국에서 건축과 세계문화유산을 찍는다(사진/ RENE BURRI/ MAGNUM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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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의 창립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작업에 관한 선택과 그 작업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 자율성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출판물이나 출판사의 편집자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사진작가로서의 주체성과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창립자 4명의 염원이기도 했다. 창립자들의 염원은 매그넘의 전통이 되었다. 현재 매그넘의 사진작가들은 독자적으로 촬영 계획을 세워 여행하고, 보고, 기록하고, 창작해오고 있다.
매그넘 사진작가들의 사진 세계는 주제의 깊이와 통일, 나아가 작업의 지속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 주제 혹은 그와 유사한 주제들을 오랫동안 천착해왔기에 작업의 일관성을 통해 스스로 작업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국’ 프로젝트에서는 20명의 사진작가들에게 그들의 기존 사진 작업과 연동되는 주제별 촬영을 의뢰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종교분쟁과 전세계의 다양한 종교를 기록해온 압바스의 사진은 종교에 관한 고도로 세련된 시각적 해석이다. 그가 한국의 종교를 기록한다. 14년 동안 어부들의 삶을 열의를 갖고 끈기 있게 다룬 장 고미의 사진은 어부에 관한 비범하고도 전형화된 하나의 묵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한국 어부 촬영이 기대된다. 스튜어트 프랭클린은 톈안먼 광장에서 탱크 앞에 서 있는 중국 청년의 모습을 담았다. 공포에 맞서 자유의 여명을 기록했던 그가 비무장지대(DMZ)를 찍었다. 크리스 스틸 퍼킨스는 세르비아군의 사라예보 봉쇄 장면을 촬영하고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소름 끼치는 미국 마약 소굴을 기록하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한국의 사회 문제를 다룬다.

△ 이민자들.미국 뉴욕.1996. 치엔치 창은 한국에서 종교의식을 기록한다(사진/ CHIEN-CHI CHANG/ MAGNUM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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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다시 정의하는 기회
한편 형식에서 매그넘의 사진작가들은 디지털 비디오 영상이 장악한 영상 세계에 주목하고 있다. 리제 설퍼티, 해리 그뤼아트 등은 비디오 세계의 새로운 미적 기준을 그들의 작업에 적용했다. 예컨대 중앙에서 벗어난 프레이밍, 거친 입자, 낯설고 기괴한 이미지의 병렬, 사진의 의미 맥락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의 의도적인 빼내기, 이상하고 비속한 색상 등이다. 그들의 사진이 내용에서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사진 형식에서도 감흥을 줄 것으로 예견된다.
매그넘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신뢰하고자 노력하는 진보적이고 도덕적인 보편성의 도상 기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매그넘은 기록의 도덕적 힘에 헌신하고 있다. 매그넘의 사진은 타자 간의 거리, 들리는 비명과 들리지 않는 비명의 거리, 도움을 받은 손과 도움을 받지 못한 손의 거리를 기록해오고 있다. 매그넘의 사진 덕택으로, 지난 60년에 걸쳐 안전 지대와 위험 지대의 윤리적 거리가 시각적으로 증언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매그넘의 한국 프로젝트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기록, 해석, 전망의 장을 마련해 한국 사회 제 현상의 패턴을 정의하고 원인을 설명하여 더 깊은 시대의 중요한 역사 기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장난감 권총을 든 손자.러시아.2000.토마스 드보르작은 한국에서 군을 찍는다(사진/ THOMAS DWORZAK/ MAGNUM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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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매그넘은 동유럽, 그리스, 아일랜드, 일본, 미국 뉴욕의 9·1 테러 등 특정 지역이나 국가, 혹은 주제를 선정해 50점이 넘는 공동 작품집을 발행해왔다. 9·11 테러를 다룬 매그넘 사진집 <뉴욕 9·11>, 2001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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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9·11>에 실린 사진. 뉴욕(사진/ SUSAN MEISELAS/ MAGNUM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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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다룬 매그넘 사진집<일본>,2004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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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실린 사진.일본 나라(사진/ HIROJI KUBOTA/ MAGNUM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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