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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길림성 동생에게 식량지원 호소하는 북한 형의 편지

연변의 조선족들은 여러 가지 통로로 북한 주민의 어려운 사정을 듣게 된 다. 우선 가장 생생한 소식은 식량을 얻기 위해 국경을 넘는 북한 주민의 입이나 북한을 방문한 조선족을 통해 전해진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편지다. ‘바쁜(어려운) 식량사정’을 중국의 조선족 친지에 게 전하는 이 편지는 북한을 방문한 조선족들을 통해 쪽지 형태로 전달되 기도 하고, 간혹 공식적인 우편배달 체계로 전달되기도 한다. 이들 편지 가운데 최근 함경북도의 형이 중국 길림성의 동생에게 식량 지원을 간절 히 부탁하는 편지 한통을 소개한다. 중국에서 태어난 이 형은 청소년기 학업을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 그곳에 정착한 인물이다. 편집자

동생에게 전합니다.

그동안 동생을 비롯한 가족들 형제들 어머님께서는 모두다 무고히 지내고 있는 거요. 해가 갈수록 부모형제들이 그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구만. 사실 동생 이곳 형편을 소문을 들어 잘 알리라고 믿소. 정말 여기 형편이 란 이젠 늙은이들은 거의다 죽다시피 되어 있고, 혹시 산 사람은 이제 며 칠이나 더 가겠는지 하는 정도라오. 나도 이제는 더는 가늠하기 어려운 형편이오. 정말이지 자기 정신을 가지고 이렇게 앉아 죽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막연하구만.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또 편지를 하는데 너무 힘이 없어 만년필도 제대로 쥘 수가 없구만. 동생 사실 그곳 친척이 있는 집들에서는 조선 사람이 다 죽는다고 해도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살려놓고 가곤 한다오. 사실 이곳 에서는 나를 보고 머저리라고들 한다오. 중국에 형제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그러고 가만히 앉았는가고 야단이라오.

할 수 없이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이렇게 펜을 들었으니 깊이 생각하고 대책을 세워주었으면 하루라도 삶을 연장하여 보겠는데, 좀 형제들이 모 여 앉아 토론하고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먹을 것을 가지고 왔으면 죽기 전 에 낱알을 물어볼 것 같구먼. 그리고 동생 이곳에서는 중국에 가서 식량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내보낸다고 하는구만. 그러니 힘든 대로 동의서를 만들어 보내주었으면, 죽기 전에 부모형제 나서 자란 곳으로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오니 그리 아시고 노력하여 주었으면 합니다.

동생, 혈육으로서 죽기 전에 소원이니 형제들이 모여앉아 토론하고 식량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여 주기를 절절히 바랄 뿐이오.

그럼 동생을 비롯한 여러 혈육들이 옥체 건강하여 행복하거나 바라면서 질서없이 이 난필을 놓으면서.

안녕히 형 ○○○

추신: 시급히 토론하고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면서 소식이 오기를 손꼽아 가면서 기다립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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