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테니스’ 끝없는 의혹에도 지지도 이탈 현상 거의 없는 이명박 시장…“일만 잘하면 됐지 뭐” 믿고 부적절 처신 계속하다간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꼭 5개월 전이다. <한겨레21>은 지난해 10월 말 581호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당시 이 시장은 ‘청계천 효과’에 힘입어 대선 예비주자들의 호감도 조사(한길리서치 10월7~8일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고건 전 총리를 오차 범위 이내로 따라붙었다.
고건 15.1%, 이명박 14.4%였다. 그로부터 1년 전만 해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과 엇비슷한 3%대였다. 그런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9.6%)를 3위로 떨어뜨리고 비상한 것이었다.
가장 두려운 이회창의 악몽
인기가 가파르게 오른 요인은 청계천 복원 등 눈에 보이는 성과였다. 사람들은 이 시장에게서 성취·성과·능력·실적 등을 떠올렸다. 눈높이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도덕성·자질·업무능력 등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됐다. 업적이다. ‘그래, 당신이 해놓은 일은 뭐야?’를 요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시장은 역대 서울시장에 비해 많은 일을 벌였고 공과를 논하기 이른 뉴타운 사업을 제외하곤 점수를 쌓았다. 그를 끌어올린 힘은 성과 중심형 이미지이다. 이른바 ‘업적주의’라 부를 만하다.
어쩌면 이 시장은 시간이 1년쯤 멈췄다가 흐르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봄날만 계속될 줄 알았다. 그는 3월11일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회창 후보처럼 한 건도 사실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압력을 넣을 때보다 더 두려운 일이다. 대선을 앞두고 인간이니 그 악몽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황제 테니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미국 정부와 워싱턴 정가에 이명박이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한”(김병일 서울시 대변인) 방미 일정이 앞당겨졌다. 이 시장은 일정을 이틀 앞당겨 3월18일 급히 귀국했다. 악몽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직접 나서야 했다. .

△ ‘황제 테니스’ 파문이 커지자 이명박 시장은 귀국 일정을 이틀 앞당겨 3월18일 귀국했다. 이 시장은 인천공항에서부터 기자들의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사진/한겨레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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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테니스는 이해찬 국무총리 사퇴로 결론난 ‘황제 골프’와 닮은꼴이었다. 이 시장이 과거 특권층의 ‘놀이터’에서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온 서울 남산실내테니스장을 2003년부터 51차례에 걸쳐 주말에 독점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공짜였고 지난해 말 문제가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600만원을 냈다. 나머지 2천만원은 같이 테니스를 쳤던 ‘남산회’의 한 회원이 냈다. 2004년 7월 서울에 물난리가 났던 주말에도, 그는 특권층의 놀이터에서 놀았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 시장은 3월21일 “공직자로서 사려 깊게 처신하지 못한 점이 있어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제 테니스 파문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과와 해명이 또 다른 의혹을 부르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황제 테니스 파문은 이 시장의 지지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조사를 보면 이 시장의 탄탄한 지지도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과 이회창, 기대치가 애초부터 다르다?
이 기관이 3월21일과 22일 이틀 동안 전국 유권자 10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선호도 전화조사(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99%)에서 26.4%였다. 일주일 전의 조사에서 불과 0.4%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지지층 이탈 현상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장의 사퇴 관련 물음(서울 시민 766명,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4%)에는 “사퇴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63.3%)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28.1%)을 월등히 앞섰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80%가 이 시장 사퇴에 반대했고,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절반 정도인 48.5%가 사퇴를 주장했다.
국민들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는 것일까. 골프와 테니스의 차이인가 아니면 이해찬과 이명박의 차이인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들의 의도적인 축소 보도를 감안하더라도 이 전 총리에게 가혹했던 잣대가 이 시장에겐 너그러웠다. 정치권 안팎의 전문가들은 잣대가 달라졌다기보다는 두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애초부터 다른 것 같다고 분석한다. 특히 이 시장의 지지층이 근거와 이유가 있는 지지층이어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의 말이다. “이회창과 이명박은 다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이미지는 법과 원칙, 깨끗한 이미지였다. 백지 위에 검정색이 떨어지면 크게 부각되지 않나. 이 시장은 검정색을 많이 띤 회색이다. 이명박에게서 도덕성, 청렴성을 떠올리는 이들은 없다.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일을 잘하기 때문이다. 흠이 있더라도 일만 잘하면 된다.”
