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12월20일 제590호
과학, 그들만의 리그를 버려라

‘후속연구로 검증하자’며 황우석 사단 감싼 기성 과학자 사회 오점 남겨
배타적인 이해관계 따라 외부-내부 금긋기해온 관행에 관해 철저한 반성을

▣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지난 12월16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제1 저자와 제2 저자가 잇따라 등장해 3시간이 넘게 진행한 진실게임의 공방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과학이 얼마나 허약한 기초 위에 올라서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추앙받던 인물들의 뒷모습은 너무도 초라하고 추악했다. 그곳에는 과학의 기본이 없었다. 아니 과학 자체가 없었다.

과학자인가 정치가인가 사업가인가

황우석 교수는 지난 11월24일 기자회견에서 2004년 논문 발표 당시 ‘일과 성취’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서 매매된 난자가 제공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했고, 올해에는 아직 그 진위가 불분명한 줄기세포를 과장하고 조작해서 논문을 발표했음이 밝혀졌다. “향후 연구를 통해 검증받겠다”는 말은 결국 기초도 확보되지 않은 연구 결과를 조작하거나 부풀려서 일단 성과를 인정받고 그 뒤 얻게 될 막대한 지원과 지위를 토대로 열심히 연구하면 실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과학자가 할 이야기가 아니라 사이비 정치가나 대규모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거짓과 권모술수도 가리지 않는 모리배 사업주의 입에서나 나옴직한 말들이다.

우리는 지난 십수 년 동안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같은 후진국형 대형 사고를 겪었다. 당시 외국에서는 너무 빠른 경제성장에 수반된 ‘부실한 기초’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던 우리 과학의 토대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여실히 드러내줬다. 한 달여의 기나긴 논의 속에서 우리는 과연 황 교수를 비롯한 간판급 연구자들의 말 속에 일말의 진실이라도 들어 있는 것인지, 그들이 이 연구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신의 자료와 증거에 대해 떳떳할 수 있는지, 자신의 연구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고 어떤 부분에 대해 얼버무리지 않고 당당하게 사실을 밝힐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과학자의 밥그릇 지키기의 희생양은 누군인가. 이제 황우석 교수 사태 이후를 생각하며 과학의 기초를 세워야 한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은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논문 저자들의 증언을 들으면 그들이 주요 논문 저자로서 실제 이 연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실제 연구를 수행한 몇 명의 연구원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은 과연 과학자인가, 사업가인가 아니면 정치가인가. 이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황우석 사단에 있다. 그렇지만 사태 내내 ‘내 사람 보호하기와 감싸기’로 일관한 기성 과학자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문가 집단의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의료계와 과학자 사회는 지금까지 배타성과 이해관계를 축으로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온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 등의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이들 집단은 외부-내부의 금긋기와 내 사람 감싸기에 급급했다. 의약분업이나 이공계 위기처럼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에까지 나서지만, 이번 사태처럼 온 사회가 한 달이 넘도록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면서 전문가들의 양심적인 발언을 기다릴 때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특히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서울대학교는 피츠버그대학에서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소장파 생명공학부 교수들이 뒤늦게 조사 착수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학장회의에서 부결됐고, 황 교수가 조사에 응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뒤에야 부랴부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촌극을 벌였다. 아직 조사는 끝나지 않았지만 만약 이번에도 제대로 된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황우석 교수의 16일 발언에 부합하는 맞춤식 결과를 내놓는다면 서울대는 최고 대학으로서의 지위와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의료계와 과학계는 문제를 제기한 문화방송 을 비전문가 집단으로 낙인찍고 직접 조사보다는 후속 연구를 통한 검증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뒷받침해서 감싸기와 봐주기로 일관했다. 향후 철저한 반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우리 과학자 사회의 오점으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학교도 너무 늦었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 이번 사태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성과는 우리 젊은 과학자들의 놀라운 활약과 자기 성찰이다. <뉴욕타임스>가 16일자 기사에서 밝히고 있듯이 실제로 이번 진위 문제 논란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얻게 된 것은 젊은 과학자들이 고해상도 사진의 중복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국익론이 들끓던 지난 12월5일 생물학정보연구센터(BRIC)의 게시판인 소리마당에 익명의 게시물이 하나 등장했다.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사진들 중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이른바 ‘조각그림 맞추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과학기술인연합(SCIENG) 게시판과 디시인사이드의 과학갤러리는 광기 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머물 만한 몇 안 되는 공간이 되었다. 여기에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학생과 소장 과학자들뿐 아니라 인문학이나 다른 전공을 하는 지식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 황우석 사태는 우리 과학계의 약이 될 것인가. 젊은 과학자들은 황 교수 사태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사진/ 윤운식 기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번 진위 논란이 윤리 논란과 달리 처음부터 국내 제보자에서 시작돼 대부분의 문제점이 국내에서 밝혀졌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과학도들이 <사이언스>도 검증하지 못한 사진의 중복을 밝혀내고 결국 서울대와 피츠버그대학이 진위에 대한 검증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름 없는 연구원 끌어안는 고민을

이번 기회에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그 응용 가능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잘 알다시피 2005년 논문의 의미는 2004년과는 달리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실용적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밝혔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2004년에는 발표상 242개(실제로는 600개)의 난자를 이용해 하나의 배아 줄기세포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17개에서 하나의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을 만큼 기술적 진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 정도라면 효율성의 면에서 실제로 치료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황 교수가 11개의 줄기세포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도 자신의 연구의 효율성을 입증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철회되었다. 이제는 차분하게 그토록 많은 난자를 소모하면서 윤리적 문제를 배태하는 이 연구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지난번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예측한 것처럼 33조원의 경제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월 40만원의 돈을 받으며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고 월화수목금금금의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게다가 난자까지 제공해야 했던 황우석 교수 휘하의 이름 없는 연구원들이 받았을 충격과 상처를 진심으로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