그의 말은 일정 부분 맞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도 그 연장선에 있다. 황제 테니스 파문을 그저 ‘별것도 아닌데,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퍼붓는 정치 공세’ 정도로 여긴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도를 달리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시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7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히딩크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자리에 이 시장의 아들과 사위가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게 했고, 2004년 7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 기도회에 참석해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봉헌사를 낭독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이 시장은 그때도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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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이란 날개를 달고 비상한 이명박 시장은 여러 차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입길에 올랐지만 지지도는 탄탄하다. 아직까지는 업적이 오만을 덮어주고 있는 형국이다.(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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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자잘한 화를 부른 사례는 더 많다.
황제 테니스 파문을 포함해 △히딩크 사진 사건 △서울 봉헌 발언 등은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공직자로서의 부적절한 언행,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청계천·뉴타운 평가는 현재진행형
이 시장을 지지하는 이유가 바람직한 공직자로서의 처신이나 도덕성·청렴성이 아닌 업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비전이라고 할지라도, 누적될 경우엔 일련의 크고 작은 파문들이 그의 이미지를 고착화할 수 있다. 가랑비도 오래 맞다 보면 흠뻑 젖는 것처럼, 유사한 파문들이 누적됐을 때 공인으로서의 근본적 자질을 의심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시장은 성과 중심의 이미지를 쌓아왔기 때문에 이번 황제 테니스 파문이나 이전의 부적절한 언행이 지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적지만, 유사한 사건이 중복될 경우엔 부담이 된다. 해프닝 정도로 여기던 사건이 누적되면 지지자들조차 ‘근본적으로 공인으로서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그런 이미지가 구조화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말이다. “일만 잘하면 됐지 뭐”는 ‘누적 효과’ 때문에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할 건데?”로 바뀔 수 있다. 업적이 껍질이라면 속살까지 보고 싶은 욕구를 부추기게 된다는 말이다.
또 이 시장에게 날개가 된 업적은 아직 견고한 날개가 아니다. 가시적인 성과는 눈에 익숙해지면 옅어진다. 청계천 복원이나 뉴타운 사업 등 이 시장이 내세운 업적들은 현재진행형이거나 감사를 앞두고 있다. 문화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청계천을 거대한 인공호수라고 비판하면서 생태적·문화적 복원을 주장하고 있고, 뉴타운 사업에는 핵심인 ‘사람’이 빠져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주거환경 개선 사업임에도, 개선된 환경에서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 업적으로 쌓은 탑인 만큼 업적에 금이 가면 바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이 시장의 주변 인사들은 이번 황제 테니스 파문을 ‘적은 비용으로 맞은 예방주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시장이 앞으로 조심하게 될 테니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계동 의원(한나라당)은 더 직접적이다. “흠뻑, 씩씩하게 다 맞아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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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장의 아들은 특별 시민인가?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시청 행사에 등장해 히딩크 감독과 사진을 찍은 사실이 보도되자 인터넷이 들끓었다. (사진/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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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맷집도 키울 수 있다. 잠정적으로 지지율을 5%포인트 까먹을 수 있지만 나중에 다 회복할 수 있다. 국민들은 이해찬 총리 사건을 덮으려 한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테니스 파문, 적은 비용으로 맞은 예방주사
관전 포인트는 미래의 이명박 시장이다. 2004년 이후의 탄탄한 지지도에 아직까지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를 보면 1년 동안 여러 주자들의 지지도는 요동쳤다. 비싼 값을 치르지 않고 예방주사를 맞은 이 시장의 스타일이 바뀔까.
방미 기간에 이 시장의 말이 너무 나갔다 싶은 측근들이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벌써 대통령이 다 된 듯이 군다는 등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하고 “좀 참아달라”고 했다. 이 시장은 정치인이 무슨 말도 제대로 못하냐는 취지로 뭉갰다. 이 시장은 오는 6월 서울시장의 임기를 마칠 즈음에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마당에 새삼스러운 출마 선언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선언 이후 그의 입과 몸의 무게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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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것이 옳은 것보다 낫다 ‘네거티브’ 이명박이 ‘포지티브’ 김근태보다 강한 이유
광고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여러 기준 중에 대중 전달력이라는 게 있다. 아무리 잘 만든 광고라도 대중에게 기억되지 않으면 광고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 역을 이용하는 광고기법도 있다. 짜증이 나는 광고지만, 대중은 그 제품을 기억한다. 실제 얼마나 구매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정치에서도 종종 광고의 ‘효과 측정’ 모델을 차용한다. 긍정(Positive)과 부정(Negative), 강함(Strong)과 약함(Weak)을 가로와 세로축에 놓고 주요 정치인들의 이미지를 대입시켜보는 것이다. 물론, 포지티브 스트롱이 가장 좋고 그런 평가를 받는 정치인은 성공을 거둔다. 네거티브 위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문제는 네거티브 스트롱과 포지티브 위크의 우열관계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책을 냈다. 네거티브 스트롱이 포지티브 위크를 이긴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분석은 정교한 수치에 따른 것이 아니다. 대중에게 박힌 이미지를 기초로 한다. 따라서 보는 이들에 따라 주관적 차이가 클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체로 ‘네거티브 스트롱’으로 분류된다. 비슷한 성향의 정치인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여론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자기 소신과 고집이 강하다. 따라서 지지자와 반대자가 극명하게 갈린다. 업무능력, 추진력 등에서는 인정을 받더라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비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반대편인 ‘포지티브 위크’를 대표하는 정치권 인사로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이 꼽힌다. 김 의원은 지난 2월 지도부 경선 과정에서 위크를 스트롱으로 옮기려고 애썼다.
자신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쪽으로 무리하게 옮아가려다 오히려 피해를 본 정치인들도 있지만, 대체로 주요 정치인들은 위크에서 스트롱으로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바꾸려 노력한다. 최근 황제 테니스 파문으로 네거티브가 강화된 이 시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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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이 아줌마보다 못하다” 고비마다 ‘빛났던’ 이명박 시장의 말말말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쪽에서도 갑자기 만나자는 제의가 와서, 3월13일 럼즈펠드 장관과 조찬을 가질 예정이다. 서울시장에 대한 그 정도 예우는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한다. (2006년 3월11일 미국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
이영애나 배용준이 좋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나오면 찍겠느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서울시장이 되면) 놀기 좋아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좋아할 것이다. (2006년 3월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솔직히 노무현·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냐 하면 노무현이다. 이쪽(이회창)은 너무 안주하고 주위에서 둘러싸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퇴폐적인 공연을 하는 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서울시 산하 공연에는 초청하지 않도록 하라. 동남아 2류 국가들이 하는 것(퇴폐 공연)까지 서울에서 이뤄져야 하느냐. 이는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문화도시 10개년 계획’에 어긋나는 반문화적인 활동이다. (2005년 8월1일 서울시 간부회의에서. 문화방송 <음악캠프>에 출연한 인디밴드의 ‘알몸 노출’ 방송사고 이후)
한국 사람은 닥쳐야 일을 하지 도대체 미리 연구를 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미리 연구를 하지 않아서 문제다. 서울시와 각 구청이 여러 차례 안내문을 보내고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가 됐지만 시민들은 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버스를 타러 와서 문제다. 반상회를 해서 내용을 알려줬지만 관심도 없었다. 그나마 젊은이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잘 타고 다닌다. (2004년 7월6일 대학총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 (2004년 5월3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 기도회에서)
건설교통부의 부동산 정책이 군청 수준이다. 정부가 강남 아파트값을 떨어뜨리려는 정책만 쓰자 강남 부녀회가 단결해서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이 아줌마보다 못하다. (2005년 6월10일 서울시청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신문에 기사 나는 그대로 썼던데, 아니 그것보다 더 자세하게 썼더라. 그걸 본인이 썼겠나. (2004년 3월9일 <미디어 다음>과의 인터뷰.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가 청계천의 역사적 복원을 촉구한 기고문과 관련해)
교육자가 손을 뗐으면 (이미 한국은) 세계 최고의 입시제도를 가졌을 것이다.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시골 출신으로 진정한 서울의 교육을 모른다. (2003년 11월3일 서울시청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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